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2014.07.27-08.14)

안탈리아 구시가지를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17:15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일행 몇 명과 산책을 나섰다(05:10). 엊저녁에 갔다 온 언덕을 지나 콘얄트 해변으로 갔다. 언덕에서 볼 때는 몰랐으나 가까이서 보니, 해변은 모래가 아니라 작은 몽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이 차겁지 않아 새벽부터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바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안탈리아 시가지의 아름다운 잔디와 꽃밭이 있는 풍경> 

 

<안탈리아 콘얄트해변의 새벽 풍경> 

 

<안탈리아 콘얄트해변의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변 모습> 

 

<콘얄트해변 언덕에서 바라본 일출 후 풍경>

해변에서 나름대로 추억을 남긴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은 7시에 먹었는데 다른 곳과 비슷했다. 그러나 커피가 없고, 수박이 맛이 없는 것이 흠이랄까. 식사 후 방에서 휴식을 취하다 호텔을 출발해서 올드 빌리지인 카일리치 입구에 도착(09:40)했다.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자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있는 광장이었다. 광장은 조금 높은 곳이어서 아래로 이블리 미나레와 마리나 항구가 보였다. “이블리 미나레(Yivli Minare)”는 안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38m의 붉은 미나레였다. 이블리는 “홈”이란 뜻으로 미나레 외벽에 붉은 벽돌로 여덟 줄의 세로 홈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란다.

 

<안탈리아 칼레이치 구시가지 입구에 있는 아타튀르크 동상> 

 

<칼레이치 구시가지에 있는 "이블리 미나레"가 있는 풍경>

이것은 13세기 룸 셀주크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 1세가 세웠다. 광장에서는 모스크가 역광이었으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일행은 알리의 안내에 따라 이블리 미나레가 있는 모스크를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햇빛을 잘 받고 있었으나 주위가 좁아서 전체가 사진기에 잡히지 않았다. 모스크에서 마리나 항구로 나가는 길은 기념품 가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곳에는 사자 개가 있는가하면, 향료들로 가득찬 가게가 있기도 했다. 가게를 벗어나자 바로 항구였다. 항구에는 요트, 모터보트 등 갖가지 배들이 가득했는데, 눈길을 끄는 것은 해적선 모형이었다. 해적선은 옛날 모습을 갖추었으며, 미니어처로 해적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아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항구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칼레이치 구시가지의 상가 모습> 

 

<상가 옆에 매어놓은 사자개 모습> 

 

<상가 안에 있는 향료 상점 모습>

 

<마리나항구에 정박해 있는 해적선 모형의 배>

항구 방파제에 올라서자 주위의 풍경이 아주 잘 보였다. 항구 뒤로는 오래된 성벽이 장군처럼 안탈리아를 지켜주고 있었다. 성벽 쪽은 절벽이었는데, 푸른 바다에 철썩이는 파도와 항구 그리고 절벽 위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방파제 뒤편 절벽 밑 바다는 바위들로 둘러싸여 있어 파도가 없는지, 바다 위에서 흰 비치파라솔을 치고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리나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마리나항구 뒤의 성벽과 주택이 있는 풍경> 

 

<마리나항구 남쪽 풍경> 

길을 따라 성벽 위로 올라가자, 바나나 꽃이 피어 있는 길에 시미트를 머리에 인 남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일행들 중에는 그와 사진을 찍고 언덕을 걸어가자, “케시크 미나레”가 보였다. 그 앞에 앉아 있는 구두닦이 아저씨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보기 좋았다.

 

<마리나항구 성벽 위에 있는 바나나꽃> 

 

<마리나항구 성벽 위에 있는 무궁화꽃>

 

<칼레이치 구시가지의 케시크 미나레 옆에서 구두를 닦는 아저씨 모습>

이 미나레는 2세기 사원으로 건립된 뒤, 비잔틴시대에는 교회로 사용되다 셀주크 투르크시대에 자미로 개조되었다. 그 후 1361년 다시 교회로 용도변경 되었다가 15세기 오스만제국시대에 다시 자미로 바뀌는 등 굴곡진 역사와 풍상을 겪은 곳이었다. 그러다 1896년 큰 화재를 겪으며 미나레의 윗부분이 소실되어 “잘렸다”는 뜻의 케시크 미나레가 되었단다. 

