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술관/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알테)

베를린 구 국립 미술관 (알테 내셔널 갤러리)독일의 여러 화가들2

boriburuuu 2020. 9. 25. 01:08

프리츠 본 우드의 <식사 전의 은총>이다.

구스타프 스판갠베르그의 <죽음의 길>이다.  1876년.

빅토르 뮐러의 <백설공주>이다. 1862년.

프란즈 본 렌바흐의 <테오도르 맘슨>이다.  렌바흐는 독일 화가로 오바바이에른의 슈로펜하운센 출생해 뮌헨에서 사망했다. 건축가의 아들로서 공업학교를 거쳐 뮌헨 미술학교에서 필로티에게 사사했고 1858년 및 1863~1866년 로마에 유학했다. 베크린과 동숙했다. 샥크 백작의 위촉으로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티치아노 등의 고화를 모사했고 1867년이후 뮌헨, 빈, 베를린에서 초상화가로서 명성이 높았고, 암색의 배경에 밝은 얼굴이 부각되는 독특한 화풍으로 빌헬름 1세, 몰트케, 비스마르크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은 테오도르 맘센의 80번째 생일을 맞아, 가족의 일부 친구들은 렌바흐의 기념일 초상화를 그리기를 원했다.

프란즈 본 렌바흐의 <레이디 크루종>이다.  1902년.

안셀름 푸에르바흐의 < 게스트 식사(플라톤 이후), 제2판>이다. 1874년.

 

 

안톤 그라프의 <줄리안 빌헬민 바우즈 >다. 1785년.  안톤 그라프는 스위스의 초상화가로 뷘타토울에서 출생. 드레스덴에서 사망했다. 초기에는 아우쿠스부르크에서 활동, 1766년 신설의 드레스덴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궁정화가로서 같은 시대의 수많은 저명인, 레싱, 쉴러 등의 초상을 제작해 사실적인 표현으로 인기를 얻었다. 모델은  라이프치히 조각가 요한 프리드리히 바우즈의 딸로, 그라프의 작품에서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아버지의 스튜디오에서 그녀는 괴테, 쉴러, 샬롯 폰 스타인, 화가 크리스토프 네이스와 같은 친구와 고객과 접촉했다. 라이프 치히 은행가 본 뢰르와 결혼한 후 그녀는 예술적 활동을 포기했다. 그라프의 그림에서 매력적인 18세의 소녀는 우아한 파란색 실크 스카프와 헤어 밴드가 있는 치폰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녀의 어두운 눈의 생생하고 자기 의식적인 시선은 시청자를 향하고 있다. 그녀의 손에 있는 장미는 젊은이와 아름다움의 표시로  게인즈버러 또는 조슈아 레이놀즈의  그림에도 나타난다.

제이콥 필립 핵커트의 <바자의 비너스 신전에서>이다.  1788년.  외부의 옥토고날, 내부 둥근 바이아 비너스 사원은 하드리아 시대의 온난화로 유명한 포즈 울리 서쪽의 캄파니아 해안에 위치한 도시다. 이 중에는 벽돌 벽돌이 밝은 변장이 떨어지는 활기찬 빨간색으로 빛나는 사원이 있었고 아치 개구부는 해안 풍경의 전망을 드러 냈다. 녹색으로 덮인 폐허에 염소 세 마리가 풀을 뜯고, 목자는 구조물 아래에  있다. 그 옆에는 도시적으로 옷을 입은 교육 여행자가 있었다. 17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더 넓은 형식의 버전은 비스 바덴 박물관에 있다.

 

빌헬름 보엘클러의 <꽃 정물>이다.

