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미술관/트레치야코프 미술관

11일 트레치아코프 미술관 1

boriburuuu 2019. 8. 18. 20:40

 

 

 

 

트레치아코프 미술관에 가 보았다. 1856년 건립된 이 미술관은 에르미타쥐박물관 만큼이나 러시아인들에게 사랑 받는 곳이다. 19세기 모스크바 상인 파벨 미하일로비치 세르게이 뜨레치아코프 갤러리였으나 혁명 이후 국립미술관이 되었고 독특한 디자인의 외관으로도 유명한데 1904년 바스네쪼프의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공사중이어 앞쪽을 가리고 있었다.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15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러시아 미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올라가는 계단>

 

 <멋진 샹들리에>

18세기 중엽 러시아에서는 '아카데미즘'이란 화풍이 널리 유행했다. 이 화풍의 특징은 인체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게 그리는 것이나, 그 소재에 있어서는 성경이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었다. 이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가 바로 칼 파블로비치 보률료프였다. 보률료프는 고전적인 미술기법을 낭만주의적 자유분방함과 결합해 당대 러시아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로 명성을 떨친다. 그가 그린 대표작 중 하나는 쌍뜨 뻬떼르부르그의 러시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폼페이 최후의 날'이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아수라장이 된 폼페이. 이 지옥과 같은 현장에서 살아 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군중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당시 한 두 명의 영웅들만이 화면을 독식하던 미술의 사조를 다수의 민중으로 바꿔 놓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반 아르그노프의 <러시아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이다. 1784년

 

프로도르 로코토브의 <캐서린 2세의 초상화>다. 1763년.

 

미하일 시바노프<결혼 계약의 축하>이다. 1777년.  18세기 농민들에게도 엄숙하고 숭고한 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러시아는 농노제가 뿌리 깊어 농민의 삶은 가난하고 피폐했다. 그러나 흑빵 한 덩이와 술 한 병이 전부일지라도 농민들의 삶의 고귀함을 보여준다.

 

 

표도르 알렉세예브의  <모스크바 붉은 광장>이다.  1801년. 18세기 모스크바의 심장인 붉은 광장을 그린 그림으로 알렉세예브는 도시 경관을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다. 당시 크레믈린은 현재의 붉은 벽돌 담장이 아니라 흰색의 석조 건물이었다. 세계 최고의 건축물인 바실리 성당은 당시에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레스트 키프렌스키의 <푸쉬킨, 1823, >이다. 푸쉬킨의 여러 초상화 중 최고로 꼽히는 작품으로 19세기 초 러시아 귀족들은 프랑스 책을 읽고 프랑스어를 쓰며 프랑스 풍습을 따랐다. 그러나 푸쉬킨은 러시아어로 소설, 시, 희곡을 쓰며 러시아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며 얼마나 소중한지 국민들에게 환기시켰다. 푸쉬킨은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등 대문호가 많은 러시아에서도 전 국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최고의 작가다. 외가 쪽으로 아프리카 피를 타고나 단신에 곱슬머리인 추남이었지만 이 그림의 푸쉬킨은 우아하고 순수하며 영리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천재로서의 푸쉬킨의 모습이 잘 표현된 이 그림은 책 작가 사진란의 명함 그림으로 쓰이고 있다.

 

 

세르게이 자리안코의 <마리아 바론트소바 공주의 초상화>다. 1851년.

 

카알 프리드리히 보드리 <크레믈린 궁 블라고베쉔스키 사원> 1860년이다. 크레물린안에는 사원이 많은데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대표사원은 우즈펜스키, 아르한겔스키, 블라고베웬스키 세 사원이다. 세 사원으로 둘러싸인 곳을 사원광장이라 부른다. 여기서 국가적 차원의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사실적이며 사원광장의 화사한 모습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소피아 바실리예브나의 <자화상>이다. 1847년.  화가는 예술가의 가족 구성원으로 성장했다. 19세기 전반기에는 여성이 전문 예술가로 활동한 예가 거의 없었지만 바실리예브나는 그 중 하나였다. 22세의 화가는 수석으로 예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살았던 이탈리아의 한 스튜디오에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작은 키와 늘씬한 몸매, 우아한 자세로 손에 붓과 팔레트를 들고 화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러 악조건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해 여러 점의 풍경화와 초상화 등을 남겼다.

바실리 푸키레프 <불평등한 결혼>이다. 1862년. 소작세를 갚지 못해 할 수 없이 팔려가는 어린 신부의 아픈 슬픔이 잘 배어나오는 작품으로 각자의 욕심에만 빠져 있는 모델들의 표정이 흥미롭다.

