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몽골(2013.07.27-08.14)

울란바타르 시내를 돌아보며(3)|

boriburuuu 2016. 3. 7. 00:09

 일행은 약속시간을 잘 지켰다. 백화점에 도착(13:40)하여 돌아보니, 서울의 롯데백화점 정도의 규모였다. 1층에서 5층까지 넓은 매장을 돌아보며 물건을 살펴보았다.

 울란바타르는 평일이고 낮이었음에도 교통체증이 심했다. 한창 발전하는 도시인데다 도로는 좁고, 아직 교통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건널목에 빨간 불이 켜졌음에도 기회를 보아 건너는 주민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러나 관광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어제 저녁에도 느꼈지만 오늘 낮에도 그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빨간 불이 들어왔는데도 건널목을 건너는 울란바타르의 교통상황>

 

 일행은 버스로 백화점을 출발, 간당사원에 도착(15:45)했다. “간당사원(Gandan Khid)”은 제4대 복드항 게갱에 의해 1838년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몽골 대부분의 수도원이나 사원들처럼 1937년 숙청 및 파괴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 부통령인 헨리 윌리스가 1944년 몽골을 방문해 수도원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수상이었던 초이발상은 서둘러 수도원의 문을 열어 몽골의 문화유산을 방치하고 파괴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간당사원은 이후에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계속 이용되었다고 했다.

 

<간당사원 정문>

 

  간당사원은 하르호링의 에르데네 조 사원, 셀렝게의 아마르바야스갈랑트 사원과 함께 몽골의 3대 불교사원으로 꼽혔다. 간당사원은 남쪽 중앙출구로 들어가면 동남쪽에 담장으로 둘러싸인 별도의 구획이 있었다. 그 안에는 5개의 건물이 둘러서 있었는데 사원이 3개이고 종무소와 도서관 건물이 있었다. 중앙 정원에는 비둘기들이 먹이를 쪼고 있었다.

 

<간당사원의 5개 건물이 들어선 별도 구획의 작은 문 입구>

 


<한 번 돌리면 그 안의 경전을 한 번 읽은 것으로 본다는 마니차>

 

  작은 구획을 나와 서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바트사강 사원(Battsagaan Temple)이 있었으나 지금은 수리 중이었다. 그 북쪽에는 상점과 몽골 불교대학이 있었다. 입구의 큰길을 따라 가면 부처 발모양의 조각이 있었다. 그 북쪽에는 믹지드 잔라이식 슘(Migjid Janraisig Sum)이라는 웅장한 건물이 있었다.

 

<바트사강 사원 뒤 북쪽에 있는 불교대학>

 


<간당사원 정원 중앙에 있는 발 조각상>

 

<간당사원의 대법당인 "믹지드 잔라이식 슘" 전경>

 

  이 수도원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벽을 따라 장수를 상징하는 수백 개의 아유시(Ayush)부처의 그림이 늘어서 있었다. 아유시는 어둠을 뚫고 믹지드 잔라이식 불상을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이 불상은 1911년 제8대 복드항이 만들었으나 1937년 러시아인들이 실어가 녹여 총알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 있는 불상은 1996년 새로 만든 것으로, 높이가 26m이고 구리로 만들었으며 금을 입힌 것이었다. 불상 안은 비어 있는데 여기에 27톤의 약초, 334개의 경전, 200만개의 만드라, 가구까지 갖춘 게르가 들어있다고 했다.

 

<믹지드 잔라이식 슘(대법당)의 대불 앞 모습>

 

<믹지드 잔라이식 슘 안에 있는 높이 26m의 구리로 만든 대불>

 

<믹지드 잔라이식 슘 안의 모습 1>

 

<믹지드 잔라이식 슘 안의 모습 2>

 


  이 건물 동쪽에 4개의 건물이 있었으며, 3개는 문이 잠겨 있었으나, 북동쪽에 있는 건물은 마침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스님들이 사회를 보며 경을 읽었고, 200여명의 신자들이 이에 따라 절을 하기도 하고, 서서 두 손을 모으기도 했다. 이 간당사원에는 현재 약 600명의 수도승이 살고 있다고 했다.

 

<간당사원 내 문이 잠긴 건물 모습 1>

 

<간당사원 내 문이 잠긴 건물 모습 2>

 

<간당사원 동북쪽 구석에 있는 "데첸갈바 닷산(Dechengalba Datsan)">

 

<위 건물(데첸갈바 닷산)에서 예불을 드리는 신도 모습 2>

 


  간당사원을 1시간 정도 관람한 다음 몽골 민속공연장으로 발길을 돌렸다(17:00). 18시부터 공연이 시작되었으나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미리 표를 사고 앞에 줄을 서야하기 때문에 1시간 전에 온 것이었다. 우리보다 앞서 일본인 9명이 자리 잡고 있었고, 뒤에는 고양시에서 온 한국인과 현지인들이 줄을 섰다.

 

 공연 30분전에 입장을 시켰다. 제일 앞에는 자리 잡지 못했지만 무대 중앙에 앉을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무대 왼쪽에는 크고 기다란 나팔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북 등이 있었다. 드디어 민속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 뒤에서 사회자의 안내방송에 따라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몽골의 자연환경에 맞는 민속이었다. 독수리나 매와 같은 춤과 목동들이 말을 타고 가축을 모는 것 같은 춤이 있었다.

 

 노래는 주로 독창이 많았고 남녀가 같이 부른 것이 두 번 있었다. 모두 흥겨운 곡이었고 행진곡 같은 것도 있었다. 특이한 것은 몽골 서부에서 독수리와 매사냥을 하면서 부른다는 흐미였다. 흐미는 특별한 말이 없이 음의 높낮이로 “흐~~~어~~~”란 단어로만 노래하는 것이었다. 아주 낮은 저음이 나오다가 숨을 쉬지 않은 채 바로 고음이 나오는 것으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몽골 민속공연을 하는 모습>

 

  그러나 젊은 흐미 가수는 이러한 관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신의 노래를 흥겹게 불렀다. 아무런 가사가 없어도 듣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았으며, 연기가 끝났을 땐 조금 더 들고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젊은 가수는 흐미가 끝나자, 다른 민속공연에서 여러 가지 악기를 불고 있어 다양한 재주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시간 10분 정도의 민속공연이 끝나고, 일행은 뷔페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당히 큰 식당으로 먼저 자리를 정해주었다. 여기에는 각종 야채를 비롯해서 양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해산물 등 다양한 음식이 있었다. 생 돼지고기나 해산물은 한쪽 구석에서 철판에 구워주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