칼 프레드릭 셰퍼트의 <카프리의 푸른 동굴>이다. 1860년.  고대에 이미 알려진 카프리의 푸른 동굴은  지역 주민들에게 악마가 거주하는 장소로 간주되었다. 이 미신에도 1826년 8월 카프리에 온 젊은 화가 아우구스트 코피쉬는 겁을 먹지 않았다. 그의 친구와 함께 그는 빛과 색의 놀이로 독특한 동굴을 수영하는 것을 발견했다. 1826년 8월 17일 호텔리어 파가노의 게스트 북에 그는 메모를 올렸다. “우리는 바다의 깊이에서 빛이 넓은 공간을 파랗게 비추기 때문에 이 동굴을를 파란색(라 그로타 아주라)이라고 불렀다. 그로토와 비슷한 푸른 불의 물이 발견되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모든 파도는 불꽃처럼 보인다." 예술가들은 그로토를 그렸고, 코피쉬는 그의 경험을 여러 번 묘사하고 출판했다. 재발견 이후, 블루 푸른 동굴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조셉 레벨의 < 밀리스코라 근처의 아르코 디 미세노에서 본  니시다>다. 1828년.   1819년 황제 프란츠 1세를 대신하여 예술가는 나폴리 주변 지역의 4개의 대형 풍경을 만들었다 : "포르티치의 그라나텔로 항구", "캄피 플라게이의 일몰", "밀리스코라 근처의 아르코 디 미세노의 바다 타워", "살레르 만을 내려다 보는 비에트리시의 전망" 노(비엔나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의 네 그림 모두). 1819년 오스트리아 군주를 기리기 위해 전시된 로마 팔라조 카파렐리에서 독일 예술가들의 전시회에 참여한 티볼리의 풍경이었다. 국립 갤러리는 더 작은 버전의 형식으로 소유하고 있다. 첫 번째 그림은 비에트리와 아말피사이의 해안, 바다 및 산을 멀리 바라 보는 것을 보여 주며, 전경에 시골 사람들과 함께 활기를 불어 넣는다. 한때 카포 디 미세노에서 바다로 돌출된 바위 아치를 묘사하면서 폭풍이 몰아 치는 바다에서 해안으로 돌출된 어선이 있다. 하늘에 있는 먹구름은 극적인 상황을 증가시킨다.  

오귀스트 코피스크의 <폰타인 마르셰즈의 선셋>이다. 1848년.  강 오른쪽에는 시저 시대부터 버려진 수로가 있다. 전경에는 반 로마, 반 중세 성 유적지가 있으며 둥근 탑이 있다.  일몰로 인해 불타고 있는 하늘의 색감이 매우 강렬하다.

줄리우스 본 카롤스펠드의 < 수태고지>다.

줄리우스 휴브너의 <화가의 아내>이다. 1829년.  정밀한 백조 의자 한 조각만 튀어나온 넓은 벨벳 드레스를 입고, 뒤쪽에는 묵직한 커튼의 무거운 주름, 발 쿠션에 매끄럽고 부드러운 슬리퍼, 충실한 개를 간과하고 시청자를 흘끗 보는 유의한 꿈 같은 어두운 시선을 마주보고 있는, 삶의 전체 인물 그녀가 시민이 아닌 공주에게 더 적합할 수 있는 크기다. 젊은 줄리어스 휴브너는 19세의 신부 폴린 벤데만을 그렸다. 그는 은행가 벤데만의 아들인 동생 에두아르드와 드레스덴 아카데미의 동료에게 그림을 가르칠 때 그녀를 만났고 1824년 이래로 여러 번 그렸다. 이 큰 그림은 1828년 12월의 약속 이후에 만들어졌으며, 이탈리아의 공동 여행 (1829년 8월부터) 전에 완성되었다.  그의 스승인 새도우가 그린 <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는 베를린의 젊은 은행가 부인 파니 에버>의 비슷한 정교한 그림을 볼 수 있다. 특히 왼쪽 그림 가장자리에 놓인 고요한 삶에는 앵무새와 꽃무늬 식물, 정교한 꽃 테이블이 있다.  옷과 금공예의 화려함만이 식탁 위에 앉아 있는 검은 눈동자의 소녀의 감각적 매력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신부 사진을 보면 좀 낯설긴 하지만, 열린 보석상자의 바니타스 상징과 붉은 사마귀가 자라는 조개(비너스의 상징)의 에로틱 박스가 눈에 띈다. "사랑의 기념물" (그림의 글)은 가까이 다가옵니다.

칼 프리드리히 레씽의 <리터부르그, 기사의 성>이다. 1828년.  시인 고톨드 에브라임 레싱의 조카인 칼 프리드리히 레싱은 1826년 프러시아 라인란 트에서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 합류한 나사렛 빌헬름 샤도프의 베를린 마스터 스쿨러였다. 그의 초기 주요 작품인 "리터부르그"로 주목을 받았다. 베를린 수집가 요아킴 하인리히 빌헬름 바거는 성으로 장식된 가파른 물로 둘러싸인 바위가 솟아 있는 대규모 낭만적인 산 풍경을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