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술관/루브르박물관

2016년 5월9일 1 루브르 미술관 3층 드농관 회화 위주, 카루젤 개선문

boriburuuu 2017. 2. 17. 12:23

2층의 드농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16-17세기의 이탈리아 회화를 소장하고 있는 13전시에 들러 모나리자와 앞의 가나의 혼인잔치 등을 보고 가나의 혼인잔치, 나폴레옹 황제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등을 둘러 보았다. 전세계에 17점 밖에 없다는 다빈치의 그림이 5점이나 있었다. 그동안 패키지 여행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시간이 부족해 항상 미흡한 느낌이었는데 이날 하루 종일 루부르에서 보내면서 90% 이상 갈증이 해소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잊지 못할 하루였다. 밖으로 나가니 카루젤 개선문이 보인다. 나폴레옹이 오스테를리츠 전투의 승리를 자축하며 1808년에 역시 로마의 개선문을 본따 만들었단다. 기둥에 마폴레옹의 승전을 묘사한 부조가 있고 샹젤리제, 라 데팡스의 개선문과 일직선으로 있단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성모자상(구이디 다파엔차의 성모) 1645년경>이다. 스승인 필리포 리피의 영향을 받은 청년기의 작품으로 투명한 베일로 둘러싸인 높은 이마에 온화한 소녀같은 성모의 모습과 건강하고 생기넘쳐 보이는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왼쪽은 역시 보티첼리가 그린 <젊은 남자의 초상>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승리. 1470년경>이다.

 

시세타(스테파노 디조반니)의 <여섯명의 천사들에 둘러싸인 성모자와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와 사도 요한>이다.

 

시세타(스테파노 디조반니)의 <악마들에게 빼앗긴 시테르나의 영혼을 수도자들에게 가리켜 보여주는 복자 라니에리>이다. 1440년

 

시세타(스테파노 디조반니)의 <불쌍한 사람들을 피렌체의 감옥으로부터 석방시키는 복자 라니에리>이다. 1440년

 

시세타(스테파노 디조반니)의 <바리의 성 니콜라스>이다. 1430년

 

바르톨로 디프레디의 <신전의 봉헌>이다. 1388년

 

조반니 프란체스코 다리미니의 <성모 마리아의 생애 중 열두 장면>이다. 1445년경

 

성 프란체스코의 거장이 13세기 중반에 그림 <채색된 십자가>이다.

 

로렌초 모나코가 그린 <감람 동산의 그리스도와 무덤가의 성녀들>이다. 1408년

 

 

 

 

 

 

 

 

두말할 필요 없는 모나리자 앞에 도착했다. 이탈리아로 그림을 돌려 주고 싶었다는 한 청년 때문에 지금은 유리 벽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사이즈의 그림이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볼려 있어 사진 한장 찍기가 전쟁이다. 입가에 머금은 오묘한 미소와 함께 여성과 남성, 기쁨과 슬픔 등이 뒤섞여 있는 듯한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이 그림은 귀족 부인ㅇㄹ 모델로 하고 있다고 여겨지나 다빈치 자신의 자화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근법과 안개에 싸인 듯 형태를 흐리는 기법인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르네상스 예술의 진수로 알려져 있다.

 

 

 

모나리자 맞은편에 있는 파올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잔치다. 베로네세는 화면에 수많은 인물을 묘사하고 그들이 걸친 의상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지극히 장식적이거 호하스럽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로네세는 예수 앞자리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는 네명의 인물 중 첼로연주자에 티치아노, 바이올린에 틴토레토, 관악기에 바사노, 기타 연주자엔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어 화가의 지위의 자신감과 자신이 세 거장과 함께 최고의 화가 반열에 들었음을 괴시하고 있다.

 

 

 

라파엘로의 <세례자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자> 도는 <아름다운 정원(라 벨 자르디네르)>이다. 1507년 나무판에 유화로 그린 그림으로 삼각 구도를 이용한 안정된 구도다.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보티첼리풍의 세속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세례요한, 두 어린아이를 돌보는 자상하고 모성애 가득한 성모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권능을 상징하듯 빨강과 파랑의 옷을 입고 있어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아르침볼로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연작이다. 이 그림들은 담순히 사계절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왕의 초상화이기도 한데 과일이나 야채, 꽃, 나무 등으로 표현된 이런 류의 초상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주문하고 받아준 루돌프 2세의 기지와 아랼도 훌륭할 뿐 아니라 그렇게 오래전에 이런 창의적인 화가가 있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무리요가 그린 <걸인>이다. 세비야의 화가로 걸인은 스페인 장르화의 한 예이다. 이 작품은 나중에 청색시대의 피카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스페인 화가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벨라스케스도 시녀들이나 어릿광대의 그림을 그리기도 햇다.  

 

 

 

 

 

 

 

 

 

 

 

카라바조의 <성모의 죽음>이다. 죽음을 맞이한 성모를 그리기 위해 창녀를 모델로 기용했다고 하고 절대적 권위를 가진 마리아가 두 다리를 훤히 드러낸 것도 그렇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일반 서민보다 더 허접해 보이는 옷차람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경악 그 자체였다. 그러나 빛을 이용한 현실성 있는 그의 그림은 항상 더할 수 없이 드라마틱하다.

