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크로아티아

제 1일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필레 문,성그리스도성당, 오노프리오스 분수, 프란체스코 수도원, 플라차대로

boriburuuu 2018. 8. 21. 14:22

아침 일찍 아테네에서 항공으로 이동했다. 항상 그렇지만 숙소를 찾아 가는것이 일이다. 신항구 지역에 있는 숙소인데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하는 민박집이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체크인을 할 수 있어 짐을 놓고 미리 사놓은 두브로브니크 3일권을 갖고 밖으로 나갔다. 이 때 착각을 하고 교통권만 챙긴 채  카드를 쓰레기통에 버려서 다시 찾는 헤프닝도 있었다. 숙소 아래에는 과일, 야채 등을 파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빵집, 정육점, 수퍼 등이 있어 생활하기에는 편리했지만 구시가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다행히 드브로브니크 3일권에는 교통 6회와 차브타드 왕복권이 포함되어 있어 잘 사용하긴 했다.  

"지상에서 천국을 보고 싶은 사람은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말했다고 한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우는 이 도시는 7세기에 형성되었고 베네치아 공화국과 경쟁한 유일한 해상 무역 도시였단다. 지리적인 이점 때문이었는데 11-13세기 두 번의 지진과 오랜 외세의 침략, 내전 등으로 파괴되었고 시민들의 자발적 복원 사업으로 구시가 대부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왕좌의 게임>, <붉은 돼지>등의 배경이 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견고한 요새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3개의 문 가운데 하나인 필레문(서문)으로 들어갔다. 16세기에 지은 이중문으로 다리를 들어 올려 외부의 침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첫번째 문을 들어가면 구시가의 플라차 대로로 들어서는 두번째 문이 나온다. 둘째 문 위에는 수호성인 성 블라호가 지진 이전의 두보르니크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조각은 크로아티아 최고 조각가인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이다.

인으로 들어가니 오노프리오스 분수가 있다. 척박한 땅의 식량과 물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438년 20킬로 떨어진 스르지 산에서 물을 끌여들여 만든 분수이다. 오노프리오스는 설계를 담당한 이탈리아 건축가의 이름이다. 돔 모양의 지붕 아래 16개의 수도꼭지가 있는데 지금도 물이 나오고 있었다. 그 아래 각기 다른 사람의 얼굴과 동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건축 당시에는 화려한 조각이 있었다고 하나 지진과 오랜 세월의 풍파로 많이 훼손되었으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사진 한 장을 건지기도 정말 힘들었다.

성 그리스도 성당이다. 1520년에 첫번 째 지진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사의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1667년 지진 당시에도 교회는 피해를 입지 않아 더욱 성스럽게 여겨졌다. 르네상스 양식의 간결한 외관은 소박하고 단정하다. 콘서트가 열리는 경우에만 내부를 공개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바로 옆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박물관에 들어가보았다. 여기서 카드를 내미니 그건 교통 카드이고 드부로브니크 카드는 버린 종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나 교통권을 보더니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어 무사히 들어가서 볼 수 있었다. 골목은 짧고 건물은 커서 전체 외관을 찍을 수가 없었다. 14세기에 지은 이 수도원은 17세기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어 화려한 조각이나 장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행히 입구에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피에타 1498년 작>가 남아 있어 감동을 주었다. 이 조각은 지진으로 수도원이 파괴된 슬픔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니 14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회랑이 나타났다. 사람과 동물의 얼굴과 꽃이 조각되어 있고 회랑 한 쪽에는 유럽에서 세번 째로 오래된 약국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구입하고 있었다. 당시 수도원에서는 약국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1391년 세계 최초로 일반인들에게 개방해서 그 의미가 크다. 내부 한쪽에 중세 시대의 약 제조과정, 약품, 처방전 등을 전시하는 제약 박물관이 있다. 회랑 안쪽에는 종교 박물관과 수도사들이 기거하는 방이 있다.

 

 

 

 

 

 

 

 

플라차대로의 모습이다. 필레문에서 루자광장까지의 300m의 거리다. 성벽 안에서 가장 큰 대로로 성채를 쌓기 전에는 운하였으나 바다를 메워 길을 만들었다. 17세기 대지진 전까지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이 즐비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들은 복원 사업으로 만든것으로 석재와 대리석으로 지어 화재를 대비했다고 한다. 서문과 동문을 잇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기념품점, 카페, 서점, 상점등이 즐비하다.

 

이 거리에는 독특한 사탕 가게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맛은 잘 모르겠으나 모양과 색은 정말 예뻐서 한참을 구경했다. 

 

 

성 블라호 성당이다. 카드도 놓고 왔고 시간도 지나 이제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오를란도브 게양대다 .성 블라호 성당 앞, 루자광장에 세운 국기 게양대로 프랑스 서사시에 나오는 중세의 영웅인 기사 롤랑이 조각되어 있다. 롤랑(오블란도브)은 요정들이 만들었다는 명검 듀란달을 들고 있다. 프랑크 왕국 샤를마뉴 대제의 조카 롤랑은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한 북아프리카 이슬람 세력에게서 기독교 세계를 지켜낸 공로로 유럽 각지에서 칭송받고 있었다. 유일한 승리였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주변에서 유일한 기독교 국가였던 드부로브니크가 롤랑을 상장적 인물로 추대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드부로브니크의 팔꿈치로 불리는 롤랑의 오른쪽 팔꿈치는 51.1cm로 공화국 길이 단위 1엘에 해당한다. 이 게양대는 새 법령을 만들어 시민에게 알리는 게시판으로 사용되었고 여름 축제시 공화국 국기 게양식을 통해 축제의 시종을 알린다.

 

총령의 집무실이다.

 

 마린 드르지크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해서 만져 보았는데 그 부분만 하도 만져서 반질반질하다. 행운은 과연 왔을까?

 

 

 

 

총령의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카드가 없으나 역시 그냥 들어가게 편의를 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