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체코

제4일 오후 유대인 시나고그, 박물관, 프라하 야경

boriburuuu 2018. 9. 16. 22:27

 

 

 먼저 피카스 유대교회에 가 보았다. 신.구 시나고그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시나고그로 테레진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학살당한 모든 유대계 체코슬로바키아 시민을 위한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39년 3월 15일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거주하던 유대인이 11만 8,310명이었는데 홀로코스트로 8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교회의 벽에는 희생된 7만 7,297명의 이름과 출생, 사망 연도가 벽을 빼곡히 메우고 있어 어떤 벽화보다 더 강렬했다. 1968년 지하수로 인한 습기로 벽의 글씨가 지워져 폐쇄하고 방수 작업을 하던 중 우물의 일부와 의식용 목욕통이 발견되었다. 복원 작업이 1990년 이루어지고 1992-96년 이름을 다시 써 넣고 일반에 공개했다. 1만명이 넘는 15세 미만의 아이들 중 동쪽으로 보내진 8천명 중 242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전 재산을 담아 갔던 가방>

 

 

 

<우물>

 유대인 묘지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묘지로 살아서는 게토에서 죽은 뒤에도 제한된 공간에만 묻힐 수 있었던 유대인들의 슬픔을 볼 수 있다. 1439-1787년까지 20만구의 시체가 묻혔고 무덤이 12층까지 쌓였었단다. 현재 묘석 1만 2천 개 가까이가 남아 있지만 매장된 사망자 수는 이 숫자를 훨씬 더 웃돌고 있다. 입구는 핀카스 시나고그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의식의 집이다. 구 유대인 묘지의 장례의식과 함께 시체를 두는 곳으로 사용되었고 1911년부터 12년에 걸쳐 로마네스크양식을 모방해 지어졌다. 현재 전시회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게토에 있어서 병과 의학, 죽음, 보헤미아 유대인 묘지, 프라하 장의 협회의 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구유대인 묘지의 장례 의식과 함께 시체를 두는 곳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1911년부터 12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을 모방해 지어졌다. 프라하 장의

 

 

 

 

 

 

 

 

 

 

 

 

 

 

 

 

 

 

신구 유대교회다. 13세기 중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을 때는 기존의 예배 장소와 구분하기 위해 '새로운, 큰'교회로 불렸단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나고그로 16세기에 몇개의 시나고그가 지어졌기 때문에 '구'라는 말이 더해져서 신.구 시나고그가 되었다. 전체가 6개의 단락으로 지어진 아치형 천장과 격간과 격간간에 걸치는 5개의 대들보가 중앙에 있으며 2개의 팔각형 기둥과 함께 훌륭한 아치형 천장이 되고 있다. 1389년 일어난 반유대인 폭동으로 살해된 유대인들의 혈흔을 남겨 두기 위해 내부는 건축 당시의 모습을 보존 중이다. 16세기 유대인들은 신성로마제국 루돌프 2세 치하에서 죽인을 당하자 랍비 로우는 볼타바 강둑의 진흙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 넣어 인조인간 골렘으로 사람들을 보호하려 했으나 오히려 사악한 존재가 되어 생명을 빼앗아 신구 유대교회에 묻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현재도 예배가 열리는 곳이다.

 

스페니쉬 시나고그다. 스페인 톨레도에서 가봤던 시나고그와 많이 닮았다. 찬란한 금빛의 실내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압권이다. 벽과 문, 난간 등 모두 이슬람 미술을 연상시키는 잎과 꽃, 덩굴 모티브로 덮혀 있다.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기초를 잡고 중앙에 대형 돔을 올렸으며 내부가 감작 놀랄만큼 화려하다. 스페인 사람들이 사용한 건 아니고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아랍계 이슬람교도들이 발전시킨 무어풍 건축양식을 따랐다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 이곳은 오래된 유대 예배당 자리로 체코의 국가를 작곡한 프란티쉑 슈크롬이 10년 동안 여기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약했다고 한다.  

<중앙 제단>

<아름다운 천정 돔 내부>

<창문>

<기둥들>

 

2층에는 보물실을 따로 두고 있었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자료도 전시중이었다.

누군가의 어깨에 올라탄 모습의 카프카 동상이다. 스페니쉬 시나고그의 앞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변신이 생각나기도 한다.

카프카의 변신을 주제로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마이셀 시나고그다. 1590-92년에 유대인 사제를 맡고 있던 모르데하이 마이셀에 의해 지어졌으며 2689년 대화재로 소실되어 바로크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893-1905년 네오 고딕양식으로 재건되었다. 내부는 르네상스양식으로 본당과 여성용 2층의 갤러리 등이 남아 있다. 현재 유대 박물관의 전시회장 및 금속, 은세공, 종교상의 직물 등의 보관 장소로 쓰이고 있단다.


 숙소로 들어가 저녁을 먹고 유명한 프라하의 야경을 보러 나갔다. 여름이라 해가 늦게 져서 그 유명한 프라하의 야경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