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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일(2019.03.05) 창산 트레킹

boriburuuu 2019. 3. 28. 22:08

 오늘은 창산에 오르기로 했다. 다들 산을 좋아해서 메리설산에 오를 연습도 할 겸 일정을 잡았다.

서쪽으로 히말라야산맥 마지막 봉우리인 창산은 해발 4,122m로 대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산이자 대리석 주산지로 유명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리에 와서 창산을 오르지 않으면 대리에 가봤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즉 대리에 왔으면 창산을 꼭 올라봐야 한다는 말이다. 창산의 사전적 의미는 ‘파랗게 보이는 아득히 먼 산’이지만 하늘색이 사시사철 비취색으로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옥대운은 창산을 옥대로 두른 것처럼 보이는 구름을 말한다. ‘창산이 옥대를 둘렀으니 굶은 개도 쌀밥을 먹을 수 있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백족은 옥대운을 풍년의 징조로 여긴다. 어제 숙소의 젊은이들이 다리에 눈이 와서 행운의 징조라고 하더니만. 창산 케이블 카 있는 곳에서 이름도 멋진 칠룡여지를 거쳐 감통사 케이블 카 있는 곳까지의 트레킹 코스(12킬로)를 ‘옥대운 유로위다이윈여우루’라 이름 지었다. 참으로 멋진 이름이다. 여기에서 유로遊路‧여우루는 등산로를 말한다.

창산은 뱀처럼 길게 이어지고 19개의 봉우리마다 맑은 계곡이 흐른다. 정상인 마룡봉은 4122m로 만년설이고 2011년 10월 프랑스 기술로 세마담 케이블카를 세워서  5500m로 해발 3900m까지 올라가고 15분 정도 걸으면 세마담에 도착한단다.

 

숙소에서 나와 택시를 타려니 40원을 달라고 한다. 내려서 2킬로나 가야한다고 해서 택시를 타려고는 했으나 비싼 것 같아 다른 차를 찾으니 자가용이 다가와서 25원을 달라고 한다. 20원으로 흥정을 하다가 버스가 와서 얼떨결에 올라타버렸다. 차에서 내리니 입구에 절이 있어 들어가본다.

 

 

 

 

 

 

 

 

 

 

 

 

 

 

 

 

 

 

이 동상은 그림으로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대리국 등의 탄생설화와 관련있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감통사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곳까지 2킬로라고 들었으나 이렇게 먼줄은 상상도 못했다. 산을 오르기전에 여기서 다 지쳐버린 느낌이어서 택시를 타지 않은 것을 정말 많이 후회했다.

 

드디어 감통사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 도착했다.

 

 

 

역시나 특이한 과일들이 눈에 띄는군.

 

 

산에 오르기 전에 천년고찰이라는 감통사에 먼저 가 보았다. 다른 절들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어 보였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서 역시 절을 보는 안목은 훌륭하지 못하다.

 

 

 

와불전 앞에서 한 스님에게 같이 사진 찍을 수 있냐고 묻자 옷을 갖춰 입겠다며 사라졌다.

 

 

 

 

 

 

 

 

 

 

사진을 찍다보니 그 스님이 오셔서 같이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 모두에게 목걸이를 선물로 주셨다. 불상이 있는 목걸이였지만 언니것까지 기념으로 갖고 있다.

 

이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길을 잃지 않고 등산을 잘 마무리 해야 할텐데 걱정이다. 주위를 잘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발이 빠른 언니 때문에 항상 걱정이다. 잎서지 말라고 반협박을 하곤 하지만 실전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고 자신만만하게 앞장을 서면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두세시간을 헤메는 일이 매 여행마다 있어 왔기 때문에 항상 긴장이다.

 

 

 

 

 

 

 

 

 

이런 사진을 찍고 조심스럽게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이런 정말 싱거운 코스였다. 바닥은 다 포장이 되어 있었고 구두를 신고 가도 될만큼 평탄해서 미세먼지 없는 것은 좋으나 산행답지는 않은 것이었다.

 

 

 

 

 

 

 

 

 

 

 

 

 

 

 

드디어 7개의 폭포와 소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칠룡여지는 산 아래 넓은 이해호수를 다스리는 용왕의 일곱 공주가 매년 여름 보름달이 뜨면 이곳에 와서 목욕을 했고 공주들이 용궁으로 돌아간 후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선율이 들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폭포수가 떨어져 모두 7군데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폭포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갈수기라 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등산객들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바위를 반달모양으로 깎아 놓았다.

 

 

 

 

 

 

 

 

 

 

 

 

 

 

 

 

 

 

 

 

 

 

 

 

 

 

 

꽃과 폭포를 보고 온 것 까지는 좋았는데 지도도 잘 볼줄 모르는 이 언니가 또 일을 저질렀다. 아까 직원들에게 물었던 것은 폭포였기 때문에 위로 가라고 한 것인데 폭포를 보고 내려와서는 다시 위로 길을 잡은 것이었다. 게다가 또 어찌나 빨리 올라가는지 이때부터 무화과님의 고산증세가 시작되었다.

 

 

3000미터 전망대까지 단숨이 올라오니 하얗게 눈이 덮여 있는 창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마룡봉이 눈 앞에서 우릴 유혹한다. 여기서 약간 갈등이 되었다. 이왕에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케이블카를 타고 세마담에 가 볼까나하고.

 

 

이산에는 이런 꽃들이 많이 피어 있어 또 한 즐거움을 주었다.

 

다들 원하지 않아 세마담은 포기하고 다시 내려와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역시 평이한 도로여서 올라갔다 오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메리설산에서도 이럴까봐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드디어 중화사에 도착했다. 중화사는 남조시대인 8세기경에 세워진 도교사원이다. 입구에는 배를 문지르면 복이 온다는 배불때기 포대화상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안에는 청나라 강희제가 하사한 ‘滇雲拱極전운공극’ 편액이 걸려 있다. ‘滇’과 ‘雲’은 모두 이 운남 지역의 왕조와 지역을 의미하고 ‘拱極’은 ‘최상의 예로 절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강희제는 오삼계吳三桂가 주도한 삼번의 난중국 청나라 초기에 만주족에 대항하여 일어난 한인들의 반란을 평정하고 청나라의 영토로 편입한 후 이곳 지역민들의 이반된 민심을 추스르고자 최상의 예로 대하며 통치하겠다는 강희제의 의사가 담겨 있는 편액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화사에서 대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풍광이 백미이다. 산과 들과 하늘과 호수 그리고 옹기종기 마을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말을 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이고 리프트도 운행하고 있었으나 우린 걸어서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내려가는데 하산길도 어찌나 긴지 후회를 좀 했다. 비도 조금씩 내리고.

내려와서 경찰들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물었는데 왠지 아닌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다시 한 청년에게 길을 물으니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한다. 전혀 방향이 다른 것 같은 길로 구불구불 가더니 짠하고 우리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고마운 청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