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다시 박물관을 찾았다.
아나톨리아늬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박물관으로 힛타이트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15세기 바자르였는데 아타튀르크에 의해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아나톨리아'는 그리스어로 해가 뜨는 곳, 즉 동방이란 뜻이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부터 시작한다, (기원전 8천년) 사람들이 대부분 돌과 뼈를 이용한 도구를 이용해 집을 짓거나 먹을 것을 채집했다. 이 시대의 동굴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구석기 시대의 부싯돌(기원전 2만년-만년)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기원전 8천년-5500년)에는 인류 최초의 마을이 등장하고 농업이 시작되었다. 인류 최초의 집락촌으로 알려진 차탈회익의 가옥이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차탈회익은 콘야에서 북동쪽으로 50킬로 떨어진 곳인데 기원전 6500-6000년 정도에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촌락을 이루어 살았고 문자를 사용하녀 기록을 함으로써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차탈회익에서 발견된 기원전 5700년경의 테라코타 지모신의 좌상은 정면을 보고 앉아 있는데 갱명력이 강한 어머니 여신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이 신앙은 이집트의 이시스, 로마의 아르테미스 여신으로 이어져 그리스와는 전혀 다른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여신을 탄생시켰다.
산르우르파 인근의 괴베클리테페의 T 자형 석비의 모습도 보인다. 2010년에 발표된 결과로는 가장 오래된 부분이 기원전 9675년 무렵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구조물은 21세기 기준 약 11700년 전에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토기 없는 신석기시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정도 크기의 인공 구조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대표적인 대규모 고(古)유적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이기도 한 기자의 대 피라미드가 대략 기원전 2000~2700년 무렵에 건설된 유적인데 괴베클리 테페는 이 시기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피라미드가 지어진 시기와 현대까지의 기간(4000년)보다, 괴베클리 테페가 지어지고 피라미드가 지어지기까지의 기간(7000년)이 3000년이나 더 길다. 심지어 최초의 문명 도시라고 하는 수메르 문명보다도 앞선 것이다.
유적이 위치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현재까지 발견된 도시 중 가장 오래되고 초기 밀 농사를 했다고 추정되는 유적들도 발견되므로, 수렵인들이 이런 종교 시설을 건축하며 모여 살다가 농사를 지으며 정착민으로 변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새로운 학설이 제시되었다.
2019년, 괴베클리 테페에서 38km 떨어진 카라한 테페(Karahan Tepe)에서 T 자형 기둥이 250개나 발견되는 등 괴베클리 테페보다 더 거대한 신전이 있었고, 괴베클리 테페와 카라한 테페 외에도 주변 지역 각지에서 T 자형 기둥 신전이 잇따라 발견되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집단이 존재했었음이 드러났다. 신전 주변에서 곡식을 빻기 위해 필요한 맷돌과 탄화된 곡물이 대량으로 발굴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주변에서 주거지의 흔적들도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다.
금석 병용 시대(기원전 5500-3000년)는 신삭기 시대에서 금속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금속은 구리가 자주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이 시대의 석재, 금속 도구, 여신 인형, 장식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아래는 번영과 다산을 상징하는 작은 신상이다.
이른청동기 시대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기원전 3천년부터 청동을 사용했다.
의식용 청동 스탠다드 중 가운데 숫사슴, 좌우에는 황소 조형물을 한 이 작품이 있는데 히타이트의 알리자회익에서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2300-2100) 이 외에도 스탠다드라 불리는 사슴 모양의 조형물은 히타이트 시대의 걸적으로 유명하다.
고대 우라루트 왕국(기원전 9-6세기)의 사람 얼굴이 새겨진 그릇이다.
앗시리아 식민 시대는 기원전 1950-1750년깢지 200년간이었는데 처음으로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2만점 이상의 문자로 새겨져 있는 점토판 쐐기 문자를 만날 수 있다. 문서 대부분은 무역, 경제, 법률 등에 관한 내용이다.
히타이트 시대는 기원전 1750-1200년경으로 아나톨리아의 첫 통일 국가였다. 당시 말이 끄는 전차를 이용해 시리아 북쪽의 카데시에서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집트를 100년간 지배했을 정도로 강성한 나라로 그 후 많은 나라들이 전차 사용을 따라했다고 한다. 당시 히타이트는 세계 최초로 철기를 사용했고 성문법을 통해 어느 정도 민주적 평등사회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 유물로는 양각 황소 그림 용기와 각종 과일 그릇을 비롯, 사슴의 청동 동상 등을 볼 수 있다.
히타이트 전사의 모습 부조 히나이트의 수도 하튜샤의 문 양쪽에 부조되어 있던 것이다. 현지에는 모조품을 세워 놓았다.
히타이트의 민속 결혼 의식을 표현한 제사용 테라코타다. 이난딕테페는 하튜샤에서 북서쪽으로 100킬로 떨어진 히타이트(기원전 16세기)유적지로 대화재로 소실 되었는 데 1965년 이난딕 화병이 발견 된 후 발굴되고 있다. 이 화병은 4줄로 장식이 있는데 결혼의식에 관한 그림이다.
첫줄은 무용수와 악사들
둘째 줄은 광대의 연주하는 행렬, 결혼 예물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잘 보이지 않는 네번째 줄은 신랑신부로 보이는 남녀의 모습이다.
폭풍의 신을 상징하는 황소 모양의 그릇은 제사 의식에 사용된 것이다. 기원전 16세기.
물을 넣을 때도 네모 홈에 부으면 공간을 돌아 소의 입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화병도 같은 형태였다.
히타이트의 멸망과 함께 프리기아 시대(기원전 1200-700)가 시작되는데 프리기아는 현재 앙카라의 할리스 강이 잇는 곳에서 시작되었는데 히타이트와는 좀 떨어져 있다.
프리기아의 대지의 여신 시벨레의 두상이다.
그림이 장식된 테라코타 주전자로 기원전 8세기 작품이며 왕족의 어린이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청동 가마솥이다. 미다스왕의 무덤에서 풀토되었다. 기원전 740년.
아레지스티스의 기념비다(기원전 6세기) 키벨레 여신상으로 메서포타미아에서 탄생한 프리기아의 대지의 여신으로 곡물의 결실과 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로마가수입하면서 유럽의 대표적인 여신상으로 자리잡았다.
후기 히타이트 시대(기원전1200-700)는 히타이트 멸망 후 남아 있던 사람들이 남동 아나톨ㅇ리아로 이주해 연 시대로 이 당시 궁전과 신전에서 나온 부조들이 전시되어 있다. 히타이트 시대 사제가 의식에 사용했던 우주를 상징하는 형상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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