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술관/드레스덴 고전회화관

드레스덴 고전 회화관 1

boriburuuu 2019. 7. 15. 23:46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다. 자연속의 누드를 묘사한 파격적인 작품으로 오른팔을 베고 왼손으로 음부를 살짯 가린채 붉은 색과 흰 천 위에 누드의 여인이 잠들어 있다. 오른편엔 성채와 집들이 있고 가운데 언덕은 여인의 몸의 곡선과 연결된다. 조르조네가 갑자기 죽으며 미완성이어서 제자인 티치아노가 완성했다. 조르조네는 여인과 뒷바위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티치아노는 배경의 풍경과 바닥의 천을 그렸으며 지금은 없어진 발치의 작은 큐피트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외선 투시 결과 큐피트의 희미한 흔적이 보였는데 이는 여인이 비너스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림의 풍경은 베네치아로 대기원근법과 사실적 묘사로 풍경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후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그림이다.

레이머스왈, 마리누스 반의 <아내와 돈 세기>다.1541 이 장면은 시대 착오적인 환상적인 의복을 입은 테이블에 한 쌍을 보여준다. 동전의 가치를 측정하는 동안, 이 사건은 금융 도구가 장착된 내부에서 진행된다. 그림의 수많은 비문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세금 징수원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화가는 두 번째 훈련 후 법학자로 일했기 때문에 이 직업의 삶의 현실에 익숙했다. 이 유형의 주제는 매우 인기가 있었고 탐욕과 같은 악덕에 대한 경고로 이해되었다.

지로라모 무지아노의 <성가족>이다.

파르미지아니노의 <장미를 가진 마돈나>다. 1529-1530년.

파르미지아노의 <세례 요한과 설립자인 성도 스티븐과 함께 있는 마돈나>다. 1539-1540년.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이삭의 희생>이다.  1529-30년.  구약전서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희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을 따르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희생을 중지하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양을 대신 제물로 바친다. 화가는 표정으로 움직이는 장면에서 극적인 사건을 묘사한다. 그는 불과 몇 년 전 로마에서 발굴된 "라오쿤"의 고대 조각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세인트 캐서린과 함께한 성모자>다. 1512-13년.  높은 르네상스의 예술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에서 매너리즘(파르미지아니노의 제단)의 문체적 특징을 점점 더 발전시킨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천사 마리아의 대칭 구조는 르네상스에 전념하고 있지만, 새로운 영향은 이미 천사들의 장난에서 볼 수 있다. 예수는 세인트 캐서린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고 있다. 오른쪽에는 용을 물리친 성 마가렛이 무릎을 꿇고 있다.

가로팔로의 <박카스의 승리>이다. 1540년.

기로팔로의 <천사의 경배를 받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다. 1517년.

케사르 반 에버딩겐의 <낙소스의 바쿠스와 아리아든>이다.

안니발 카라치의 <성모의 승천>이다.

카라치의 <명예의 천재>다.

카라치의 <성 마태와 함께 있는 마돈나>이다. 1588년.

플링크 고베르의 <빨간 코트를 입은 렘브란트>이다. 이미 화가로 훈련을 받은 플랑크는 1633년 암스테르담에 와서 렘브란트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렘브란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판타지 의상을 입은 수많은 인물들을 그렸다. 1630년대 말, 그의 스타일은 렘브란트의 스타일과 매우 비슷해져서 그들의 작품은 때때로 혼란스러웠다. 플린크는 마스터가 그린 자화상에 르네상스 의상을 입은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기반으로 했다.

지오반니 벨리니의 <죽은 그리스도와 성모>다.  16세기. 베네치아 초기 르네상스의 중요한 대표인 조반니 벨리니는 마리아가 지원하는 죽은 그리스도의 모티브를 여러 번 그렸다. 헌신의 형상은 그리스도를 빛나는 승리자로 나타내지 않고 죽어가는 것으로 표현한다. 목표는 시청자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리스도와 깊고 내면의 관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미지는 경건한 묵상과 명상을 위한 것이었다. 깊은 슬픔과 슬픔을 드러내는 마리아는 아들의 죽은 몸을 부드럽게 붙잡고 오른손에 낙인을 보여준다.

프라 인젤리코의 <수태고지 >다.  1435년.

로렌조 로토의 <세례요한과 성모와 아기 예수>다.  1518년.

지그문트 홀바인의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이다.

한스 홀바인의 <런던 주재 프랑스 공사 샤를 드 솔리에르의 초상>이다. 한스 홀빈 더 영의 경우, 1515년 그는 1526-28년 아우츠부르크에서 바젤로 처음 이사한 후 런던에 머물렀다. 그 후 화가는 1532년부터 런던에 영구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바젤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는 곧 그를 법정 화가로 임명 한 영국 왕 헨리 VIII의 호의를 얻었다. 왕실의 일원 외에도 그는 영국에 프랑스 특사와 같은 당시의 수많은 초상을 묘사했다

한스 홀바인의 <토마스경과 아들 존>이다. 작은 규모의 이중 초상화는 홀빈이 1526-28년 영국에서 처음 머무르는 동안 그려졌다. 그것은 노리치에서 공증인 토마스 신살브를 묘사, 그의 아들 존은 그의 뒤에 밀접하게 앉아와. 그들은 모두 사진 공간 밖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자세와 표정은 젊은 남자가 여전히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아버지에 종속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존 고잘베 경은 나중에 영국 왕실 법원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한스 말러의 <갈색 모피 모자를 쓴 젊은 남자의 초상>이다.

코레죠의 <세인트 세바스찬의 마돈나>다. 1524년.  코레지오는 1524년 경 모데나에 있는 성 세바스찬 형제단의 제단을 그렸고, 구름 위에 떠있는 마돈나는 푸티의 쾌활한 무리에 둘러싸인 소년 예수 함께 자리잡고 있다. 그림의 하반부에는 세 명의 성도들이 나타난다. 왼쪽에는 나무에 묶여 있는 세인트 세바스찬은 사진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묘사된 생 로슈와 같은 전염병 성자로 숭배받았다. 중간에 는 세인트 쌍둥이 자리 누스, 누가 직접 아이 예수 마돈나에 시청자의 관심을 그린다. 푸토는 그에게 모데나 시의 모델을 제공한다, 그 중 그는 도시 후원자다.

코레죠의 <성 조지의 마돈나>다. 1529-1530년.

코레조의 <거룩한 밤>이다. 1528-1530년.  월 III, 작센의 선거인과 폴란드의 왕, 프란체스코 III d'Este의 컬렉션에서이 그림을 인수 할 때, 모데나 공작, 드레스덴 페인팅 갤러리에 대한, 그것은 이미 매우 잘 알려진 작품이었다 : 갤러리 조사관은 자랑스럽게 "유럽 전역에 걸쳐 유명한 밤"이라고 언급했다. 화가는 신생아에게서만 발산되는 빛을 능숙하게 연출했다. "빛나는"아기예수의 도상학은 15 세기 말에 플랑드르에 처음으로 퍼졌다. 이 그림은 레지오의 산 프로스페로 교회의 프라토니에리 가족 예배당을 위한 제단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이탈리아 회화의 첫 번째 기념비적 인 밤 작품이다.

<지식의 나무 아래의 아담과 이브>다.  무명

데이트사르부르트 바르톨로뮤의 <바젤 야콥 마이어 줌 하렌 시장의 마돈나 >다. 1635-3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