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술관/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알테)

루이스 코린트와 프란즈 본 스튜크

boriburuuu 2020. 10. 11. 11:50

로비스 코린트는 독일의 화가로 사실주의에서 외광파()회화로 전향하여 독일인상파의 대표자가 되었다. 1911년 중풍으로 쓰러진 뒤 점차 표현주의적 경향이 짙어졌다.

로비스 코린트의 <도나 그라비다(화가의 아내)>다.

로비스 코린트의 <눈 먼 삼손>이다. 1912년.

로비스 코린트의 <화가 프리츠 럼프의 가족>이다.  1901년.

로비스 코린트의 <로테 롤>이다. 1902년.   코린트는 친구 건축가 게오르그 롤의 아들 월터와 롤 부인을 그렸다. 동적 브러시 스트로크로 그는 인형과 놀다가정면을 응시하는 작은 로테를 묘사했다.

로비스 코린트의 <엄마의 사랑(모성애)>다.

로비스 코린트의 <월첸호수>다.  1921년.  바다와 하늘과 산과 나무까지 온통 파란색이 환상적이다.

로비스 코린트의 <로자 로젠>이다. 1924년.

프란즈 폰 슈투크의 <시리스를 묘사한 틸라 뒤리오>이다. 독일 화가, 조각가이며 판화가, 바이에른의 테텐바이스 태생. 뮌헨에서 공부하였으며 1893년 뮌헨 분리파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1895년 뮌헨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고, 그곳에서 칸딘스키, 클레를 가르쳤다. 슈투크는 또한 베를린, 드레스텐, 스톡홀름, 밀라노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이었다. 19세기 말에는 아르 누보, 즉 유겐트슈틸 운동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으며, 뮌헨의 자택을 통해 유겐트슈틸의 총체예술에 대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장식적이고 평평한 색채를 사용해 그림의 분위기를 조절한 것은 어느 정도 후대의 발전을 예시하는 것이다.

프란즈 폰 슈투크의 <죄>이다.

프란츠 본 스터크의 <파우누스와 물의 요정>이다. 1918년.

프란즈 반 스튜크의 <비노 비타스에서 >다.  1892년.

프란즈 반 스튜크의 <마리안 펄의 이미지 >다. 19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