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바티칸 회화관

boriburuuu 2018. 12. 12. 20:45

회화미술관인 피나코테카에 들어섰다. 역사상 사람들로부터 유일하게 찬양 받았던 예술이자 과거의 아름다움을 부흥시키고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연 르네상스 . 피나코테카에서는 모든 회화적 기법을 완성시킨 천재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중세 비잔틴 시대 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전시하고 있다. 바티칸의 마지막 건축물로 1931년 증축했고 피오 11세가 바티칸 궁에 있는 전임 교황들의 물건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곳의 그림들은 1797년 나폴레옹이 파리로 옮겨 갔던 것을 1815년 비엔나 회의에서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의 숨은 노력으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먼저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인  페터 벤첼의 < 아담과 이브가 있는 에덴동산>이다. 이브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권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200여종의 동물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아련한 배경과 수많은 동물들 탓에 심리 치료에 효과가 있는 그림이라고 한다.

 

 페터 벤첼의 <표범과 얼룩말의 싸움>이다. 역시 동물 전문 화가답게 생동감이 있다.

 

 

 

프란체스코 만치니의 <이집트로의 피신 중 휴식>이다.   마르체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18세기 전반기에 교황청에서 활동했던 에밀리아에서 교육을 받은 예술가 프란체스코 만치니의 작품이다. 그의 동시대인들 중에서 만치니는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크와 로코코 요소를 합성한 완전히 개인적인 화법을  개발했는데, 그리기 쉽고 부드러울뿐 아니라  중요한 색채 재료로 특징지어지는 그림의 일종이다.

 

토마스 로렌스의 < 영국의 조지 4세의 초상화>다.  1816년 서명하고 날짜를 적은 이 그림은 영국의 미래의 왕 조지 4세를 보여주는 것으로, 나폴레옹을 몰락시키고 영국 왕좌로 오른 후 아마도 그가 비오 7세에게 준 것일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역사적 초상화다: 조지 4세는 가장 높은 기사들의 배지로 장식되어 있다(가터의 배지는 그의 왼쪽 다리와 황금 양털의 배지로 인식된다) 프랑스 왕 루이 18세가 그에게 준 테이블 옆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테이블에는 그의 왕관과 교황 비오 7세가 직접 보낸 편지가 놓여 있다. 그 초상화는 호화로운 옷과 풍요로운 모습으로 왕족이 된 것을 기념한다.

 

비아지오 푸치니가 그린 유디트와 홀로페우스다. 유디트가 성모마리아처럼 그려져 있네.

 

중세의 교황청에서는 순교자들을 매우 강조했었던 것 같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그림이다.

카를로 마라타의 < 클레멘트 9세의 초상화>다.  화가는 교황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는 종교적인 주제를 가진 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초상화에서도 그의 이름을 날렸다. 이 유형의 가장 효과적인 그림 중에는 1669년에 서명되고 날짜가 매겨진 클레멘트 IX 로스피글리오시의 초상화가 있다. 그의 왕위에 앉은 교황은 3/4 프로필로 묘사되어 있으며 날카로운 심리적  표현력으로 보여진다.

폼페오 바토니의 < 비오 6세의 초상화>다.  아마도 항상 교황청 소장품에 속해 있었을 이 그림은 안톤 라파엘 멩스의 작품으로 1932년 피나코테카에 들어갔다. 이것은 이후 루카, 폼페오 바토니의 화가로 바뀌었다. 훈련을 위해 로마에 간 투스카나 예술가는 가장 다른 종류의 그림을 확실히 작업하면서 그곳에 남아 있었지만, 그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초상화를 전문으로 했다. 그의 시대의 중요한 인물들은 그에 의해 그려지기를 원했고, 그 중에는 물론 교황 선거 직후 바토니와 접촉한 비오 6세(1775년부터 1799년까지의 교황)도 있었다. 예비국에 있는 바티칸 그림은 교황의 공식 초상화(현재 로마 박물관)를 위한 연구로 여겨지고 있다. 교황은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왼손에는 로마 박물관 버전에서 "우리 주님의 성하께"라고 쓰여진 종이 한 장을 들고 있다.

 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의 <베네딕토 14세의 초상화>다.  크레스피는 1739년 볼로냐 대주교인 프로스페로 램버트니 추기경에게 그의 도시의 신학교 부임을 위해 기념비적인 비율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위임받았다. 이듬해 추기경은 베네딕토 14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따라서 교황이 로마에서 초상화를 갖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화가는 초상화를 바꾸라는 요청을 받았다. 복원 중(1981년)에 찍힌 엑스레이는 구성의 다른 단계를 최종 버전까지 밝혀냈는데, 이는 상당히 변경되었다. 실제로 크레스피는 교황의 인물의 크기를 늘리고, 복장을 바꾸고, 교황의 역할을 목격하는 부속품(교황 티아라)을 추가했다.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 의자 모델 >이다.

