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미술관/로마 바르베리니 궁전 (국립회화관)

로마 바르베리니 궁전(국립 회화관)

boriburuuu 2018. 12. 6. 02:23

바르베리니궁전으로 가는길에 바르베리니 광장을 만났다. 그곳에 베르니니의 작품인 트리톤 분수가 있다. 물 위로 솟구치는 듯한 트리톤의 역동적인 모습이 압권이다. 그 뒤의 호텔 이름도 바르베리니다.

 

 

 

바르베리니 궁전에 도착했는데 앞에서는 건물의 전경을 찍을 공간이 나오질 않는다.철문 사이 기둥마다 남다른 조각상들이 서 있다.

 

야자수와 어우러진 바로크양식으로 지은 대표적인 궁전으로 2층을 로마 국립 회화관으로 쓰고 있다. 건물은 교황 우르바노스 3세를 위해 지었다. 건축가 카를로 모데르노가 설계를 시작해 그의 조카인 보로미니가 창문과 위쪽 장식을 했고 뒤쪽 계단은 베르니니가 만들었다.

 

 

 

 

 

 

 

천정화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보르게세 가문의 상징인 꿀벌 세 마리가 천사들 사이에 보인다. 목이 아프다.

 

 

 

 

 

 

 

 

 

필리포 리피(Filippo Lippi)의 작품 ‘무릎 꿇은 기부자 2명과 수태고지'이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에체 호모(이 사람을 보라)>이다. 만테냐의 말기작이며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려진 작품으로 당대 기독교 미술의 에체 호모(본디오 빌라도가 예수의 십자가 책형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했던 말로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의 전통 내에서 그려진 것이다. 에체 호모의 그림들은 예수의 머리나 상체에 촛점을 맞춘 것으로 면류관을 쓰고 있거나 목둘레를 묶기도 하고 손목을 결박 당하고 채찍 자국이 있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만테냐는 선명한 색채, 뚜렷한 형체, 뛰어난 공간 구성에 대한 이해를 이용해 자신만의 방삭으로 해석했다. 예수 뒤의 처형자들을 더욱 사악하게 보이게, 예수를 감히 손댈 수 없는 존재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냈다. 예수의 슬픈 표정과 주변 처형자들의 매서운 눈이 현저하게 대조를 이룬다.

 

로마노가 그린 성모자와 함께 있는 바울과 성 프란체스코이다.

 

 

 

로토의 자화상이라는데 정말 잘 생겼다.

헨리 8세의 초상화다. 1540년.

 

 

 

 

 

 

 

 

미술관 건물인 바르베리니 궁은 베르니니와 바로미니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건물에는 각 건축가들이 만든 두 개의 유명한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은 베르니니가 만든 것이다. 로마에서 그의 아름다운 조각에 매료된 나에게 평범한 계단도 남다르게 보였다.    

 

 

도메니코 베카푸니의 <세례 요한과 성모자>다.

 

 

라파엘로의 그녀 라포르나니나다. 아버지가 제방사였기 때문에 라포르나니나(제빵사의 딸)로 불린다. 신분의 차이 때문인지 인정받을 수 없었던 그녀와의 사랑 때문에 결혼도 하지 못했지만 팔찌를 보면 자신의 이름을 그려 넣은 것을 보면 그녀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바티칸의 아테네 학당에도 왼편에 그녀를 그려 넣었단다. 아름다운 눈망울과 입매도 그렇지만 시스루의 표현은 정말 탁월하다.

 

 

 

 

 

 

바르돌로메오 베네토 <신사의 초상>. 1512년.

 

 

 

발렌틴 볼로냐의 최후의 만찬이다. 이 주제로 정말 많은 화가들이 다양하게 그림을 그려 놓았네.

 

스파다의 가시면류관이다.

 

마티아스 스토마의 삼손과 데릴라, 역시 많이 그려진 주제다.

 

 

 

드디어 이 미술관에 오게 한 그림이 보였다.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다. 세계 3대 미인 그림 (모나리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중 하나로 교황 클레멘티 7세 때 당시 16살이었던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에 시달리다가 계모 등과 함께 아버지를 살해한다. 이것이 알려지고 로마 시민들은 정당방위라고 옹호해 주었지만 결국 살인죄로 남동생만 빼고 가족 모두가 사형을 당하게 되는데 형장으로 올라가기전 뒤를 돌아보는 소녀를 귀도 레니가 보고 그린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다.(그의 제자가 그렸다는 설도 있다.) 결국 전 재산은 교황에게 귀속되었고 가족의 몰락은 재산 때문인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의 교황이 메디치가의 일원으로 면죄부를 팔아 종교개혁을 초랴한 인물이기도 하니.

스탕달은 이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집에 돌아가서도 며칠 동안 앓아 누웠다는데 훌륭한 예술품 등을 보면 정신을 잃거나 힘이 빠지는 등의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 한다. 이 그림을 보고 두가지로 놀랐는데 한가지는 그림 앞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였다. 두번째는 너무도 어린 소녀의 얼굴 때문이었다.

 

 

귀도 레니의 <잠자는 아이>다.  젖살이 포동포동한게 정말 귀엽다.

 

귀도 카나치의 마리아 막달레나인데 누드를 그리기 어려웠던 그 시절 자주 사용되던 주제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많이 의아했는데.

 

 

바르돌로메오 만프레디의 <바쿠스와 술꾼>이다.

카라바조의 <나르시스>다. 화가의 초창기 작품으로 그림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르시스와 물에 비친 모습은 고리 모양을 형성하며 조명을 받은 소년의 무릎 주위를 돌고 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랑에 빠져 다가갈수도 잡을 수도 없어 슬퍼하다가 죽고 말았다는 소년의 이야기로 물에 비친 반영을 표현한 정말 카라바조다운 작품이다.

카라바조의 <홀로페세우스의 머리를 치는 유디트>다. 이 그림에서 유디트는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보다는 힘들어하면서도 자신의 할 일을 해내는 모습으로 보인다. 붉은 커튼과 피 등인 극적인 순간을 강조하고 있다.

천정의 천사들 사이에 있는 꿀벌 세 마리는 부르게세 가문의 문장이다.

 

 

 

 

 

 

엘그레코의 작품이 두 점 있었다. 먼저 그리스도의 세례인데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다음 그림은 목자의 경배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때 가장 먼저 와서 탄생을 경배드린 목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얀 메티스의 <홀로페우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디트>다.

다니엘 다 볼테라의 <다윗과 골리앗>이다. 다윗이 쓰러진 골리앗의 머리를 자르려고 한 순간을 포착해 그린 그림인데 루브르에도 이 화가의 비슷한 그림이 있다.

 

그리고는 대연회실(Gran Salone)의 천장의 유명한 프레스코화를 보러 갔다.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Pietro da Cortona)가 그린 바로크 풍의 프레스코화 '우르바노 8세의 집정 예찬'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피카소의 대형 작품이다. 피카소가 이탈리아에 와서 지낼 때 그린 작품이다.

안토니오 코라디니의 <베일을 쓴 여인>이다.  이 조각을 보니 나폴리 산 세베로 성당에서 본 베일을 쓴 그리스도가 떠올랐다. 이탈리아의 조각가들은 어찌 이리도 훌륭할 수 있는지 .  돌을 밀가루 반죽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