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헤이그를 떠나 호게 국립공원에서 그리 떨어져 있지 않은 비앤비를 빌려서 하룻밤을 보냈다. 처음에는 말과 양만 있는 허허벌판으로 자꾸 들어가서 걱정했는데 숙소는 조용하고 깨끗했고 조식도 맛있었다.
근처에 국립공원이 있어서인지 열기구가 여러개 떠다닌다. 하긴 위에서 보면 그림같은 풍경일 것 같다.
네덜란드는 조그만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숲이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숙소의 닭들이 낳은 계란에 날자를 써 놓고 하나씩 삶아 주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차를 달려서 호게 벨루베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입장료도 인당 20유로일뿐 아니라 주차비도 밖에 세우면 3.8유로, 안에 세우면 7유로인가 한다고 해서 일단 밖에 차를 세워 두고 안으로 들어가니 자전거가 무지 많이 서 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는 자전거를 고르고 있는데 딸과 나는 둘다 자전거를 못탄다. 해서 뮤지엄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7킬로라는 답변이다. 이런. 오늘 쾰른까지 가야해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다시 나가서 매표소에 말하니 밖의 요금은 면제해주고 안의 주차료만 받고 처리해 주어 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 영어 잘하는 딸과 함께 있으니 든든하다. 한참을 운전해 가도 나타나지를 않아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네덜란드, 호게 벨뤼베 국립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울창한 숲속에 자리해 한적한 경관을 연출한다. 독일인 H.크뢸러 뮐러는 네덜란드인 남편의 지원 아래 10여 년에 걸쳐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였는데, 그 소장품이 하나의 미술관을 이룰 만 하다고 판단되자 소유권을 네덜란드 정부에 기증하였다. 네덜란드 정부는 곧 호게 벨뤼베 국립공원 안에 부지를 마련하고, H.C.van de 벨데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미술관 건립에 착수, 1938년에 개관하였다. 1961년에는 여기에 조각공원이 세워지고, 1977년에는 다시 신관이 추가로 건립되었다. 특히 이 곳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270여점을 비롯해 17~20세기 명작들이 가득 채우고 있어서 고흐의 숲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반고흐 뮤지엄보다 더 많은 고흐의 그림을 본 것 같다. 그 유명한 고흐의 자화상, 아를의 다리, 밤의 카페테라스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청동 작품이 서 있다. 미니어 자크가 1956년에 민든 <오스왈드 웬케바흐(1895년 - 1962년)>다.
1972년의 < K-piece> 마크 디 수베로 이 인상적인 작품은 크고 밝은 빨간색, 리벳 강철 H 빔이 함께 K 문자를 형성한다는 사실에서 그 이름을 따 왔다. 그러나 이것이 구조의 출발점이 아니었다. 디 수베로는 조각을 구성하는 선형 요소의 공간적 효과에 주로 관심이 있다. 이것들은 완벽하게 균형잡혀 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균형을 잃는 것처럼 보이며, 이것은 특정한 긴장을 조성한다. 디 수베로는 보통 자신의 거대한 조각품을 직접 제작하는데, K피스도 그렇다. 그는 강철 H 빔이 들어 올려진 크레인을 작동시키고 부품을 위치시키고 용접했다. 이것은 크레인의 도움으로 그의 조각품을 완성하는 그의 방법이다. 그는 자신의 조각품을 ‘크레인을 나의 붓으로 삼차원의 그림’이라고 묘사한다.
<두 개의 인접한 조형물, 첫 번째 버전 1978, 두 번째 버전 2001> 댄 그레이엄(1942년)
거울로 만들어진 조형물에서 한 컷.
루카스 크라나흐의 <비너스와 꿀 도둑 아모르>이다. 시스루의 표현이 탁월하다. 1537년. 비너스 여신과 그녀의 아들 아모르의 이 기념비적인 그림은 전염성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어린 아모르가 꿀을 훔쳤다. 는 여전히 벌집을 손에 들고 화가 난 벌들이 그의 머리 주위에 몰려든다. 의 어머니 비너스는 그에게 여기서 교훈을 주고 있다: 그가 종종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불타는 욕망의 화살은 벌에 쏘인 것만큼 고통스럽고, 이제 그는 자신의 약을 맛보고 있다. 상단 모서리에 있는 라틴어 텍스트는 침에서 오는 고통과 비통함을 비교한다. 주제와는 별도로, 아름다운 피부, 길쭉한 팔다리 및 작고 섬세한 얼굴로 묘사된 비너스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시스루는 그녀의 존엄성을 보존하기 보다는 나체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크라나흐의 이런 종류의 여성 누드 묘사는 이미 그의 시대에 매우 인기가 있었다. 그림은 날짜가 없지만, 1537년 이후에 확실히 만들어졌다. 이것은 아모르 위의 용, 즉 가문의 볏과 크라나흐의 '서명'에서 알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그려진 이 용의 날개는 1537년 이후에 없어진다.
루카스 크라나크의 <사슴사냥>이다. 1557년.