 

크리스트파노 알로리가 그린 유티트다.  좀 더 강하고 의지가 표현되는 모습이다. 유디트를 그린 작품 중 아름다움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귀도 레니의 베드로 성인의 십자가형이란 작품이다. 빛을 이용해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에 능했던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화가로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 로마군에 붙잡혀 사형을 당하는데 자기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서 예수와 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없다고 해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이는 형을 자처한다. 처형의 순간 죽음의 공포로 인해 다리에 못을 박으려는 것을 저지하려는 몸동작과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의 창백한 다리와 피가 쏠려 붉어진 머리가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매장>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성인들의 모습이 그려진 이 그림에는 많은 뒷 이야기가 있는데 주로 빈민들을 데려다 모델을 삼아 카톨릭 관계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는데 이 그림에서도 예수의 다리를 들고 있는 니고데모 성인에게서 코가 빨개진 술주정뱅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고 예수의 얼굴에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여하튼 강렬한 사실주의, 극적인 빛의 사용 등으로 전성시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성모 마리아는 수녀의 복장을 하고 있고 카라바조는 관람자의 시선을 땅바닥의 바로 아래 시신이 매장될 곳에 위치 시켜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라파엘로의 천상 모후의 관을 쓰는 성모 마리아다.

 

 

파리스 보르동이 그린 용을 무찌르고 있는 성 조지이다. 대천사 미카엘과 함께 용(악)을 무찌르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그림과 조각에 등장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 히에로니무스(제롬)다. 그의 특별전이 전 세계에서 열리기 때문에 진품을 보기가 힘들다는데 운이 좋았다.미완성인 이 작품은 그의 해부학적 지식이 잘 반영된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물의 얼굴과 목, 뻗은 팔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근육과 골격의 표현은 인체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의 표현이다. 주인공 히에로니무스는 실존 인물로 그리스와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학자였고 추기경의 자리까지 올랐으며 사막의 은둔자이기도 하다. 한 손의 돌맹이는 금용생활 중 욕구가 생길 때마다 가슴을 쳤다는 돌이고 화면 아래의 사자는 발의 가시를 빼준 뒤 늘 성인 곁을 지켰다고 한다. 수많은 화가들이 그를 모델로 작품을 남겼다.

 

 

로렌조 로토의 성모자이다.

 

조반니 벨리니의 <죽은 예수를 애도함>이다. 페사로의 프란체스코교회의 제단화 중 하나로 위로 올려보는 시점으로 그려진 것이다. 십자가 처형 당시 롱기우스가 찌른 가슴께의 붉은 상처가 아니라면 예수는 매우 건강해 보인다. 예수의 손에 향유를 바르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와의 교감은 지극히 인간적인 슬픔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갈색 빛의 중간색조와 차분한 자세로 절제와 우아함을 효과적으로 연출해냈다. 부축하고 있는 사람은 아리마테아 요셉으로 유대 공의회 의원이었으나 예수를 죽이는 의회의 결정을 못마땅해 했다고 하며 외경에 따르면 창에 찔려 흘러 나오는 예수의 피를 성배에 담았고 십자가 처형 후 시신을 고운 베에 싸서 자신이 마련한 무덤에 안치했다고 한다. 오른쪽 몰약 통을 들고 선 사람은 니고데모다. 몰약은 일종의 시신 방부제였다고 한다. 그역시 공의회 의원으로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했고 예수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해서 이 두 사람은 예수 죽음 직후에 자주 등장한다. 벨리니는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로 피렌체나 로마 미술계가 선의 우위를 고수하는데 반해 대기와 빛을 중시했고 자연스레 그 변화를 색으로 표현하는데 열중했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37세의 나이로 죽기 전 그린 예수 그리스도의 변용이다. 천재 라파엘로가 37세에 요절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긴 것을 제자인 로마노가 완성했다. 상단과 하단은 각각 마태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상단부는 예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기적을 하단부는 예수가 귀신 들인 소년을 치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관 위에 놓여진 작품으로도 유명하단다.

 귀신들린 소년의 몸을 보면 건강한 성인 남성의 근육을 갖고 있는데 이는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았음을 볼 수 있다. 소년의 뒤집힌 눈을 보면 예수를 향하고 있는데 당시 열병에 시달이던 라파엘로가 예수에게 자신의 병도 낫게 해 주기를 바라는 열망을 읽을 수 있다.

