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술관/루브르박물관 29

루브르 산드로 보티첼리와 필리포 리피

산드로 보티첼리의 이다. 1483년. 이 프레스코화는 피렌체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벽화로 토르나부오니가의 시골 별장인 빌라 렘미에 있다가 1873년 회반죽에 덮여 있던 작품이 발견되고 옮겨졌다. 결혼을 기념한 것으로 보이며 비너스와 미의 삼여신이 건네는 천에 담긴 선물을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손을 뻗어 박고 있는데 긴장한 모습이고 옆에 사랑의 신인 아기 큐피트가 있다. 왼쪽의 두 여신은 파도처럼 굽이치는 옷이 내면의 생기를 상징하고 뜨거운 관심을 표현한다. 훨씬 여성의 미에 대한 화가의 이상을 구현하고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이다. 1483년. 보티첼리의 다. 1470년 그림의 왼쪽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이다. 1470년 중앙의 그림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이다. 1465년 스승인 필리포 리피의 ..

루브르의 18세기 프랑스 화가들

장 밥티스트 시메옹의 다. 일종의 숨은 자화상으로 보이는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사실적이면서도 고혹적이다. 페르메이르의 영향을 받은 그림이다. 장 앙트완 와토의 이다. 1715년. 장 앙트완 와토의 이다. 그리스 신회에서 키테라는 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지로 사랑의 섬으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우아한 사렁의 순례를 위해 슬선을 준비하는 한무리를 그렸는데 오른쪽의 한쌍은 사랑의 유희에 빠져 있고 왼쪽의 한 신사는 여인이 일어나도록 돕고 있고 하늘에는 사랑을 상징하는 아모리노가 떠다니고 있다. 이 그림으로 와토는 페트 갈랑트(연애의 향연)라는 장르를 개척했고 이시기 인기있는 주제가 되었다. 장 앙트완 와토의 다. 1715년. 로코코의 거장이었던 화가는 갈랑(연애) 관습을 다뤘지만 신화도 그렸다. ..

루브르의 밀레와 테오도르 루소, 코로

밀레의 이다. 밀레의 이다. 1852년 밀레의이다. 1850년. 최초의 화가 거주지인 바르비종파의 화가로 자연과 예술위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풍경화에 전념했다. 농부들의 혹독한 삶에 대한 밀레의 감각적인 묘사는 당시 큰 비난을 받았으나 사실 부유한 농민의 아들이었던 밀레가 관심 있었던 것은 회화의 혁명이었다. 이 그림은 농부의 고단함 삶 보다는 빛과 색의 상호작용에 관한 주제였다. 특히 그림안에서 비치고 있는 미술적인 빛의 표현에 힘썼다. 밀레의 이다. 1855년 밀레의 이다. 1848년 테오도르 루소의 이다. 1850년. 테오도르 루소의 이다. 1852년 까미유 코로의 이다.

루브르의 외젠 들라크루아

웨젠 들라크루아의 이다. 1831년 1881년 화가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1830년 프랑스의 7월 혁명을 기념하여 그려졌다. 7월 27일 샤를 10세에 대항한 폭동이 일어났는데 언론 검열이 도입되자 폭동이 일어났고 이 그림은 파리 시민들이 자유를 위해 싸워 승리를 거둔 투쟁을 기념하고 있다. 자유의 의인화는 가슴을 드러낸 여신의 형태로 그렸고 위험 속에서도 국기를 들고 투사들을 이끌고 있으며 공화주의자와 군주제의 화해를 상징한다. 오른쪽 학생복을 입은 남자는 에 등장하는 파리의 부랑아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모자를 쓰고 총을 들고 있는 남자는 화가 자신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자유와 혁명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들라크루아의 다. 1830년 들라크루아의 다. 1837년경 로소 피오렌티노의 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루브르의 렘브란트

렘브란트의 이다. 1660년 58세의 자화상으로 실물 크기에 가까운 상반신 초상화에 작업중인 화가의 모습을 담은 화가의 작품 중 이례적인 것이다. 얼룩덜룩한 화가용 작업복에 소박한 흰모자를 쓰고 있는데 이는 혹시라도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오른쪽 그림 끝부분에 잘린 것은 이젤이고 오른손을 팔 받침대에 올리고 있는 모습은 작업 중 잠시 맘췄음을 말한다. 자신감 넘치고 낙관적인 전의 초상화들과는 달리 어두운 분위기가 드러나는데 화가는 이 무렵 파산해 재산을 경매로 내놓고 집까지 팔아야했던 오려운 날들을 헤쳐온 상황이었다. 엄숙하고도 애수에 잠긴듯한 초상화다. 렘브란트의 이다. 1662년 티튀스가 20세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어두운 배경에 두드러진 젊은이의 얼굴은..

루브르 루벤스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 24연작

마리 드 메디치가 루벤스에게 자신의 일생을 24개의 연작 그림으로 그려줄 것을 의뢰해 제박도니 것으로 그녀는 앙리 4세의 부인이자 루이 13세의 어머이니다. 앙리4세가 죽고 8세에 왕위에 오른 루이 13세의 섭정을 하다가 아들에 의해 블루아성에 감금되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성에서 탈출해 또다른 아들 오를레앙공과 반란을 도모했고 실패하자 리슐리에 추시경의 중재로 루이 13세와 화해한다. 그리고 새로운 궁전(룩셈부르크 팰리스)에 전시하기 위해 자신의 영광스러운 시절을 회상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들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반격을 도모해 1631년 마리는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브뤼셀로 망명했으며 이후 1642년 쾰른에서 죽었다. 루벤스의 마리 데 메디치의 24연작 중 첫번째 그림이다. 이다. 그림의 왼쪽..

2016년 5월9일 1 루브르 미술관 3층 드농관 회화 위주, 카루젤 개선문

2층의 드농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16-17세기의 이탈리아 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13전시에 들러 모나리자와 앞의 가나의 혼인잔치 등을 보고 가나의 혼인잔치, 나폴레옹 황제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등을 둘러 보았다. 전세계에 17점 밖에 없다는 다빈치의 그림이 5점이나 있었다. 그동안 패키지 여행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시간이 부족해 항상 미흡한 느낌이었는데 이날 하루 종일 루부르에서 보내면서 90% 이상 갈증이 해소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잊지 못할 하루였다. 밖으로 나가니 카루젤 개선문이 보인다. 나폴레옹이 오스테를리츠 전투의 승리를 자축하며 1808년에 역시 로마의 개선문을 본따 만들었단다. 기둥에 마폴레옹의 승전을 묘사한 부조가 있고 샹젤리제, 라 데팡스의 개선문과 일직선으로 있단다. 산드로..

2016년 5월 9일 루브르 미술관

아침에 잠을 깨니 대형사건이 벌어져 있었다. 카메라를 충전하려고 꽂아 놓았는데 재란 언니가 잘못 건드려 충전이 되질 않은 것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야하는데 정말 짜증이 만땅이다. 충전을 기다리며 일행들에게 먼저 가라고 했는데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이 정말 먼저 가버렸다. 덕분에 혼자 루부르를 가게 되었는데 이게 전화위복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루부르를 돌아다니며 감상하는 그 기분이란 정말 짱이다. 역시 지난번에 한번 와봤기 때문에 드농관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지하로 내려가 조각 작품들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유적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역시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작품 수도 많았지만 내용도 매우 훌륭하고 건물 자체가 왕궁으로 쓰였던 곳이니 만큼 가구와 벽, 천정의 장식 또한 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