한스 발둥 그리엔이 그린<비너스와 아모르>이다. 1524-1525. 한스 발둥은 16세의 어린 나이에 견습 화가가 되어 그리엔(그린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그는 사랑, 아름다움 및 다산의 로마 여신인 이 비너스와 같은 신화적인 인물을 그렸다. 그녀의 옆에서 아들 아모르는 불타는 사랑의 상징으로 오른손에 불타는 화살을 들고 있다. 그는 눈을 가린 채 공 위에 앉아 있는데, 이것은 진실을 나타낸다. 눈가리개를 벗으면 진리를 보고 신의 영적 사랑이 항상 사람들 사이의 육체적인 사랑보다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발둥 그리엔에게 이 주제는 확실히 매우 육욕적인 비너스를 그리는 이유였다. 실물 크기의 벌거벗은 몸보다 더 큰 그녀의 몸은 어두운 배경에 의해 더욱 강조된다.르네상스 시대에는 풍만한 누드가 인류의 이상적인 이미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동시에 발둥 그리엔은 아름다운 몸이 신의 사랑과는 달리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피터 포터의 <허영>이다. 1655년.
16세기 후반 17세기 초. 핸드릭 반 크레브가 그린 <바벨탑>인데 로테르담에서 브뤼겔의 바벨탑을 놓치고 와서 더 눈에 들어왔던 그림이다.
가에타노의 <자화상>이다. 1564년.
바르텔 브룬 드 오드의 <제라드 본 웨스터부르그의 아내 게르트로우드 본 레우츠의 초상화>다. 1524년. 1523 년에 Gerhard von Westerburg와 결혼 한 지 1 년 후 Gertraude von Leutz의 신부 초상화를 그렸다. 작가가 오른쪽 상단에 표시된 것처럼 그녀는 당시 26 세였다. Gertraude가 손에 들고있는 카네이션은 순수한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녀는 Gerhard에게 꽃을 제공한다. 그가 묘사 된 펜던트 패널은 개인 컬렉션에 있다.
마티스 마리스의 <실잣는 여인>이다. 1873년.
르노와르의 <카페>이다. 1887년. 클로드 모네와 함께, 아우구스투스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의 중심 인물 중 하나다. 그러나 모네는 열린 공기에서 그림그리는 것을 선호하고, 르누아르는 그의 그림의 주제를 모든 생활에서 찾았다. 그는 카페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고 거기에서 많은 종류의 초상화를 그렸다. 가능한한 사실적인 표현을 하기 위해 닫힌 공간에 잇지만 그의 관찰에는 빛, 색, 이동, 대기 등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이 작은 그림은 주로 밝음과 어두움의 대조의 미묘한 플레이. 인물들은 명확한 선을 이용하지 않았다. 세기말 파리 생활의 생생한 스냅샷이다.
<뮤지컬 광대>, 1868년. 오귀스트 르누아르. 르누아르는 파리의 겨울 서커스에서 서커스의 카페의 소유자를 위한위원회에 이 광범위한 논문을 발표했다. 중간에 있는 광대는 존 프라이스 이며, 윌리엄 형제와 함께 "광대 음악가"로 공연했다. 광대는 넓은 나바와 붉은 색이 어우러진 옷을 입고 있으며 바닥에는 모래가 깔려 있고 흰벽과 대조를 이룬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이삭 이스라엘이 그린 <마타 하리>다. 1916년.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더니 역시 모델이 훌륭하니 그림도 그렇다. 이스라엘은 그녀가 일시적으로 헤이그에 살고 있는 동안, 전년에 마타 하리의 기념비적인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그녀를 우아하고 자신감 있는 젊은 여성으로 묘사한다. 이 그림은 느슨하고 빠른 붓놀림과 얼룩으로 그려져 있으며, 색깔은 거의 없다. 모든 관심은 그녀의 키가 크고 위엄 있는 키에 집중되어 있다.
앙리 판틴 라투르가 그린 <정물>이다.1866년. 구스타브 법원에 따르면, 지도자는 현실주의에 있으며, 예술가는 단지 몇 가지 존재를 해야 합니다. 추상적인 주관은 그림을 아름답게 하지 않는다. 그의 멘토와 마찬가지로, 판틴 라투르는 "눈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는 색과 시 사이의 명확한 링크를 가지고 있으며, 시를 음악의 표현력과 비교한다.,그는 어두운 배경에 두드러지는 배치를 사용했는데, 이 색깔을 만들었고, 모든 음영을 가지고, 더 많은 스트리핑을 했다. 라투르는 과일과 꽃을 그리는데도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그는 초상화를 그리는것을 선호했다. 그에게 있어 정물은 돈벌이에 불과했다.
앙리 판틴 라투르가 그린 그림이다. <에바 칼라마치 카타르기의 초상화>인데 정말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이다. 그가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도 그렸었네? 1881년. 라투르는 에바 칼리마치-카타르기와 같은 가족이나 친구들의 초상화를 만들었다. 그는 19세기의 "그랜드 레이디"처럼 거의 16세에 도달했으며, 이 아름다운 초상화는 25주년 기념일에 그의 휴스 밴드 안톤에서 헬렌 크롤러 - 러에게 선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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