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술관/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조지 루올트, 페르낭드 레거, 살바도르 달리, 조지 브라케 ,칸딘스키

boriburuuu 2020. 10. 9. 01:19

조지 루올트의 < 세명의 판사>다. 1938년도. 1930년대 후반까지 루울은 판사를 대표하는 데 관심이 없어 보였으며, 1910년과 1919년 사이에 그의 작품에 널리 퍼졌다. 이 후기 그림에서 판사들의 호전성 표현은 평온한 자비로 바뀌었다.,두 명의 도살자가 나란히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많은 클로즈업 뷰에서처럼, 루울트는 마치 집단 초상화처럼 이 세 명의 판사들의 볼을 볼에 대고 배열했다. 그들의 눈은 감겨 있다. 루울은 1930년대 초에 사용하기 시작한 기술인 많은 색소를 발랐다. 두꺼운 검은 윤곽으로, 그 그림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조지 루올트의 <황혼>이다. 1937년. 깊은 영적, 루울은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기독교 신앙을 연구했다. 프랑스 시인이자 비평가인 안드레 수아레스는 "당신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신비로운 노래를 결코 없애지 말라"고 쓰면서 그를 격려했다. 기독교 장면을 명상하면서 루울은 보석 같은 색깔, 납작한 형상, 스테인드 글라스를 암시하는 방식으로 짙은 검정색 윤곽을 사용했다. 트와일라잇은 1929년에서 1939년 사이에 완성된 많은 성서 풍경 중 하나이다. 그림의 제목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지만,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막힌 출입구를 마주치는 중심 인물들은 마리아가 아기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 베들레헴에 은신처를 찾는 요셉과 마리아일 수도 있다. .

조지 루오의 <신화적 풍경>이다. 1936년.

페르낭드 레거의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이다. 1921년.  고양이를 가진 여성은 레거가 1920년대 내내 그린 기념비적인 여성 인물 그룹에 속한다. 무동력하고 정면인 이 거대한 누드는 돌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져 한꺼번에 고전 조각과 미래지향적인 로봇을 연상시킬지도 모른다. 레거의 주제는 유럽, 특히 프랑스, 예술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능률적인 스타일은 화가의 친구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옹호하고 대중화한 현대 디자인 미학을 반영한다. 

페르낭드 레거의 <건축가들>이다.

페르낭드 레거의 <정원가의 세 여인>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십자가형>이다.  1954년.  리는 가톨릭, 수학, 과학의 융합인 "핵 신비주의"라는 이론을 활용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이 특이한 해석을 만들었다. 기하학적이고 다차원적인 형태인 하이퍼큐브 앞에서 침탈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건강하고 운동적이며 고문의 흔적이 없다. 가시와 손톱의 왕관이 없어졌다. 예술가의 아내 갈라는 육체적인 해악에 대한 그리스도의 영적 승리를 목격하면서 헌신적인 인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달리의 초기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나온 몇 가지 꿈 같은 요소 : 공중 부양하는 인물, 광대한 불모지 풍경 및 체스 판이 나온다. 

