오늘은 6시반에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한 다음 제일 먼저 시칸드라에 갔다. (09:15) 무굴제국 3대 황제인 악바르 대왕의 무덤으로 악바르는 아쇼카와 더불어 인도 역사를 통틀어' 대왕'이란 칭호를 듣는 사람으로 처음에는 정복 군주였으나 말년에는 이슬람, 힌두교, 자인교, 예수교까지 궁정출입을 가능하게 한 관용적인 황제였다. 이 황제는 딘 이 일라히라여러 종교를 혼합한 새 종교를 창시하기도 했다. 시킨드라는 이런 관용적인 종교관을 반영하듯 4개의 입구를 각각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딘 이 일라히를 상징하는 양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돌아보면서 그 차이점을 보려고 했으나 내 눈에는 별다를바 없어 보였으니 건축에 문외한이라 그런지.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런 독특함 때문에 인도 중세 건축에 관심 있는 여행자들에게는 필수 방문지란다. 룸메이트와 나는 안내원을 자처하는 남자에게 설명을 들으며 가기로 햇는데 그 사람도 크게 낫지는 않았다. 뒷 뜰에 공작새 등을 키우고 나무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으며 홀륭한 건축물이었다.
<시킨드라의 내 외부 모습>
다음으로 아그라성에갔다. (10:30) 1566년 3대 황제 악바르에 의해 건설된 무굴제국 당시의 왕궁으로 높이 20m, 폭은 무려 2.5킬로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왕궁이다. 처음엔 군사요새로서의 성격이 강했지만 재항기르, 샤자한의 시대로 이어지면서 특히 건축광인 샤자한의 시대에 세계에서 제일가는 궁전으로 변모시켰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아들에 의해 유폐되어 맞은편의 아내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보면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아그라성의 외관>
제항기르 팰리스는 악바르 황제가 어렵게 얻은 아들 제항기르를 위해 지은 건물로 인도- 아프간양식이고 외관은 전형적인 아프간양식, 내부의 안뜰은 마하라자 궁전과 흡사하게 지었는데 자이뿌르 공주를 정실로 들일만큼 힌두와의 융합을 중요하게 생각한 악바르의 성향을 볼 수 있다.
<제항기르 팰리스-아프간양식>
다음은 목조건축물에 붉은 사암으로 재건축한 다음 하얀 회칠을 한 샤자한에 의해 건설된 왕의 공식접견실인 디와니암이다. 황제가 사무적인 일이나 건의 사항을 들을 때 사용했다고 한다.
다음 왕의 공식접견실인 디와니카스는 1636-37년 샤자한이 세운 건축물로 고위 관리나 외국 대사들을 만날때 주로 사용했고 그 유명한 공작좌가 처음 있었던 곳으로 1600년 아우랑제브에 의해 붉은성으로 옮겨 졌었다고 한다.
<디와니카스의 아름다운 아치와 기둥들>
위층으로 올라가면 무심만 버즈에 다달은다. '포로의 탑'이란 의미의 이 곳은 샤자한이 1666년 숨질 때까지 8년을 보낸 곳이다. 인도의 아름다운 건축물 거의 모두를 지은 건축광 샤자한은 국고를 낭비했다는 이유로 아들인 아우랑제브에게 폐위되어 쓸쓸한 말년을 보냈는데 아들은 아그라성 옆의 아무나강을 막아 여름 한 철 짠 맛나는 물을 먹게 할 정도로 아버지를 학대했다고 전해진다. 하긴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죽은 다음 무덤도 화려하게 짓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걸 보면 아버지에게 질리긴 했나보다.
