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북경

3일 자금성2 건청문,교태전,곤녕궁,양심전,황실정원인 어화원

boriburuuu 2019. 8. 19. 00:56


내정은 북쪽 후반부 건물들로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등을 일컫는다. 성리학적 우주관으로 건청궁은 하늘을 교태전은 태극으로 음양의 조화를 곤녕궁은 땅을 의미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공간이다.

건청문은 내정의 정문으로 옥좌를 설치해 신하들이 아뢰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실질적 정무처로 문 앞에 황금빛 사자상과 화재 진압용 항아리가 늘어서 있다. 만주어와 중국어를 함께 병기했고 건천문에서 건천궁까지 멋진 백옥 다리가 있다.








건천궁은 명 황제와 청 초기 황제의 침궁이자 일상생활 공간이다.  동서난각을 따라 27개의 침상이 있는 것은 자객을 교란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옹정제부터 침실을 양심전으로 옮기고 접견실로 사용했다. 사망한 황제의 시신을 장례식까지 안치하는 용도로도 쓰이기도 했다. 내부는 태화전의 축소판으로 옥좌 위 편액 ‘공명정대’는 순치제의 친필이고 차기 황제가 될 왕자의 이름을 적어 상자에 밀봉 후 편액 뒤에 보관토록하고 (태자밀건법) 같은 문서를 황제가 평생 몸에 지녀 사후 두 문서를 대조해 황제를 선포했다고 한다. 1922년 푸이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교태전은 외조 중화전의 축소판으로 황후의 보좌가 있다. 보좌위 강희제가 쓴 ‘무위’란 편액이 있다. 명 때는 황후의 침궁으로 청 때는 황후가 주최하는 행사 장소로 이용했었다. 천정의 여의주 밑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는데 중국신화에서 용과 봉황의 결합을 천하무적이라 한데서 기인한다. 건륭제는 청 왕조의 긴 생명력을 위해 25개의 옥새를 보관했으나 12대 황제로 끝나고 말았다








곤년궁은 황후의 궁전으로  만주족인 청은 자신의 풍습으로 개조하여 동서로 나누어 서쪽은 성소로 이용. 큰 솥을 설치하고 육류 제물을 날마다 신에게 봉헌함. 동쪽의 동난각은 황제게 혼례를 치른 후 첫날밤을 보내는 곳으로 사용했다..

서육궁, 동육궁 -명,청 황제의 황후와 귀비 빈 등이 살던 여인들의 세상이었다.










양심전은 황제의 침전인데 1722년 대대적 수리를 해 옹정제 이후 황제들이 침전으로 삼았다. 나라의 대소사가 이루어진 곳이고 1799년 건륭제는 여기서 숨을 거두었다. 서태후는 동난각에서 수련청정을 했다. 실내 좌측에 금으로 대나무와 학을 주조해 만든 액자가 눈길을 끌고 서태후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저수궁은 후궁 시절 동치제를 임신하면서부터 5-6년간 생활한 공간으로 행운의 장소로 여겨 50세 탄생연을 성대히 열고 10년간 기거했다. 장춘궁은 함풍제 사후 서태후가 머물던 곳으로 홍루몽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경극을 좋아해 한쪽을 무대로 꾸며 명절과 축제 때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낭만적인 황실 정원으로 오래된 기암괴석과 수목이 수려한 어화원을 마지막으로 들렀다. 사가 원림의 조성법에 따라 황실만의 위풍당당한 기풍을 가지고 하늘에 제를 올렸던 흠안전, 가산으로 조성한 퇴수산 정상에는 궁궐 내외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세운 어경정이 눈에 띤다. 수 많은 인파 속에서 이 정도의 사진을 건진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본다. 어화원의 낭만을 제대로 즐길 틈이 없이 우린 신무문을 향해 걸어나가 징산공원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