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북경

2일 이화원

boriburuuu 2019. 8. 19. 00:41

어찌 됐든 기운을 차리고 베이징 투어에 돌입했다. 먼저 지하철 10호선에서 갈아타고 이화원에 갔다.  

이화원은 중국을 대표하는 황가 원림으로 여름 궁전이다. 원,명 때 물 저장고로 서호라 부르기도 했단다. 1750년 건륭제가 황태후의 60세 생일을 경축하는 의미에서 청의원을 건설하여 1764년 완공했고 1886년 서태후가 2400만냥을 들여 여름궁전을 만들고 이화원이라 했다. 건축학적인 면에서 ‘옛 중국인들이 건축에 품은 이상’을 여실히 보여 가치가 크다고 한다. 현실 세계에서 지상낙원을 보여주고 있다. 사분의 삼은 곤명호이고 정무를 보던 궁전구역, 아름다운 누각, 고목, 관상용 태호석, 아치형 다리, 종교적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다. 중국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황실원림으로 ‘황실정원 건축 박물관’으로 불린다.  60원


우린 먼저 쑤저우제쪽으로 들어갔다. 사가의 원림으로 유명한 쑤저우와 명초기 수도 난징의 저잣거리를 본떠 만든 곳으로 270m에 달하는 저잣거리를 따라 상점이 늘어서 있고 황제들이 서민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하면 내시와 궁녀들이 연극을 햇다고 하는데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는 고요한 모습이었다. 쓰저우제를 보면서 다리를 건너니 작은 광장이 나타났는데 여기서도 중국인들의 춤사랑은 변함없이 나타나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는 갈림길에서 우측 산 쪽으로 가보았으나 이내 만수산 정상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쓰저우제>
























우뚯 솟은 건물들은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고 인공적인 기암괴석에서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 위한 용도가 컷던 것 같았다.아래로 내려와 장랑이라는 낙수당을 지나 728m의 긴 복도를 걸었다. 양 쪽으로 트인 누각식 복도로 들보가 아름답다. 홀루몽, 서유기 등과 동식물들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무려 14000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단다. 워낙 길어서 이화원 어디를 가나 만나게 되는 곳이다.


<수학여행온 학생들>



다음으로 배운전을 보러 간다. 만수산을 오르는 길목 정중앙에 위치하고 건륭제가 황태후를 위해 지은 황실 사찰로 대보은 연수사라 불렸던 사찰군의 대웅보전에 해당하는데 1860년 영프연합군에 의해 잿더미가 되어 1886년 서태후가 궁전 건물을 짓고 생일 축하연에 온 문무백관과 황족을 맞는 장소로 이용했다고 한다.  내부 3개의 계단 위 그녀가 앉았던 의자, 70세 생일에 받은 물품 전시하고 있었다.

1755년 건립된 보운각은 불향각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볼 수 있고 동으로 높이 7.55m, 총 207톤의 동이 사용햇다고 한다.

또 불향각은 만수산에 우뚝 솟아 있어 이화원의 중심이자 나침반 역할을 하는 곳이다. 1891년 은화 78만냥을 들여 지은 최대 공사로 황금색 유리기와가 화려하고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어 이화원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대충 나올 정도다.





























<동으로 만들어진 보은각>








다음으로 간 곳은 낙수당 -서태후가 기거하던 침궁. 앞으로 곤명호가 뒤로는 만수산이 있다. 정면에 걸린 ‘만수무강’넉자가 적힌 편액이다.








이 곳은 과거의 전화국 정도?




다음은 덕화원인데 경극을 좋아한 서태후를 위해 공연장으로 꾸민 대희루가 있다. 3층으로 된 덕화원 맞은편에 서태후가 앉아 관람했던 이락전이 있다. 청나라 3대 공연장으로 하루 6회 짧은 공연을 한다고 한다. 



<관리들이 관란하던 방>


<서태후의 자리>









다음은 인수전으로 동궁문을 통해 들어가면 궁전구가 나오는데 원명원과 가까워 황제가 두 원림을 오가기 편리했다고 한다.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옥좌가 있다. 광서제를 수렴청정한 서태후가 정무를 보던 곳이기도 하다. 내부는 자금성 같으나 앞 뜰에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심고 태호석으로 장식해 원림 분위기를 살리고 대전 앞에 용과 봉황이 나란히 서 있는게 특징이다.





















다음으로 문창원의 전시장을 찾았다. 진귀한 도자기 옥제품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문창원이라 그런지 거대 청동 책 조각이 재미있었다.


























 곤명호는 호수 둘레가 6.4킬로로 바다 같이 넓다. 인공으로 만든 호수로 호수의 흙으로 만수산을 높였다고 한다. 3수면으로 나누고 인공섬도 3개, 긴 제방을 쌓았다. 호수 한 쪽에 있는 십칠공교는 이화원 최대의 돌다리로 아치형이고 길이 150m로 동쪽 제방과 남호도를 연결하며 최고의 포토죤이다. 난간에 500마리의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각각 다르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어디가나 사자상 참 좋아한다.  가까운 동쪽 제방의 동우는 1755년 호수의 범람을 막기 위해 만든 동상인데 오황제가 소의 형상을 만들어 홍수를 막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청안방은  서태후의 정치적 야욕을 상징하는 돌배로 석방이라 한다. 대리석으로 조각해 만든 배의 길이가 36m이고 2층 누각이 있다. 순자의 ‘수즉재주 수즉복주’ 즉 물은 배를 띄울수도 가라 않일수도 있다는 말이 걸려 어떤 물결에도 뒤집히지 않는 배를 만들어 영원한 권력을 누리려고 햇다고 하나 권력은 덧없는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안다.  4개의 지지대가 돌배를 받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