<2층에서 내려다 본 중앙 정원>
<중앙정원-정방형의 이슬람식 정원>
<무심만 버즈의 아름다운 탑>
<여행 온 현지 가족들과 무심만 버즈를 배경으로>
<무심만 버즈 왕족 전용 모스크>
점심을 먹고 드디어 타지마할로 가게 되었다. 아랫쪽에서 입장료를 내고 생수 한병과 덧신등을 받고 차량으로 이동해 입구까지 올라가는데 우리는 들어가기 전에 바깥의 아무나강쪽을 먼저 보기로 했다. 아무나 강쪽에서 보는 타지마할의 야경이 그렇게 훌륭하다는데 우린 시간에 매여 있으니 할 수 없다. 건기라 강의 수량이 많지는 않다. 타지마할의 담벼락을 따라 올라 오려는데 조그만 사원이 있다. 하누만신을 모시는 사원이라 그런지 주변에 원숭이떼가 많다. 조그만 애들은 귀여웠으나 큰 애들은 위협적이기도 하다.
<바깥에서 본 타지마할>
(원숭이신 하누만을 모시는 사원>
드디어 입구로 들어가 타지마할을 마주했다. 자주 사진으로 영상으로 만난 모습인데도 가슴이 벅찼다. 인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 샤자한이 아내인 뭄따지마할을 위해 지은 무덤이다. 1632년 부터 22년간 지어졌는데 720억 정도의 공사비가 들었단다. 설계는 이란의 우스타트 이샤가 맡아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등의 장인들을 불러들여 만들었다고 한다.
<입구 문 위의 작은 하안 돔 22개는 건설한 해의 수>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타지마할의 모습>
<타지마할에서 정문을 바라본 모습>
타지마할은 300m, 560m의 정방형의 완벽한 건물로 짜르박 형식의 이슬람 정원이 있다. 정원을 수많은 정사각형으로 쪼갠 후 사이사이 수로를 건설한 짜르 박 형식은 이슬람의 낙원 사상을 담고 있다. 특히 중앙의 연못 수면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짜르박 정원과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현지 청년과>
우아한 돔이 인상적인 본당 건물은 높이 65m로 중앙의 돔 주변에 4개의 작은 돔이 있고 기단의 네끝에는 각각의 미나레가 솟아 있어 대칭적 아름다움이 생명인 타지마할의 건축적 완성도를 높혀주고 있다.
타지마할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면서 현지인들과 소녀들과 놀고 있는데 우리 일행들이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알고 보니 외국인들은 비싼 입장료를 내는 대신 끝없이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미리 좀 알려주지...
<몇 바퀴씩 돌아가며 줄을 서는 현지인들>
타지마할 장식의 백미인 피에트라 두라를 보러 들어갔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건축물에서도 발견되는 이양식은 대리석에 꽃 등의 모양을 판 후 각각 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 넣는 기법인데 그래서 타지마할에는 볼펜이나 칼 등 뾰족한 물건은 반입이 금지였다. 하얀 대리석에 색색의 준보석으로 장식한 모습은 정교하고도 아름다웠다. 대주준의 문양은 식물과 꽃 등인데 이슬람은 동물이나 신상을 우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란다. 그 외에코란의 글귀를 아라비아 문자로 적은 것도 잇는데 심판의 날 뭄따즈와 샤자한이 부활할 것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고 한다. 이 대리석은 인도 라자스탄주 마크라나산인데 요즘은 매연 등으로 흰색이 베이지로 변해가는 것이 골치거리라고 한다.
<타지마할 외벽과 미나레>
<코란의 아라비아 문양>
본당 내부에 들어가면 샤자한과 뭄따즈의 가묘를 만날 수 있는데 경비가 삼엄하고 사진은 절대 금지하고 이/ㅅ가. 진짜 무덤은 지하에 은폐되어 있는데 도굴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내부는 어두웠으나 43개 종류나 된다는 색색의 준보석들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려다 보니 조그만 박물관이 보인다. 유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복원 전의 기둥이나 문양 등을 전시해있었다.
<작은 박물관 내외부 모습>
<시킨드라 내부 모습>
<시킨드라 문과 앞의 분수>
<아그라성의 탑을 배경으로>
<물을 담았던 곳>
<아그라성 내부>
<피에트라 두라-대리석에 홈을파서 색돌을 넣은 장식>
<하누만 사원의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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