살바도르 달리의 <욕망의 수용>이다. 1929년.  스페인 태생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는 1929년부터 1941년까지 공식적으로 초현실주의와 동맹을 맺었으며, 그 후에도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 사상과 방법론의 영향을 계속 반영했다. 그의 화려함, 드라마와 자기 홍보에 대한 재능, 그리고 과민한 상상력은 그 운동과 대중의 인기를 되살렸다. 환각과 편집증적 환영에 주어진 달리는 그의 그림에 대해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제를 배양하여, 너무 세심하게 만들어 임상상의 사실에 불안해했다. 그러한 그림들은 꿈과 무의식에 대한 초현실주의적인 집착을 예시했다. 1929년 여름에 그려진 용망의 수용은 나이 든 유부녀와의 연애에 대한 달리의 성적 불안을 다루는 작은 보석이다. 당시 초현실주의 시인 폴 루아드의 아내였던 갈라라는 달리의 평생 뮤즈와 짝이 되었다. 달리가 갈라와 단둘이 산책한 후 그린 이 그림에는 사자의 머리를 "테러"하는 것(그 그림의 제목이 우스꽝스럽게 암시하는 것처럼 그의 "욕망"에 "편집"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가발과 개미 군락(부패의 상징)이 그려진 7개의 확대된 조약돌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양한 그릇(여자의 머리 모양)과 플랫폼에 포옹하는 세 개의 형상도 묘사되어 있다. 달리는 사자 머리를 그리지 않고 오히려 삽화가 된 어린이 책임에 틀림없는 것에서 잘라내어 후자의 상세한 스타일과 자신의 스타일을 교활하게 일치시켰다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누드>다. 1917년.  1916년에 시작된 모딜리아니의 유명한 누드 시리즈는 비너스와 다른 이상화된 여성 인물들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표현에 영향을 받는다. 1917년의 이 그림에서 모델의 스타일링된 윤곽이 드러난 몸은 클로즈업과 위에서 전체 캔버스에 걸쳐 있다. 그녀의 손과 발은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고 그녀의 크림색 피부는 짙은 빨간색 침대 또는 소파에 빛난다. 여성 나체가 신화나 우화에 담겨 있는 르네상스부터 19세기까지의 비너스의 묘사와는 달리 모딜리아니는 그러한 맥락 없이 자신의 눕혀진 누드를 도발적으로 제시하여 그림의 에로티시즘을 부각시킨다. 

모딜리아니의 <선원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다. 1918년.  1918년 3월부터 1919년 5월까지 병든 모딜리아니는 건강한 기후에서 회복하기 위해 프랑스 남부, 주로 니스에 살았다. 그는 평소 친구 모임이 부족하여 지역 젊은 하인, 상점 소녀 및 아이들을 모델로 고용했다.

조지 브라케의 <이젤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이다. 1936년.  이 그림은 브라크의 후기 작품의 모래로 덮인 색소와 곡선 형태로 표시되어 있으며 팔레트와 붓을 손에 들고 앉아 있는 여성 예술가를 선보이고 있다.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예술가 자신의 바렌지빌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예술적 또는 음악적 활동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묘사한 약 10점의 그림 중 하나이다.

조지 브라케의 <테이블에서 캔들스틱과 카드놀이>다. 1910년 봄.  예술에서 전통을 강화하려는 그들의 탐구에서,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는 유럽 회화에서 오랫동안 확립된 주제인 초상화, 인간의 모습, 정물화에 다소 아이러니하게 헌신했다. 여기서 브라크의 정물은 눈에 띄는 물체의 파편으로 시청자를 유혹한다. 작문의 아래쪽 중앙에는 회색, 갈색, 흑인의 그림의 톤 팔레트에서 테이블 모서리가 나타난다. 더 멀리, 놋쇠 촛대의 밑부분이 테이블 위에 나타난다. 오른쪽에는 하트 에이스와 다이아몬드 여섯 장의 두 장의 놀이 카드가 떠 있다.  캔버스는 그림의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압축한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즉흥 27: 사랑의 정원>이다.  1912년.  칸딘스키는 영향력 있는 논문인 예술의 영성에 관한 논문에서 추상적인 형태와 색채 상징성을 이용하여 내적이고 의식적인 세계를 환기시키면서, 정서적, 정신적 이상에 유리하게 물질주의 세계를 거부할 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표현을 이론화했다. 어두운 선과 추상적인 다채로운 대중으로 구성된 즉흥 27은 뱀 형태로 둘러싸인 포옹하는 커플의 세 가지 반복을 묘사한다. 칸딘스키는 사랑 II의 자막 정원에 있는 그림의 가능한 주제를 암시하며, 이는 성서 에덴에 대한 언급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