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이 그린 <오베르 쉬르 우아즈 목 맨 사람의 집> 이다. 1872년 세잔은 오베르에 머물렀다. 오베르는 당시 화가들이 선호하는 장소였는데 예술 애호가이자 전문가였던 가세박사 덕분이었다. 세잔은 고흐의 의사였던 가세박사와 교분이 깊었다. 가셰박사는 세잔에게 에칭 기법의 기초를 가르쳤으며 에칭 작업을 여기서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 작품은 세잔이 추구했던 새 양식이 가장 잘 반영된 작품으로 여겨진다. 중앙 지점에서 몇 가지 강한 축이 있다: 왼쪽으로 올라가는 경로; 또 다른 그림은 그림의 중심으로 내려간다. 오른쪽으로 가는 곡선을 형성하는 제방; 위쪽으로 기울어진 나무의 가지. 계획은 매우 밀접하게 서로를 따른다.
폴 세잔의 <오베르 지방의 레미 거리 교차로>다. 1872년.
세잔의 <델프트 꽃다발>이다. 1873년.
세잔의 <델프트산 큰 화병 속의 다알리아>이다. 1873년.
세잔의 <오베르 가셰박사의 집>이다. 1872-73년.
세잔의 <자화상>이다. 1873-76년. 생전에 비평가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에밀 졸라의 소설 속에서 실패한 천재로 묘사된 자신을 알아보고 절친한 친구 졸라와의 절교를 선언했었던 이 자존심 강한 화가 세잔은 자화상을 그릴때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무섭고 쏘아보는 듯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세잔의 『화가의 초상』은 결코 팔레트를 들고 있는 형상도 아니며 멋진 신사도 아니다. 자신만만한 긍지에 차 있으면서도 불안해하는 눈빛의 이중적 시선은 편치 않은 현실을 나타낸다. 덥수룩한 수염과 검은색 일색의 웃옷 역시 무지한 대중에게 던지는 하나의 도전임을 암시한다.
세잔의 <카드 놀이하는 사람(습작)>이다. 1890-92년.
세잔의 <앉아 있는 농부>다.
세잔의 <카페의 여주인>이다. 1895년. 세잔은 수줍은 성격에 그림의 속도도 느린편이라 친척이나 측근과 함께 일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런 친밀함에도 불구하고 그림에서 심리적 분석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의 몸, 컵 및 커피 메이커의 수평 및 수직같은 구성 요소에 주력하고 있다. 선의 엄격한 조직에 따라 매우 단순화된 방식으로 표현된다. 볼륨의 이러한 형상화뿐만 아니라 테이블의 시야에서 훨씬 더 높은 원근으로 표현해서 큐비즘을 예고한다. 1895년 경에 제작된 이 그림은 거의 20년 동안 인상주의에서 벗어난 세잔의 예술의 진화를 상징한다. "원통, 구체, 원뿔으로 자연을 대하고 싶은" 그는 이 초상화를 정물로 접근한다.
세잔의 <병과 양파가 있는 정물>이다. 1895-1900년.
세잔의 <목가/ 전원시>이다. 1870년. 세잔이 31살 때 제작한 『목가』는 현실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연인들의 만남을 그린 것으로 1860년대의 작품들처럼 격렬한 청춘기의 성적 환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극단적인 연극무대처럼 표현되고 있고, 중앙에는 보수적이며 나이가 든 남자가 턱을 괴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의 모습으로 그림과는 동떨어지게 객관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얼굴 묘사가 없는 두 남자를 동반하고 있으며, 그 주위는 여성의 누드가 둘러싸고 있다.
세잔의 <액스 지방화가, 아쉴 앙프레르의 초상>이다. 1867년. 세잔의 친구였던 앙프레르는 기형적인 신체를 가졌지만 우아하고 세련된 사람이었다. 왜소증을 앓았던 그는 키보다 높고 커다란 의자 위에 앉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왜소한 신체 탓에 거의 옥좌처럼 보인다. 세잔은 공식 초상화와 같이 엄숙하게 표현하려 하고 이로 인한 숭고함이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세잔의 <성 앙투안의 유혹>이다. 1875년. 〈〈성 앙투안의 유혹〉〉은 플로베르가 24살 때 페터 브뤼헐의 그림인 〈성 앙투안의 유혹〉을 보고 이를 주제로 쓴 극형식의 산문으로 수행 초기에 온갖 환영에 시달렸던 앙투안이라는 성자에 관한 글이다.
세잔의 <주전자가 있는 정물>이다. 1869년. 이 그림은 세잔이 화가로서의 인생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세잔은 드디어 자신의 길을 찾은 듯 보인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소재 앞에서의 겸손함, 고전적인 배치, 확신에 차 있으나 지나치지 않은 붓터치 등은 세잔이 이후에 그리게 될 명작들을 예고하고 있다. 이 당시에도, 그리고 이후 몇 년 동안 세잔은 정물과 같은 실제 존재하는 것을 그리는, 현실의 화가이면서도 상상 속의 소재 역시 그림에서 다루었다.
세잔<세잔의 액세서리, 필립 솔라리의 메달이 있는 정물>이다. 1873년.
