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앞에서 야간침대버스에서 내렸으나, 너무 이른 아침이라(06:15) 호텔 한 구석에 큰 가방을 맡겼다. 일행은 체크인을 하지 못한 채 나짱해변으로 나갔다. 대장은 나짱해변에 일행을 모아놓고, 오늘은 자유일정이므로 나름대로 유적지 등을 돌아보고 11시에 호텔에서 만나 체크인 하자고 했다.
<호텔 앞 나짱의 도시 풍경>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휴양지인 나짱(Nha Trang, 나트랑)은 “베트남의 지중해”란 애칭으로 불렸다. 잘 정비된 해안도로를 따라 6Km의 해변이 길게 이어지고, 바다에는 19개의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나짱은 도시를 중심으로 산들로 둘러싸여 아름다운 만(灣)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베트남전쟁 당시 “십자성부대”가 있던 곳으로 일행 중에도 그 때 근무했던 분이 있었다.
<이른 아침의 나짱해변 풍경 1>
<이른 아침의 나짱해변 풍경 2>
<이른 아침의 나짱해변 풍경 3>
일행은 편의상 3조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리 3조원은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멋있는 건물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어서 시가지로 들어가서 아침 먹을 곳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침을 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 식당을 하나 찾아 일행들은 볶음밥을 먹엇으나 하늘언니와 나는 근처에 있는 대학교 앞의 노점에서 복음밥과 길거리 음식을 사 먹어 보았다.
<나짱해변을 걸어가다 아름다운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
재래시장인 “덤 시장”을 둘러보자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지도를 보며 찾아갔으나, 재래시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 쉽게 찾아갔다. 사람은 누구나 특성이 있으므로 시장을 나름대로 돌아보고, 9시 30분에 시장 입구인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다른 조의 일행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돼지고기와 야채를 사고 다른 사람들도 아오자이를 한벌씩 샀다.
<나짱의 재래시장인 덤시장 풍경 1>
<나짱의 재래시장인 덤시장 풍경 2>
<나짱의 재래시장인 덤시장 풍경 3>
오늘은 하루 종일 자유시간이라, 15시에 3조원들이 프런트에 모여 "롱썬사"를 탐방하기로 했다. 시간이 되자, 3조원 10명 모두(병원에 간 2명 제외)가 프런트로 나왔다. 그런데 여러 명이 베트남에서 산 아오자이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 보던 모습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이들은 프런트에서 나름대로 추억을 남기고 롱썬사로 향했다.
<롱썬사에 가기 위해 호텔 프런트에 나온 일행 2>
<롱썬사에 가기 위해 호텔 프런트에 나온 일행 3>
<롱썬사에 가기 위해 호텔 프런트에 나온 일행 4>
모두가 처음 가는 곳이라 지도가 있지만, 도로가 갈라지는 곳에서는 물어가며 갔다. 가는 길에 나짱 성당이 있다기에 그곳을 보려고 했는데, 길옆 평지에 있는 성당이 나타났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성당건물과 성당내부를 사진기에 담았다. 성당 앞에 아기예수가 태어나는 모습을 만들어 놓은 곳에서는 단체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짱의 길옆 평지에 있는 성당>
<성당 앞 아기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을 재현해 놓은 곳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성당 앞 아기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을 재현해 놓은 곳을 배경으로 1>
<성당 앞 아기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을 재현해 놓은 곳을 배경으로 2>
우리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데, 앞에 커다란 성당이 보였다. 조금 전에 본 성당은 우리가 당초에 보려고 했던 나짱 성당이 아니었다. 이것은 조금 높은 산 위에 1934년 고딕양식으로 건축했으며, 건물 정면을 장식한 시계가 인상적인 가톨릭 성당이었다. 38m높이의 첨탑에는 3개의 커다란 종이 있는데, 프랑스에서 직접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종은 첨탑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다.
