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분 앙카라에서 조지아 트빌리시로 이동했다. 2:50분 도착 예정인데 짐 찾고 하니 3시 반 정도 된 것 같다. 조지아 입국 정차에서부터 약간의 헤프닝이 있었다. 카메라를 보라는데 옆에서 언니가 헬프 미를 한다. 타고 온 비행 편명을 물어본 모양인데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나를 부른 것이다. 고개를 돌리고 몸을 돌려서인지 남자 직원은 인상을 쓰며 옆으로 서라고 한다. 왜 안되는거냐고 항의하니 다른 분이 시스템이 오류가 난 것 같다고 한다. 한사람 뒤에 통과 되었지만 한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심히 불쾌했다. 그러고는 달러를 뽑고 환전을 하려는데 100달러당 수수료가 4달러란다. 트레블 월렛과 신한 솔카드를 준비해 왔는데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환전이 되지 않아 달러를 뽑아 현지 화폐로 환전해서 사용해야 했다. 언니는 밖으로 나가면 의자도 없으니 짐찾는 곳에 있자고 하는데 할 일이 많은 나는 나가서 볼일을 볼테니 5시 반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나왔다. 예상대로 의자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여러 atm 중에 100달러에 수수료 1달러만 지불해도 되는 것을 찾아 돈을 일단 찾았다. 한번에 최대 100달러 밖에 되질 않아 계속 뽑아야만 했지만 그래도 수수료가 낮으니 감사할 일이다. 사람들이 30분도 넘게 계속 돈을 뽑고 있는 나를 쳐다보지 않기를 희망하며 일단 달러를 확보하니 기운이 난다. 국내에서 유심을 사갔는데 이날 바로 아르메니아로 넘어갈 생각이어서 하루는 유심이 없이 살아야할 일이 걱정되어 1달짜리 유심을 알아보니 가격이 너무 높다. 환전소가 많이 있었는데 2.2부터 2.8까지 다양했다. 가장 좋은 곳을 찾아 환전 하려니 아까 입국심사 때의 일이 문제가 되었는지 환전해 주질 않고 다른 곳에 가보란다. 2.7인 곳을 찾아 환전해 달라고 하니 다행히 환전을 해준다. 약간 남은 리라도 무사히 환전했다. 그러다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언니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8시가 되어야 버스가 다닌다. 택시를 타고 일찍 나가봐야 갈 곳도 없는 우리는 공항 바닥에 앉아 시간이 가길 기다려 무사히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유심이 없다보니 내릴 곳을 알수가 없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기사에게 문의하라고 하고 언니는 세상 모르고 잠만 자고 있다. 사람이 많아 기사에게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시 물으니 정류장을 지나쳤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내려서 택시를 탔다. 짧은 거리인데도 택시기사는 10라리를 받아갔다. 세계 어디서나 가장 주의해야 할 사람이 택시 기사들인것 같다. 예레반으로 가는 마슈르카의 티켓을 구입하고 마트에서 먹을 빵과 음료를 구입해 차안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 이번엔 또 운전수가 문제다. 우리에게 앞좌석으로 옮기라는 것인데 뚱뚱한 이 남자는 완전히 명령조로 윽박지르다시피 한다. 20년전에 갔을 때의 러시아 사람들 비슷하다. 싸움 끝에 뒷좌석을 사수하고 결국 아르메니아로 가게 되었다. 나중에 다른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약간의 인종 차별인지 이런 일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아르메니아에서는 구글이 되기 때문에 숙소 가까운 곳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숙소를 찾아가는데 한 노인이 자기가 안다며 따라오라고 한다. 알지 못하고 다른 곳을 헤메는 노인은 여행객들이 오면 길을 안내해주고 팁을 받는 사람인 것 같았다. 결국 헤멘 끝에 숙소를 찾았다. 성 그레고리 대성당 부근이었다. 찾고 보면 별것 아닌데 숙소에 가면 여행이 절반은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짐을 풀고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성 그레고리우스 대성당이다.



내부는 문이 닫혀 들어가볼 수 없었다.


공화국 광장 가는 길에 만난 영국 정원이다. 주변에 카페, 레스토랑도 많고 라이브 음악을 공연하고 있었다.





공화국 광장이다. 시내 중심에 있고 교통의 중심이고 공장 주변을 국립 역사 박물관, 시계탑이 인상적인 정부 청사, 메리어트 호텔 등 신고전주의 양식의 분홍색과 흰색의 응회암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막연히 어려운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부유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이 건물들은 1950년대에 완성 되었고 소비에트 시절에는 중앙에 레닌의 동상이 세워져 레닌광장으로 불렸으나 1991년 독립한 후 레닌의 동상이 철거되고 이름을 공화국 광장으로 바꾸었다.
국립 역사 박물관의 모습이다. 1921년 문을 열었고 40만 점 이상의 고고학, 민족학, 화폐 등 수집품을 기반으로 선사시대에서 현재까지 아르메니아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준다.

시계탑이 있는 정부청사의 모습이다.

메리어트 호텔의 모습이다.



꽃파는 할아버지의 동상이 있었다.




펄플락이라는 공공분수대(식수대)의 모습이다. 펄플락은 아르메니아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최초의 것은 1920년대 설치되었고 매우 인기가 있다. 만남의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는데 물이 웅웅거리는 소리 '풀풀'에서 파생되고 '수원'을 의미하는 'ak(접미사)이 합해져 펄플락이 되었고 보통 높이가 1미터 쯤 되는 작고 물이 흐르는 석조 기념물로 종종 산의 샘물이 공급되기도 한단다.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잇었는데 물갈이가 두려운 우리는 시도해보지 못했다. 생수가 제일이다. 일부 펄플락은 죽은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지기도 해 행인들이 추모하기도 한단다.


아르메니아 국립 오페라 및 발레 그장에 가 보았다. 시간상 공연을 볼 수 없어 내부를 잠깐 들여다 보았다. 이 극장은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웅장한 무대를 갖고 있는데 1400석의 아람 카타투리안 콘서트홀과 유명 작곡가인 알렉산거 스펜디아리안의 이름을 딴 1200석 규모의 오페라 및 발레 극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30년대에 문을 열었고 현재의 모습은 1953년 완성되었다.







오페라 극장 뒷편으로 케스케이드가 나타났다.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118미터의 거대한 돌 계단이다. 자세한 것은 내일 보기로 하고 밤 야경과 야외 작품들을 보았다.





































공화국 광장에서는 밤마다 음악분수쇼를 한다고 해서 이곳을 다시 찾았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음악과 함께 분수쇼를 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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