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그리스

제2일(06.14) 올림피아 유적지와 박물관

boriburuuu 2018. 8. 18. 00:59

나프폴리온에서 스파르타를 보고 모넴바시아로 가서 비잔틴교회를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올림픽의 본고장인데 하면서 올림피아로 향했다. 거리는 207킬로로 약 세시간이 걸린다. 오늘은 델피까지 가서 숙박을 해야해서 아침부터 좀 서둘렀다.

여기도 입장료는 역시 12유로다. 먼저 올림피아 유적으로 향했다. 초창기 고대 그리스 인들은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제전 경기로 시작했다. 올림피아 사람들은 처음 크로노스(제우스의 아버지)와 가이아(대지진의 여신)를 숭배했지만, 기원전 1000년경부터 제우스를 숭배하기 시작했단다. 그래서 제우스 신전을 짓고 제우스에게 무언가 바치기 위해 고대 올림픽 경기를 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여러 신을 섬기던 도시국가(폴리스)의 시민은 4년 마다 1번씩 열리는 올림픽 대회를 통해 올림피아에 모여서 신전에 참배하며 제례를 지냈다. 현재 모습은 신전들의 기둥과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인들의 행사였지만 쿠베르탱에 의해 근대 올림픽이 열리면서 올림픽은 명실공히 전세계인들의 축제의 장이 되었다. 198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먼저 입구에 있는 플리타네이온유적을 먼저 본다. 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가 그리스를 통일항 것을 기념해 세워졌다. 평소에는 사제나 관리인들의 사무소였지만 제우스 대제 때는 영빈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북쪽에 식당과 조리실이 있는데 고대 올림픽 우승자가 초대되어 식사를 하던 곳이란다.

 

 

 

 

 

필리페이온이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왕 필립포스 2세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해 세운 봉납 건물로 알렉산더 대왕 때 완성되었으며 이오니아식 주랑이 있는 원형의 건물이다.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다른 관광객이 따라서 사진을 찍다가 멀리서 관리인의 호각소리 제지를 받는 것을 보고 깜작 놀란 곳이다.

 

<필리페이온의 유적 Ruins of the Philippeion>

 

 

 

헤라 신전이다. 기원전 7세기의 것으로 그리스에 남아 있는 신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제우스 신전보다 130년 앞선 기원전 600년 경에 세워졌다. 이 신전에서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인 '갓난아기 디오니소스를 달래는 헤르메스 상'이 발굴되어 올림피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우스 신전보다는 규모는 작지만 헤라 신전은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에는 어김없이 헤라 신전에서 채화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중계된다.  원래 헤라 신전은 그리스에서 나무로 만든 신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40개 이르는 기둥을 모두 응회암이란 돌로 교체하였고 도리아식 기둥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주는 신전이다.

 

<헤라 신전>

 

<성화 채화 장소>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 사전행사 일환으로 성화 봉송이 열리는데 올림픽 대회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자 올림픽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이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전달하고 ,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감동 이벤트이기도 하다. 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성화그리스에서 채화 되는데 그리스는 올림픽의 근원지라 채화는 헤라 신전에서 진행되며 동계올림픽, 하계올림픽(여름에 개최되는) 성화도 채화 된다. 대사제 , 여사제가 성화를 들고 입장해 고대로부터 진행된 올림픽의 가치와 역사를 전달하는 의미를 가지는데 첫 성화봉송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시작되었다.

 

<성화 채화장소 2>

 

 

 

 

 

펠로피온이다. 오각형의 건물터만 남아 있는데 미케네왕 아가멤논의 조상으로 올림픽 경기를 창시한 펠로피온의 묘 위에 건물이 세워졌고 과거엔 내부에 그의 상과 제단이 있었다고 한다.

 

 

 

고대 올림피아 경기가 펼쳐졌던 스타디움으로 들어가는 아케이드의 일부다.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졌고 이 통로로 들어가면 폭이 30m, 길이 192m로 초기에는 북쪽의 크로니온 언덕이 관객석이었고 로마시대에 남쪽에도 제방이 설치되고 객석이 마련되어 2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단다. 참가자와 관객은 남자로 제한되었고 모든 경기는 나체로 진행되었단다.

