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술관/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클로드 모네

boriburuuu 2019. 6. 28. 17:54

클로드 모네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로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작품 《인상, 일출》에서 ‘인상주의’라는 말이 생겨났다.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으며, 연작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탐색했다. 말년의 《수련》 연작은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을 보여준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다음은 모네의 작품들이다. 모네의 <국화>다.

모네의 <베퇴유 성당>이다.

모네의 <옹플뢰르 눈 속의 길위의 수레>이다. 클로드 모네는 일찍이 눈이라는 소재에 매료되었는데, 그것은 노르망디에 머물며 아름다운 눈풍경을 여러 점 그린 쿠르베의 영향을 받았던 까닭이었다. 눈의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눈 위에서 반사되는 빛의 변화를 연구해야 했다. 모네는 눈 덮인 길을 흰색으로만 처리하는 대신 색조의 미묘한 차이를 한껏 활용해 푸른색의 반사광이 감도는 무지개빛으로 채색했다.

네덜란드 북부의 도시인<잔담>이다.

클로드 모네의 <라일락>이다.

모네가 그린 <에트타트의 포트 아몽> 아기 코끼리 절벽이다.

모네의 <아르장튀유의 다리>다. 1874년.   범선이 있는데 빛의 효과는 돛대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배경에 은행에 보이는 건물의 지붕에, 빛의 활기를 강조 보완 색상 구성표 (오렌지와 파란색)를 허용한다. 

모네의 <아르장퇴유 부근의 개양귀비꽃>이다.  양귀비를 소개했다. 그림은 이제 가장 유명한 중 하나가 되었다. 여름날에는 들판을 산책하는 활기찬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모네는 윤곽을 희석하고 양귀비의 연상에서 다채로운 리듬을 구성해서 추상화를 향한 첫 번째 단계를 보였다. 이 풍경에서 우산을 쓰고 있는 젊은 여성과 전경의 아이는 아마도 카밀, 예술가의 아내, 그리고 아들 진일 것이다.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철교>다.

모네의 <야외에서 인물 그리기 습작, 양산을 쓰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이다.

역시 <야외에서 인물 그리기 습작,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이다.

모네의 <서리>다.

모네의 <세느강 위의 유빙>이다.

모네의 < 죽은 침대 위의 카미유 모네>이다.

모네의 <폭풍우치는 벨- 일 해안>이다. 1886년 모네는 벨-일 섬을 주제로 39점을 제작했는데 그중 하나다.

모네의 <건초더미, 여름의 끝자락>이다.

루앙 대성당 연작이다 오르세에는 네 점이 있었다. 굴곡이 심한 장식이 특징적인 고딕 양식의 건축물인 루앙 대성당은 시간과 시후 조건에 따른 대기의 변화와 빛의 굴절을 연구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

<루앙 성당, 정면에서 바라본 대문 갈색의 조화 >이다.

<루앙 성당, 성당의 정문, 흐린 날씨, 회색 조화 >다.

<루앙 성당. 성당의 정문과 생 로맹 탑, 아침, 흰색 조화 >이다.

<루앙대성당, 성당의 정문, 아침 햇살, 파랑 조화 >이다.

이 멋진 그림은 <석양의 국회 의사당(런던)>이다. 1904년. 모네는 런던에 체류하면서 물을 묘사하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거대한 런던 의회 건물을 루앙대성당과 마찬가지로 빛과 안개의; 효과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붉은 태양 빛을 박으며 변화하는 색채로 인해 건물은 마치 물위에 떠 있는 그림자처럼 보이며 중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블루 님페아스>다. 1919년.  님페아스는  백수 백합의  이름이다. 모네는 1893년에 지베르니에 있는 화가의  물 정원에서 그들을 성장했다. 1910년대부터 1926년 화가가 사망할 때까지 정원과 분지, 특히 그의 유일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취했다: 바닥에 파문허브와 물. 그림과 원예 외에도, 나는 아무것도 잘 하지 않습니다. 내 최고의 걸작은 내 정원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눈덮힌 콜사스산>이다.

<지베르니 정원>이다.

<초록색 효과- 포플러 나무 연작>이다. 1891년.   에프테의 왼쪽 둑에 있는 라임츠 습지 가장자리에 심어진 나무를 그린 20개 그림 중 하나다. 이 그림의 순간성은 자연 앞에서 느끼는 인상의 힘과 간결함, 조명의 변화, 기후 및 계절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나무의 곡선 세트와 구성이 성공한 이 그림에서 모네는 두 번째 의 대각선을 강조하여 전경에 세 그루의 나무만 유지했다. 이 시리즈를 구성하는 그림은 보트나 해안 바로 부근에서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 관찰된 풍경이 종종 그려져 있다. 나무의 수직성은 선택된 형식에 의해 향상되고 높이가 매우 늘어난다.

<지베르니의 나룻배, 혹은 노르웨이식 나룻배>이다.