<나장성당에 가기 전의 네거리 풍경>
성당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유리창이 있었다. 또한 성당 앞에는 마리아상이 성화가 그려진 벽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예수가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조각이 있었다. 우리는 계속 걸어 올라가는데, 4명은 “뽀나가 참 탑” 유적까지 보겠다며 택시를 타고 먼저 롱썬사로 갔다.
<나짱성당 원경>
<나짱성당과 마리아상을 배경으로 1>
<나짱성당 내부의 고딕 양식>
<나짱성당 외부의 마리아상 옆에 잇는 예수상>
롱썬사(隆山寺)는 나짱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불교 사원이며, 반(反)프랑스운동을 주도하던 승려인 “탁응오찌”가 1889년에 건설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쳐 복원과 증축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대웅전은 2층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베트남양식이었다. 안에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상이 있고, 그 뒤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이곳에서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는 평판이 돌았는지, 관광객과 함께 현지인도 많이 참배하고 있었다.
<나짱의 롱썬사 정문>
<롱썬사 정문을 들어서서 본 풍경>
<롱썬사 대웅전 앞 풍경>
<롱썬사 대웅전 전경>
<롱썬사 대웅전 내부 앞쪽에 모신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롱썬사 대웅전에 모신 본존불상>
<롱썬사 대웅전에 모신 본존불상 뒤의 불상>
<롱썬사 대웅전에 모신 본존불상 옆의 불상>
우리는 대웅전을 돌아보고, 소풍 온 것 같은 어린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롱썬사에 왔으면 당연히 산 위에 있는 불상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초등학교 6학년쯤 되는 어린이가 향에 불을 붙여 주기도 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왼쪽에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와불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둘러보고 다시 계단을 따라 산을 올랐다.
<롱썬사로 소풍왔거나 현장학습을 나온 초등학교 어린이 모습>
<롱썬사 대웅전에서 산 위의 하얀 불상으로 올라가는 중턱의 와불>
올라가는 길 왼편에는 연못 위에 정자를 세우고 그 안에 종을 매단 종각이 있었다. 산 정상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연꽃 대좌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하얀색 불상이 있었다. 이 불상은 1963년 14m높이의 기단 위에 24m높이의 불상을 세웠다. 대웅전 뒤쪽의 언덕 정상에 있어서 나짱 시내에서도 하얀 불상이 보인다고 한다. 기단 안에는 작은 사원이 있어, 스님이 무엇인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롱썬사에서 하얀 불상으로 올라가는 산 중턱에 있는 동종>
<롱썬사 뒷 산에 있는 하얀 불상 전경>
<하얀 불상 기단 내부에 있는 사원 입구>
특히 불상 아래의 기단에는 반 프랑스운동과 반 남부베트남정권 퇴진운동을 했던 7명의 스님 초상이 있었다. 그 중에 제일 가운데에 있는 스님은 일행이 티엔무사원에서 보았던 오스틴 자동차의 주인공인 탁광덕이었다. 그는 티엔무사원에 승적을 두고 있었지만, 베트남정부의 부패와 종교탄압에 항거해 사이공 시내에서 분신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분이었다. 기단에 있는 초상화는 그와 함께 분신한 스님들로 사이공(호치민시)으로 떠나기 전, 탁광덕 일행은 잠시 이 사원에 머물렀다. 산 정상에 있는 하얀 불상은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하얀 불상 아래 기단 중앙에 있는 "탁광덕 스님">
우리 6명은 불상을 배경으로 현지인과 추억을 남기기도 하고, 나짱 시가지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우리는 올라온 길이 아닌 산길을 택해 시가지로 내려왔다. 벌써 해는 서산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고 있는데, 올라갈 때 보지 못한 나짱역이 보여서 여기에서도 추억을 남겼다. 나짱 해변에서는 저녁놀이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풍경에서 연을 날리고 있었다.