 

<칼레이치 구시가지에 있는 "케시크 미나레" 모습> 

 

<케시크 미나레 옆 골목길 풍경>  

그곳에서 북쪽으로 가자 “하드리아누스 문”이 나왔다. 이 문은 로마 하드리아누스(Hadrianus)황제가 130년 안탈리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해서 만든 것이었다.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메인 게이트로 사용되었는데, 지금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이오니아식 기둥이 받치고 있는 3개의 멋진 아치문이었다. 문 양옆으로는 사각형의 탑이 있었다. 왼쪽은 로마시대에 지어졌으며, 오른쪽은 13세기 셀주크의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가 세운 것이란다.

 

<안탈리아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메인 게이트인 "히드리아누스 문"> 

 

<히드리아누스 문 옆의 사각형 탑> 

일행은 큰 길을 따라 광장 쪽으로 올라오는데, 가로수들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상가에는 앞뒤 상점 지붕에 줄을 매고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우산을 걸어 놓아 색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지금부터 12시까지는 자유시간이라, 나는 일행 몇 명과 시계탑을 찾았다. 

 

<안탈리아 시가지의 야자수 가로수가 있는 풍경> 

 

<안탈리아 가로수의 아름다운 풍경> 

 

<안탈리아 상가에 우산을 매달아 놓은 풍경> 

시계탑은 칼레이치 구시가지 입구에 있는 것으로 안탈리아의 명물이었다. 구시가지 유적 대부분은 이 시계탑을 기준으로 가는 길을 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계탑을 사진기에 담고 재래시장으로 들어갔다. 재래시장은 예상 외로 깨끗하고 상품들이 잘 진열되어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은 재래시장 복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즐기기도 했다. 

 

<안탈리아의 명물인 구시가지 입구의 시계탑> 

 

<안탈리아 재래시장 풍경> 

길거리로 나오자 이곳에는 소년들이 발로 장난을 치는 모습의 청동상이 나의 미소를 받아들였다. 그런가하면 인공연못에는 새들을 실물 크기로 조각해 놓은 곳도 있었다. 

 

<안탈리아 길거리에 소년들이 발로 장난치는 청동상 모습> 

 

<아타튀르크동상 길 건너편에 있는 연못과 조각들> 

 

<안탈리아 시내에 있는 분수대가 있는 풍경>

만나기로 한 시간 전에, 일행이 만나기로 한 언덕 광장으로 갔다. 밤이되자 우리는 지중해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인 안탈랴에 왔으니 나이트클럽을 가보기로 했다. 문제는 11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는 것이었다. 피곤은 하지만 이슬람 여성들은 어떻게 노는지도 보고 싶었고 오랫만에 놀고 싶은 마음도 있어 밤거리로 나섰다. 택시를 탔는데 우릴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이 아닌가? 다시 탔으나 길을 몰라 물어 보며 가는데 불안해져서 번화가에서 내렸다. 시간도 남아 아이쇼핑을 하기도하고 티셔츠를 구입하기도 하면서 클럽을 물으니 한 남자를 따라 가란다. 그런데 가도가도 나오지 않고 이상한 으슥한 골목으로 자꾸 들어가니 불현듯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돌아설까하는데 드디어 클럽이 나왔다. 시간이 한시간 쯤 남아서 앉아서 기다리다가 앞으로 가보니 험상궂게 생긴 어깨들이 까만 티셔츠를 입고 쭉 서있는것이 아닌가? 겁이 나기도해서 돌아갈까 했으나 기다려서 시간이 되어 입장했다. 그런데 클럽이 고성을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지붕이 없고(그래서 레이저를 쏘면 멀리서도 보임) 스테이지가 없는, 우리 나라의 스텐드바를 여러개 모아 놓은 형태였다. 새벽 한시가 되면 러시아 무희들이 나온다고해서 기다려 봤는데 4군데 스테이지 위에 올라가서 건전한 에어로빅을 추는 느낌이었다. 우린 놀랍기도, 우습기도 하여 맥주를 한병씩 먹고 나왔다. 나오다가 어깨들한테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웃으며 같이 사진을 찍기도 찍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일일이 몸수색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서도 부자 남자는 애인을 데려와서 돈을 내면 그 자리에만 불꽃을 올려주는 것도 하고 테크노 음악에 맞취 탁자 아래에서는 부지런히 발을 놀리고 있는 모습도 재미 있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