 

 

 

 

 

 

 

 

 

 

 

 

 

 

 

라파엘로의 악마를 물리치는 천사 미카엘의 모습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모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 안나와 성모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라 벨 페로니에르>다. 특이한 것은 아래의 틀의 효과이다. 여인은 틀 너머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림 속의 그림 같기도 하다. 프랑수아 1세의 정부라고도 하고 스포르차 가문의 루드비코 일 모로의 연인인 루크레치아 크리벨리라고도 하지만 정확하진 않고 '라 벨 페로니에르'란 '아름다운 머리띠 장식을 한 여인'이란 뜻이란다. 상당히 아름다우면서도 성깔 있을 듯한 모습이다.

 

역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광야의 성 요한: 바쿠스>이다. 몸은 완벽한 남성이지만 얼굴 생김새는 곱상한 여성의 얼굴 모습이다. 이처럼 성별을 모호하게 처리하는 기법은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도 했고 그의 성적 취향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앵그르의 <대 오달리스크>다. 앵그르는 고전주의를 옹호했지만 관능이라는 인간 심연의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 나아가 관람자의 욕망을 분출시키는 공간으로 당시 낭만주의자들이 반색했던 오리엔트를 택햇다. 오달리크는 터키왕 술탄의 궁중의 여자 노예를 뜻한다. 오달리스크는 보통 회화에서 길게 침대에 누워 있는 이국 취향의 여성 누드를 뜻하는데 이 작품의 여성은 완벽한 붓 터치와 끊임 없이 이어진 윤곽선으로 이루어진 잘 빠진 몸매이다. 지나치게 긴 등을 가진 비현실적이지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이다. 역사화로서 가치가 있는 이 그림은 회화가 사진보다도 더 드라마틱할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다비드는 이 작품을 위해 70여 명의 실존 인물들을 하나하나 데생했으며 그들의 의상까지 일일이 스케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황제의 어머니 마담 메레를 정중앙에 그려 넣었고 나폴레옹의 얼굴을 로마의 동전이나 메달 부조처럼 측면상으로그려넣어 권위와 위엄을 한층 부각시키기도 했단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대관이 끝난 후 아내 조세핀에게 왕비관을 씌워주는 장면을 묘사했다.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다. 다비드는 이 작품을 통해 이 시기 국가가 요구한 애국심, 즉 개인적인 행복이나 말랑거림에서 벗어나 보다 대의적이고 공적인 의무에 관심을 가지라고 일종의 성동을 하고 있다. "미술은 대중을 교육하는데 공헌해야한다." 호라티우스 형제가 오랜 숙적인 알바 왕국을 무찌르기 위해 출정하면서 아버지 앞에서 승리를 맹세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다비드는 상당히 정치적인 인물이었나보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다. 당대 최고의 뉴스였던 메두사호의 침몰 사건을 회면에 옮겨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 군상의 심상을 난폭하리만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식민지인 세네갈에 프랑스인들을 실어나르는 배가 선장의 실수로 조난을 당해 선장과 선원들은 구호선으로 도피하고 도피선에 149명을 실은 뗏목을 이어 탈출하기로 하고 밧줄을 끊어 버렸다. 12일 동안 표류하던 뗏목에서 살아남은 15명을 서로의 인육을 먹으며 굶주림과 싸웠다고 한다.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이다. 아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전쟁에서 패하자 자살 직전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다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린 사건을 그린 것으로 여자들도 왕의 소유물이므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 살육이 장면을 보는 왕의 모습은 촌하태평에 거의 즐기는 모습인데 서구 인의 눈으로 본 동방 왕국의 변질된 모습이라고 보인다.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다빈치의 그림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데 훨씬 앳된 모습을 하고 있다.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이다.

 

 

 

앵그르의 <터키탕>이다. 위의 그림의 뒷모습의 여인이 여기도 등장한다. 앵그르는 이 그림에 자신이 평생 만났던 여인들을 그려 넣었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겠다.

 

 

 

 

 

 

 

 

 

 

 

 

 

 

 

 

 

 

 

 

 

드 라 투르가 그린 <퐁파두르 부인>이다. 루이 15세의 정부인 마담 퐁파두르는 당시 살롱문화의 주역이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프랑스 미술을 후원했고 지식인들을 발국하고 ㅈ;원했다. 모리스 킹탱 드 라 투르가 그린 이 전신상은 발그스레한 얼굴에 화려한 의상이 돋보이는 로코코풍이지만 배경에는 금서인 <백과전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볼티르의 <앙리아드> 등이 놓여져 있다. 자신이 선정한 이 책들과 손에 든 악보가 기녀의 생활을 짐작케한다.

 

 

 

 

 

 

 

 

 

 

 

 

 

 

 

 

 

 

 

 

 

 

 

 

 

 

 

 

 

 

 

 

 

 

 

 

 

 

 

 

 

 

 

 

 

 

 

 

 

 

 

 

 

 

 

 

 

 

 

 

 

 

 

 

 

 

 

 

 

 

 

 

 

<카루젤 개선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