<하얀 불상 앞에서 바라본 나짱 시내 풍경>
<갈 때는 보지 못한 나짱역>
뽀나가 참 탑은 택시를 타고 갔다. 얼마가지 않아 바다와 호수가 연결되는 큰 다리가 나왔다. 이 다리에서 보는 호수 쪽의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유적은 해안도로에서 호수(해안)를 따라 조금 들어가 나지막한 산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호수를 따라 왼쪽으로 연결되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앞에는 뽀나가 참 탑이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유적에 도착해 우리는 각자 입장료(22,000동)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짱의 뽀나가 참 탑 가는길 1>
<나짱의 뽀나가 참 탑 가는길 2>
뽀나가 참 탑은 힌두교를 믿었던 참파왕국에서 7~12세기에 건설한 유적이었다. “뽀나가”는 참파왕국에 농사짓는 방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티엔이아나”여인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땅의 여신”으로 추앙받았다. 이 사원은 원래 목조건물로 만들어졌지만, 744년 자바왕국의 침입을 받아 파괴되자, 그 후 사암으로 만든 붉은 벽돌을 쌓아 첨탑형태로 만든 것이었다. 사원 앞에는 8각형 기둥을 길 양쪽에 각각 5개씩 세운 것이 보였다. 그 옆에는 똑같은 모양의 작은 기둥이 있었다.
이 사원은 500제곱m의 넓이에 모두 8개의 건축물을 세웠었는데, 지금은 4개의 탑만 남아 있었다. 힌두사원답게 해가 드는 방향인 동쪽을 향해 출입문을 냈다. 4개의 탑 중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오른쪽에 있는 “탑 찐”이었다. 높이25m의 힌두신전이며 817년에 재건축된 건물이란다.
<뽀나가 참 탑 앞의 8각형 기둥>
<참파왕국이 건설한 것으로 남아 있는 4개의 뽀냐가 첨 탑 전경>
시바를 위한 신전답게 탑 내부의 중앙 성소에 링가(시바를 상징하는 남근 모양의 둥근 기둥)를 세웠었으나, 크메르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약탈당했다고 한다. 현재는 힌두 여신 우마(시바의 부인)를 모시고 있었다. 탑 찐 출입문 상인방에는 팔이 4개인 시바가 난디 위에서 춤추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남아 있는 4개의 사원 중 가장 크고 중요한 "탑 찐" 내부 모습 1>
<남아 있는 4개의 사원 중 가장 크고 중요한 "탑 찐" 내부 모습 2>
<남아 있는 4개의 사원 중 가장 크고 중요한 "탑 찐" 내부 모습 3>
<4개의 사원 중 가장 크고 중요한 "탑 찐" 내부에 모신 "우바"여신>
<탑 찐에서 내려다 본 8각형 기둥 모습>
<탑 찐 출입구 상인방에 난디 위에서 춤추는 시바 부조>
정면에서 봤을 때 중앙에 있는 “탑 남”은 20m높이로 피라미드형태이며, 12세기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탐 남 왼쪽에는 조그마한 탑인 “탑 동남”이 있었다. 또한 탐 찐 뒤에는 조그마한 사원인 “탑 떠이박”이 있는데, 시바의 아들이자 지혜의 신인 가네쉬에게 헌정된 신전이었다. 탑 뒤에는 뽀나가 참 탑에서 발굴된 석조 조각과 링가 모형을 보관한 작은 박물관 같은 쇼룸이 있었다.
<지붕이 피라미드 형태로 된 "탑 남", 왼쪽 반만 보이는 것이 "탑 동남">
<탑 찐 뒤에 있는 가네쉬에게 헌정된 조그마한 "탑 떠이박">
<뽀나가 참 탑 뒤에 있는 일종의 박물관인 "쇼룸">
<쇼룸에 전시된 것들 1>
<쇼룸에 전시된 것들 2>
<쇼룸에 전시된 것들 3>
<쇼룸에 전시된 것들 4>
<뽀나가 참 탑 뒤쪽 풍경 1>
<뽀나가 참 탑 뒤쪽 풍경 2>
<뽀나가 참 탑에서 쏨봉교 쪽을 바라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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