 그림도 인연이 있어야한다. 이 미술관의 대표작이나 내가 방문했을 때는 출장 중이었는지 인터넷에서 사진을 구했다.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아버지편>이다. 농노 제도의 폐지 이후, 러시아 농민의 삶은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이에 진취적인 성향의 교사, 의사, 점원, 노동자가 앞장서서 러시아의 독자적인 농민 자치 공동체를 기초로,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 이행이 가능하다고 믿고 '브 나로드(v narod)'운동을 펼쳤다. 그림속의 아버지 또한 브 나로드 운동에 참여했다는 죄목으로 유배당했고, 어느날 예고없이 집으로 불쑥 들어온 것이다.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이 치열하게 교차하고, 경계심과 놀라움이 분주히 섞이는 지점에서 우리도 서서히 상황을 공감하게 된다. 1884년에서 1888년 사이에 그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주인공인 자는 1885년, 1887년, 1888년에 세 차례의 수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여대생편> 이 그림은 1870~1880년대 러시아 혁명기에 한 여대생이 유형지에서 집으로 돌아온 순간을 극명하게 묘사한 작품이라고 한다. 혁명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형벌을 받고 돌아온 그녀의 등장에 반가움과 동시에 그녀로 인해 앞으로 가족에게 다가올 또 다른 위기 때문에 무조건 환영할 수만은 없는 가족들의 입장을 너무도 생생한 표정묘사와 팽팽하게 대립하는 긴장된 구도를 잘 표현해 내고 있는 작품이다. 1893년 그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주인공 여대생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자신의 딸인 나자를 모델로 완성한 것이다.

일리야 레핀의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이다. 쇠 지팡이로 내리친 아들이 쓰러져 관자놀이에서 피를 흘리자 정신이 든 아버지가 아들을 일으켜 안은 것이다. 피가 솟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앙상한 손으로 황급히 막아보지만 손가락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뜨끈한 피가 멈추질 않는다. 분홍빛이 감도는 자개 색의 아들 옷이 그의 무고함을 드러내 주는 것 같다. 검은 옷의 노인과 음침한 실내 분위기 속에서 오직 피 흘리고 있는 아들만이 환하게 드러난다. 그의 표정은 이미 모든 것을 용서하고 포기한 듯, 생기를 잃은 눈은 삶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린 듯하다. 아버지마저도 이해한 듯한 그가 마른 노인의 품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지도 못하고 한 손으로는 마지막 힘을 다해 마루를 짚고 있다. 깡마른 아버지에게 이미 자신도 가누기 힘든 육체의 무게를 온전히 싣기가 미안한 것일까. 뜨거운 피가 뚝뚝 흐르는 아들의 머리를 감싸 안은 아버지의 핏발 선 눈은 절망으로 공허하다.

 

 

바실리 페로프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 그리스도>다.  1878년.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은 시대의 대변인이자 거울이었다.  피폐하고 궁핍한 시대를 걱정하는 화가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담았다. 겟세마네 동산에 쓰러져 절규하는 예수의 모습을 통해 아픈 러시아의 치유를 바라고 있다. 예수의 머리 위로 떠 있는 가시 면류관이 현실의 고통을 상징한다. 참으로 처절해 보이는 그림이었다.

바실리 페로프가 그린 <도스토예스키의 초상>이다. 1872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로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며 사상가다. 대표작은 <죄와 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이 있다.

알렉세이 사브라소프 <까마귀 날아 옴>이다. 1871년  러시아 무드 풍경화의 문을 처음 연 화가의 작품이다. 러시아의 봄은 눈이 반쯤 녹아 물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만물이 겨울을 털어내고 새롭게 기지개를 편다. 봄의 온기를 받아 만물이 살아나는 느낌, 꿈틀대는 공기의 움직임이 생생이 표현되어 있어 러시아의 봅의 시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반 아이바소브스키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변에서의 해안 풍경>이다. 1835년

이반 아이바조브스키 <무지개>다. 1873년.   바다에서난파당한 사람들이 작은 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는데 푹풍우는 휘몰아치지만 무지개가 떠 있으니 곧 바다는 잠잠해질 것이고 갈매기가 나는 것을 보니 육지가 가까이에 있다. 화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우리 삶을 끌어주는 힘인 희망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반 크롬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이다. 1883년. 이 미술관의 대표작인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출장중이어서 볼 수가 없었다.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구한 것이다. 이 여인은 매혹적인 눈빛을 가졌다. 작가는 미지의 여인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대부분 이 여인을 톨스토이의  소설 여주인공 안나 카레리나라고 알려져 있다. 역시 러시아는 미인의 나라임이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