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술관/오랑주리 미술관

오랑주리 칸딘스키, 우트릴로 등

boriburuuu 2019. 6. 30. 20:00

 

마우리스 우트릴로의 <버노트 하우스>다.  이 그림은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몽케니스 거리 뒤를 내려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1912년에 완공된 사크레 코우르 바실리카의 종탑은 오른쪽에서 알아볼 수 있다. 우편 카드에서 가져온 각도는 왼쪽에 "버노트 하우스"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우틸로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아인과에 사는 동안 이 캔버스를 그렸고, 그의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에 따르면, 그는 "가장 보잘것없는 세부사항을 기억했고, 그의 붓 아래 그것들을 정확하고 매력적인 리스트로 정리했다." 우편 카드는 아마도 그의 기억의 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우트릴로는 태어난 이후 몽마르트르에 살았고, 파리에서 일시적으로 나가 살았을 때 이 이웃을 놓친 것 같다. 여기서 그의 기술은 다른 작품들과 다르다. 그는 두꺼운 검은 색 스트로크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생동감과 색상과 대조되는 건축 선을 강조했다. 군중 가운데 왼쪽 뒤에서 보이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는 이젤 앞에서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다. 무거운 부츠를 신은 긴 스키를 입은 여성들은 과장된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

마우리스 우트릴로의 <몽마르트의 성 베드로 교회>다. 1914년. 우트릴로는 종종 12세기에 지어졌고 1900년부터 1905년까지 광범위하게 복원된 생피에르 드 몽마르트르 교회를 그렸다. 1914년에, 그것은 이미 몽마르트르에 있는 사크레 쿠르 바실리카에 의해 지배되었고, 1875년에 시작되었고, 그의 외부 공간은 막 완성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것의 돔 두 개와 종탑을 볼 수 있는데, 그 자체는 1912년에 완성되었다. 이 주제의 많은 버전 중 하나인 이 그림은 입구 문 뒤에 있는 교회의 정면을 보여준다. 우트릴로는 구성이 매우 대칭적이어서 엽서를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예술가는 다양한 스타일의 붓놀림을 통해 그림의 요소를 표현하고자 한다. 포장도로와 도로는 고르지 않은 표면을 전달하기 위해 빛과 어두운 색조를 번갈아 가며 섬세한 수평 스트로크로 칠해진다. 그는 집과 성 베드로 교회의 정면과 사크레 성당의 돔과 종탑에 그의 특징적인 흰색인 두꺼운 임파스토를 사용한다. 하늘은 깊이를 줄이는 더 컴팩트한 붓놀림을 가지고 있다. 건물의 창문과 개구부는 닫히거나 불투명하다. 작은 녹색과 노란색 붓놀림으로 만들어진 나무 위의 잎들만이 이 파리 장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마우리스 우트릴로의 <노트르담>이다.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우틸로는 보다 야심찬 작곡을 위해 단순한 모티브를 버렸다. 여기서 그는 1895년 폴 듀란드-루엘의 갤러리에서 전시된 시리즈인 루앙 대성당의 정면을 연이어 그린 클로드 모네로부터 인수한다. 마찬가지로 앙리 마티스와 알버트 마르케, 로버트 델라우나이와 같은 우틸로의 다른 동시대인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13세기에 정면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의 정면은 전체 캔버스를 차지하고 있다.왼쪽에는 루 뒤 클로트레 노트르담의 몇 채의 집만 보인다.  이곳의 우틸로는 조각된 장식이나 빛의 놀이가 아니라 형태의 계층적 배열에 관심이 있다. 세 개의 출입구는 난간으로 극복되며, 그 중 중앙에 있는 큰 장미 창문을 틀에 넣은 창문으로 극복된다. 마지막으로 두 탑 사이에서 우리는 1860년에 지어진 첨탑을 건축가 바이올렛-레-두크의 설계로 식별할 수 있다. 빛의 어떤 놀이도 없는 것은 이 견해에서 모든 깊이를 제거하고 중앙 출입구의 빨간색에 의해서만 활기를 띠는 정면의 질량을 강조한다.

마우리스 우트릴로의 <오을레앙 대성당>이다. 이곳의 우틸로는 주로 13세기에 지어진 오를레앙의 사인테-크로익스 성당의 정면을 대표한다. 우리는 그 예술가가 그 마을에 갔는지 아니면 엽서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모른다. 이 견해는 우트릴로가 무제 드 라오랑게리에서 파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정면보다 더 추상적이다. 1909년부터 화가는 접착제, 석고 및 시멘트를 페인트에 추가하여 독특한 흰색 질감을 얻었다.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그레이와 브라운 하이라이트가 점차 추가되었다. 그림은 미완성이며, 우틸로의 예술적 기법 중 일부를 드러낸다: 배경에 대한 준비 층은 여전히 보인다; 밑면의 직선, 모티프의 베이스도 보인다; 정면은 스탠드 위의 모델처럼 거기에 앉아 있고, 모양은 자와 나침반을 사용하여 그려진다. 우트릴로의 서명은 그 위에 그려져 있었고, 그 다음에는 깨끗이 닦아내고 잉크로 된 서명으로 대체되었다. 일부에 따르면, 딜러 리보데는 우트릴로가 너무 큰 서명을 했다고 비난했고, 예술가의 어머니이자 예술가인 수잔 발라돈은 그의 서명을 긁어내어 다른 서명으로 대체했다. 

칸딘스키의 <성 조지 1>

 

 

 

 

가브렐레 뮌터의 <용과의 싸움>이다.

칸딘스키의 <써클에서>이다.

칸딘스키의 <충격>이다.

 

 

폴 시냑의 <지네빌리어스 도로>이다.

 

 

로베르 들로네가 그린<세관원 루소의 초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