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독일

전승기념탑, 연방 의회 의사당, 부란덴부르크문, 슈바르첸베르크하우스, 안네 프랑크박물관

boriburuuu 2019. 7. 13. 20:13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이 서있고 주변에는 여러 사건들의 부조가 서 있었다. 그들이 생각한 공산주의는 소련이나 중국식 공산주의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노이에 바헤다 1816년 프로이센 군대의 위병소로 사용하기 위해 쉰켈이 마들었다. 1993년부터 기념관으로 사용중인데 캐테 콜비츠가 만든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가 내부 한가운데 놓여져 있다. 전쟁 피해자들을 상징하고 있단다.



출입구 양 옆에 프리드리히 윌리엄 3세의 조각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역시 멋진 훔볼트 대학교 건물 중 하나다.





이번엔 잔다르멘 마르크트 광장에 가 보았다.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배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하는 콘체르트 하우스를 중심으로 프랑스 돔과 독일돔이 감싸고 있다. 가운데 극작가 프리드리히 쉴러의 동산이 서 있다. 겨울에는 유명한 크리스카스 마켓이 열린단다.

프랑스 돔이다. 교회 건축 당시 종교의 자유를 찾아 프랑스에서 탈출해 베를린에 정착한 위그노교도들의 에배당으로 돔은 전망대로 쓰인다. 처음 교회를 지은 사람들과 돔을 지은 사람들이 달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맞은편에 프랑스 돔과 쌍둥이처럼 마주보고 있는 독일돔이다. 프리드리히 3세에 의해 지어졌고 지금은 민주주의에 대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이마르 공하국부터 시작된 독일 민주주의의 역사, 여성과 아동의 인권 신장에 대한 역사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쉴러의 동상 밑에는 연극을 상징하는 동상이 앉아 있다.

음악의 신이겠지.

이건 희곡, 문학이겠다.





여기도 곰이 한마리 있다. 타이완의 곰이다.




















독일 대통령 관저인 벨뷔궁전이다. 내부 입장은 불가능해 사진만 찍어 보았다.


전승기념탑이다. 프로이센이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67미터의 탑으로 전망대 역할을 한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탑의 꼭대기에 있는 박토리아 여신상에 천사가 걸터 앉아 ㅅ던 장면으로 유명하다.  탑은 걸어서 올라야하는데 이날은 날씨더 좀 흐리고 주변인 티어공원이라는 거대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올라가는 것은 생략했다.

탑으로 가는 길에 만난 메모리얼이다.



탑의 꼭대기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빅토리아 여신상이 서 있다.



안쪽 팔라디오식 기둥들 뒤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연방 의회  의사당이다.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이 의사당은 원래 독일 제국의 의회 의사당이다. 1894년 완공되어 전쟁으로 파손되고 서독이 수도를 본으로 옮겨 방치 되었으나 1990년 통일의식을 치르는 장소가 되면서 주목을 받앗다. 그리고 통일 독일의 연방 의회 의사당이 되면서 개,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단다.








거대한 메모리얼을 만났다. 근처에는 토끼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브란덴부르그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입구를 본따 1791년에 만든 개선문으로 분단 당시는 분단선이었다. 통일 후 당당하게 베를린의 대표 명소가 되었다. 역시 지난번처럼 정면 문 앞 파리저광장에 행위 예술가, 관광 마차 등이 뒤엉켜 번잡한 모습이다.


사진 한장 건지기도 매우 어려웠다.

이번엔 안네 프랑크의 집으로 갔다. 지난번 쾰른에서 안네의 집을 갔으나 문이 닫혀 들어가볼수가 없어서였다.

들어가는 골목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다. 베를린 예술을 상징하는 개념 중 하나는 ‘스쾃(Squat)’이다. 스쾃은 빈 건물을 ‘무단 점거’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주로 거리 아티스트들에 의해 행해진다. 빈 건물을 점거한 아티스트가 현란한 그래피티로 집을 꾸민 뒤 그곳을 자신의 아지트나 작업실로 사용하는 것이다. 스쾃의 대표적인 예가 슈바르첸베르크 하우스(Haus Schwarzenberg)다. 일종의 예술가 거리로, 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사방을 가득 메운 화려한 그래피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1965년부터 몇몇 예술가가 자리 잡기 시작해 지금의 골목을 형성했다. 원래 거리에 있는 건물은 19세기 중반부터 주거지와 공장 등으로 이용되었는데, 그 주변에 유대인이 모여 살아 나치 치하에선 유대인이 숨어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골목엔 유대인 관련 유적과 박물관이 밀집해 있다. 안네 프랑크 박물관도 이곳에 자리한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안네 프랑크도 있다.












나오는 길에 오토 웨이트의 박물관에 잠깐 들러 보았다. 쉰들러처럼 나치 독일 시절에 유대인 맹인들을 취직시켜 기업을 하며 살려준 사람이란다. 각종 자료들은 독일어로 되어 있어 짐작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