모네의 <1878년 6월 30일 축제가 열린 몽토르게이 거리>이다. 만국박람회의 폐막을 알리는 축제의 모습이다. 한 건물의 발코니에 올라 원근법을 통해 곡선을 그리며 건물들 사이로 사라져가는 거리를 묘사했다. 군중의 격동적 움직임과 창문의 깃발이 거칠고 빠른 필치로 표현되어 있다. 모네는 깃발은 여러색의 얼룩으로, 군중은 작은 갈대 모양의 검은 점으로 그렸는데 그 당시 혹평을 받았단다. 정말 멋진 그림이다. 

모네의 <생 라자르역>이다. 모네는 증기가 만들어내는 효과와 기관차가 도착할 때 플렛폼을 휘감는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유리와 철골 구조로 건축된 생 라자르역의 모습을 화면에 포착했다. 이 주제로 여러 점을 그렸는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연기가 만들어내는 장막 뒤 지평선에서 햇빛이 비치는 건물들과 함께 파리 시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모네는 철도가 아니라 증기가 만들어내는 효과와 대기의 변화에만 몰두했다.

<수련 연못의 일본식 다리>이다. 86세에 사망할 때까지 지베르니의 수련 정원을 조성하고 '물의 정원'이라 부르며 가꾸었다. 20세기 초 그린 많은 작품이 이 정원을 주제로 그려진 것이다. 수련 연작에서는 공간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어떤 요소도 없이 오로지 일본풍 다리만이 보이고 황홀한 색채만이 존재한다. 결국 모네는 수련 연작을 통해 무한한 변이라는 추상 미술의 개념에 도달한다.

모네의 <에트르타의 거대한 바다>다. 파도가 높은데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모습이다. 여긴 노상 날씨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

<부디겔라의 빌라들>이다.

<샤이의 길>이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다.

역시 <점심 식사>다.

모네의 <까치>다. 1868년.  모네가 눈, 설경을 그리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모네의 오랜 친구인 르노와르는 자연에는 순백이 존재하지 않고 하늘이 푸른색이니 눈위에 푸른색을 드러내야한다고 주장했다. 모네는 이 의견을 따라 빛과 색채의 변화를 포착해 빠른 붓놀림으로 보라색, 황갈색, 푸른색을 화면에 덧입혔고 흰눈위에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모네의 <트루빌 쉬르 메르의 로슈 누아르 호텔 >이다. 1870년.   작품은 모네의 작품의 독창성을 드러내며 화가의 기술적 대담함의 훌륭한 예다. 빠르고 암시적인 터치는 흔들리는 깃발의 인상을 만들어 내고 불확실한 윤곽으로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을 그렸다. 높이 형식은 캔버스의 하부에 분포된 피규어의 안정성과 바람에 영향을 받는 요소의 움직임 사이의 대비를 상부에 더욱 강조한다. 전경의 깃발은 특히 매우 자유로운 브러시로 그려진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의 선택에 의해 강조된다. 

모네의 <칠면조>다. 후원자였던 에르네스트 오슈데가 1876년 파리 근교의 성을 장식하기위해 주문한 작품이다. 그는 모네의 두번째 부인 알리스 오슈데의 남편이었는데 나중에 파산하여 아내와 다섯아이를 버렸고 모네가 부인으로 맞았던 것이다. 칠면조들이 넓은 정원에서 풀을 먹고 있고 저멀리 성이 보인다. 칠면조 머리의 붉은 색과 들판의 초록이 보색 대비를 이뤄 더욱 생생하고 하얀색 깃털은 빛의 반사에 따라 푸른색과 회색등 다양한 톤으로 표현했다.

<아르장퇴르의 보트경기>다. 1872년.  클로드 모네는 1871년 12월부터 1878년까지 이곳에서 살면며 일했으며, 이 기간 동안 그려진 170개의 그림 중 절반은 세네 강둑을 대표했다. 인상파의 현재의 공식 존재 2년 전에, 모네는 유명한 분할 터치를 포함하여 모든 특성을 가지고 이 그림을 만들었다. 이 그림은 주석 튜브와 휴대용 이젤 덕분에 화가가 스튜디오를 떠나 패턴을 작업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광으로 그려졌다. 그것은 공기와 물의 유동성, 조명에 따라 변화하는 외향, 화가가 캡처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아르장퇴르의 저수지>이다.

모네의 <정원의 여인들>이다. 1866년에 그려진 그림으로 야외 그림의 초기 실험물이어 훗날 인상주의 회화 발전의 주춧돌이 되었다. 네 여인 중 세 명은 카미유 부인을 모델로 그린것이다. 나무 주위에서 여러 포즈로 등장하는 것은 빛의 효과와 더불어 옷과 나무의 그림자가 지면에 생기는 것을 연구하기 위해서 였단다.

모네의 <마담 모네>이다.

모네의 <노르망디 농장 마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