세잔의 <변호사(돔카 삼촌)>이다. 1866년. 이 그림은 변호사로 분한 도미니크 외삼촌의 초상화다. 한참 변론 중인 듯한 모습이다. 이 반신상은 하얀 배경과 검은색 법원 복장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스페인의 황금시대 회화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작품은 마네가 종종 이용했다. 그림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일종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이 시기에 세잔은 그의 모델을 그리는데 색의 두꺼운 층을 캔버스에 적용시키는 쿠르베의 팔레트 칼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세잔이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는 나이프로 물감을 발라 인물과 배경, 빛과 그림자가 같은 평면에 있는 듯이 표현하는 이 기법은 초상화를 그리던 이 초창기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세잔의 <마리아 막달레나, 고통>이다. 1869년. 조각은 더 큰 구성의 일부였다. 오르세 미술관의 아래의 고성소의 그리스도도 그 중 하나였고 두 인물 간의 규모 차이는 놀랄 수 있다. 오르세 미술관에 모인 두 조각은 작가가 개발한 주제를 더 잘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믿음은 전통적인 종교 문화와 프로방스 전통이 혼합된 그의 믿음을 반영한다. 사실, 막달라 마리아를 위해 예약된 중요한 광장은 중세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상트 - 빅투아 산 근처 생트 보메 대산의 기슭에서 그녀의 일을 종료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대부분 화가들의 막달라마리아가 반누드로 그려진 것과 대조적이다.
세잔의 <고성소의 그리스도>다. 왼쪽 아래 모서리에 있는 캐릭터들은 아마도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킨다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다. 1890년. 세잔은 고향인 엑센 프로방스의 박물관에서 르 나인 형제의 카드 플레이어들을 보았다. 1890년대에 작가는 카라바지오에서 영감을 받은 이 테마를 반복해서 다루며 대결에 특별한 중력을 부여했다. 세잔은 거대한 실루엣과 캐릭터의 조용한 집중력을 제스처와 시선의 미묘한 게임으로 대체한다. 빛이 재생되는 병은 컴포지션의 중심 축을 형성한다. 공간을 두 대칭 영역으로 분리하여 플레이어의 반대를 강조한다
세잔의 <맹시의 다리>다. 1879년. 세잔이 1880년경 채택한 소재를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이후 그가 풍경화를 그리는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이 새로운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캔버스에 색을 칠하는 방식 중 ‘분할’이라는 기법이었다. 그림의 공간은 서로 엉켜 있는 긴 직선의 붓터치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그 결과물로 나타난 초기의 작품들은 세잔이 말기에 그린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매우 부드러우며 감각적인 효과를 보여주었다. 1879년은 세잔이 종종 말했듯이 그가 인상파를 뛰어 넘어 자신만의 기법, 방식을 가지기 시작한 해다. 그리고 당시 그려진 세잔의 작품 중 몇 작품 만이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간과 대기를 모두 지배하고 그림을 밝혀주는 빛을 드러내고 있다.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이다. 1890년. 1870년대부터 생애말까지 세잔은 목욕객에 대한 구성을 그렸다. 그의 큰 야망은 인간의 모습과 풍경의 완전한 융합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각 요소는 일종의 공통 아키텍처에서 동일한 중요성으로 처리된다. 화가의 관심은 르누아르처럼 육체가 아니라 공간을 강력하게 구성하는 몸에 있다. 물의 주제는 무시되고 그림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광물로 남아 있다. 구름의 섬세하고 무지개 빛깔의 매끄러운 소재만이 세잔의 인상파에 대한 애착을 떠올리게 한다. 이 그림은 후에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 정물>이다. 1895-1900년. 소파 위에 놓인 흰색 식탁보는 과일 표면 특유의 생생한 광택이 더욱 빛나고 도드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중앙에 솟아있는 과일 그릇은 흰색 천 사이에서 솟아나와 과일의 묶음들을 자연스럽게 구분하면서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며, 오른쪽에 놓인 화려한 장식문양의 물병은 그 표면에 새겨진 화려함으로 인해 앞에 놓인 과일과 뒤쪽 주름진 천 사이에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무언가 대상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풍부한 경물들의 모양과 색의 화음을 이루는데, 마치 숲과 바위들로 빼곡히 채워진 그의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세잔의 <현대 올림피아>다. 1873년. 그림에 잘 등장하지 않는 특이한 인물이 나타난다. 바로 그림을 그린 화가인 세잔 자신이다. 이 주제를 처음 시작했던 마네는 자신의 그림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잔은 화면 뒤로 숨어있는 화가의 역할을 좋아하지 않았다. 에밀 졸라와 세잔은 '화가는 그림의 정신이며,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화가'라고 생각했다. 마네는 그림을 그릴 때 절제된 양식으로 그리기 위해서 노력했고 주제를 완전히 중립적인 환경 속에 놓아두었던 것과 반대로 세잔은 〈올랭피아〉를 현대화하기 위해서 형태를 부풀리고 뒤틀었다.
세잔의 <바구니가 있는 정물>이다. 1888-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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