라파엘로의 포리뇨의 성모다. 그가 20대 중반에 그린 그림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영향을 받아 스푸마토 기법을 쓰고 있다.  바티칸 궁의 대벽화를 완성한 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비서였던 명문가의 시지스몬도 데 콘티가 성모에게 바치기 위해 그리게 했고 로마의 아라카엘리 성당 제단화로 이용되었다. 색채의 다채로움과 그 명도를 강조하는 것은 베네치아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 특유의 삼각 구도는 상부의 성모를 기점으로 하부 좌우로 연결되어 형성되어 있는데 기증자인 콘티는 우측에 무릎을 꿇고 있고 좌측에는 성 프란체스코가 같은 자세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라파엘로가 10대 때 그린 그림으로 동정녀의 즉위식이다. 성모 마리아의 관을 여니 백합 꽃만 있었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페루지아에 머물 때 그린 작품으로 구도면에서 영향 받은 페루지노와 판투리키오의 흔적이 뚜렷하다. 페루지아의 명문가 여인 오디의 의뢰로 당시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위해 제작된것으로 1797년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것을 1815년 반환 받은 것이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색감과 색조를 나타내며 명쾌함을 주고 있다.  

 

 

 

 

 

 

 

 

 

 

 

까를로 크리벨리의 <피에타>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슬퍼하고 있는 모습인데 예배당 아치 사이에 걸린 그림이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매음굴에서 일하던 부정한 여인이었는데 예수를 찾아가 그의 발을 향유로 바르며 자신의 죄를 회개했고 예수가 승천한 뒤 자라는 머리카락으로 대충 가리고 다닐 만큼 외적인 치장을 하지 않은 채 광야를 떠돌며 기독교를 전파해 향유통이나 긴 머리카락을 상징으로 삼고 있다.

멜로초 암브로시의 <프레스코화들>이다. 1480년 로마의 산티아포스톨리 교회 제단의 둥근 천장에 그려졌던 것의 파편으로 주문자는 식스토 4세의 조카인 지롤라모 리아리오 추기경이라고 한다. 예수가 지상에서 일을 끝낸 뒤 승천하는 모습과 함께 이를 축하하기 위해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담았다. 1711년 교회가 파괴되면서 손상되어 교회 재건 동안 퀴리날레궁으로 옮겨졌다가 바티칸으로 오게 되었다. 원래 하나의 그림이었지만 성당 벽면을 리모델링하면서 그림이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복원시켜 옮겼다고하는데 노란머리 천사는 아름다운 천사로 유명하단다.

 

 

 

 

 

수태고지도 정말 많이 보이는 주제다.

 

페루기노의 < 세인트 로렌스, 툴루즈의 루드비히, 에르콜라누스, 콘스탄스와 함께한 성모자>다.  이 제단은 1495년 말에서 1496년 사이에 그려졌다. 원래 작품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 : 무덤 (현재 페루기아 움브리아 국립 미술관)에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시마 티움 (상부)과 바티칸 패널.,후자의 아치형 건축 구조의 중심에 있는 성모님은 어린이 예수를 무릎에 앉힌 채 기념비적인 왕좌에 앉아 있는데, 그 옆에는 성 로렌스, 툴루즈의 루드비히, 에르콜라누스, 콘스탄스의 보호자들이 있다.구성의 평형, 명확한 원근법 구조, 인물이 풍경과 결합하는 조화,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특징으로 그려진 인물의 우아함은 페루기노의 모든 작품을 구별하는 요소로서, 이미 알고 있던 그의 위대한 명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니콜로와 지오반니의 <최후의 심판>이다. 11-12세기 작품으로 이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니콜로와 지오반니의 서명이 들어가 있는데 부자지간으로 추정되고 열쇠 같은 독특한 모양에 총 다섯열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열의 아랫쪽 띠에 라틴어 문장이 담겨 있어 그림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첫째 열은 예수가 천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고 둘째 열, 제단 앞의 예수는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열두제자를 거느리고 있다. 셋째열에는 세 장면이 있는데 왼쪽은 성 바오로가 선택 받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장면이, 중앙에는 이들을 위해 탄원하는 성모 마리아와 성 스테파노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은 일곱 선행 중 세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헐벗은 자에세 옷을 입힙, 감옥에 갇힌자를 풀어줌, 목마른 자에게 물을 줌.'이다. 넷째열은 왼쪽은 흉측한 동물들이 시신을 뱉어 내고 있고 오른쪽은 두 천사가 나팔을 불어 죽은자를 깨우고 있다. 마지막 열의 오른쪽은 지옥의 모습이다. 왼쪽은 마리아가 기도하는 모습과 구원받은 자들이 거하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리아와 함께 있는 두 여인은 그림을 주문한 베네데타와 코스탄차 수녀원장이다.

 

 

 

라파엘리노 델 콜레의 <동방박사의 경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