 

스타트선에 한번 서 보았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지만 당당하게. (남자만 참여할 수 있고 5개의 경기를 했다는데 모두 나체로 참여했단다.)

 

오른쪽에 왕과 귀족들의 관람석도 준비되어 있었다.

 

헤라 신전 동쪽에 있는 제우스의 제단터다. 70개 이상의 제단(파우사니아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대 올림픽 제전은 행렬과 공양으로 시작되었고 소나 돼지가 바쳐졌고 공양이 끝난 후 참석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과도 고기와 내장을 먹고 술을 나눠 마셨다고 한다. 마야에서는 인신공양이 이루어졌는데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이제 제우스 신전으로 향한다.

 

 

 

제우스 신전이다. 올림피아는 제우스의 성지이지만 기원전 470년까지 신전이 없다가 페르시아 전쟁 후 신에게 감사하며 각지에서 신전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신전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커다란 돌만 굴러다니는 폐허가 되었지만 길이 64m, 폭 27m, 도리아식 기둥은 10m에 달하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버금가는 장대한 신전이었다. 당시 신전 안에 금과 상아로 만들어진 높이 13m의 거대 제우스상은 (피디어스작) 로마 말기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후 소실되어 버렸다. 또 신전의 박공에는 오이노마우스 왕과 펠로프스의 전차경주 출발 전 장면, 말의 몸을 지닌 괴인 켄타우로스족과 라피타이족의 전쟁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조각은 올림피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제우스 신전>

급수시설터와 보물 창고이다. 늘 시원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경사진 순환 수로가 갖추어져 있다. 그 오른쪽으로 크로니온 언덕 아래에 보물창고터가 있다. 폴리스나 식민지에서 제우스신에게 바친 봉납품을 보관하던 창고였지만 제우스 제전에 참가한 사절단의 숙박 시설로도 이용되었다.

 

 

 

 

 

 

 

 

 

 

 

짐나시온이다. 입구 오른쪽에 있는 체육연습장(짐나시온)의 기둥 흔적과 팔레스트라(투기장) 흔적이다. 올림피아 경기는 5일간 계속되었는데 경기자는 사후에 인정을 받기 위해 이곳에서 합동 훈련을 하는 것이 의무였다. 두 곳 모두 헬레니즘 시대의 것이다.

 

 

 

 

박물관까지 보고 델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호박을 많이 팔고 있었다. 올림피아에서 델피까지는 241킬로로 자동차로 3시간 20분쯤 걸린다. 나흘 동안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싶어서 약간 무리를 해서 델피에 호텔을 예약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싶다. 핸드폰에 유심을 심고 구글 지도로 안내를 받아 운전했는데 옆에 있는 언니는 동영상을 돌리는데도 지도를 보는걸 엄청 힘들어한다. 하긴 좌우회전을 혼동하는 정도의 지도치, 길치이다 보니 어쩔수가 없다. 가는 길에 우회전을 하라고 해서 샛길로 접어 들었는데 난데없이 농촌지역의 농로로 접어 들었다. 한참을 가다가 아무래도 아닌것 같아 원위치로 다시 돌아가서 간신히 제대로된 길로 접어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한시간 정도 시간을 손해보긴 했어도 그리스 농촌 지역의 모습을 속속들이 볼 수 있어 좋았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구글이 잘 안되기도하고 전체 지도를 보는 능력이 안되서기도 하고 암튼 헤메면서도 목적지까지 잘 가기는 했다. 100킬로를 달리다보니 이제 바다 풍경이 나타났다. 운전을 하느라 바닷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고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렇게 몇십 킬로를 달리다보니 다리가 나타났다. 그러고보니 이상하게도 통행료를 받지 않았었는데 다리를 건너는 비용이 15유로쯤했던것 같다. 다리를 건너 밥도 먹고 전망도 보려고 길을 빠져 나와서 다리변으로 갔는데 오히려 전망이 제대로 보이질 않아 아쉬웠다. 다시 차를 달리니 이제 험준한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이 그리스는 흡사 스코틀랜드 북부나 스카이섬을 연상시키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 델피를 가는 이 길이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던것 같다. 델포이는 높은 산 위에 있어 아주 시원했고 우리 호텔은 발코니까지 딸려 있는 전망 좋은 숙소여서 기분이 좋아졌다. 힘들면서도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