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술관/드레스덴 고전회화관

루카스 크라나흐

boriburuuu 2020. 12. 22. 16:00

프랑켄 지방의 크로나흐에서 태어났다. 초기의 크라나흐는 일브레히트 알트도르퍼, 볼프 후버 등과 이른바 도나우파의 일각을 형성하고, 독일의 산림 풍경을 신선하고 서정적으로 그렸으며, 또 동시에 그뤼네발트를 생각케 하는 표현주의적 색채가 농후하고 극적인 박력이 넘치는 작품을 남기고 있다. 1505년 비텐베르크에 이사한 그는 우미한 여성의 나체상과 신화화를 많이 그렸으며, 루터나 기타 저명인사의 초상화에도 걸작이 많고 마르틴 루터의 신학을 반영하는 루터란의 가르침 즉 율법과 복음에 대한 신학적 주제를 보여주는 그림도 그렸다. 1537~1544년에 걸쳐 그곳 시장을 지냈던 그는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으며,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을 열렬하게 지지하기도 하였고, 만년에 가서는 바이마르의 궁정화가로 지내다가 1553년 거기에서 운명하였다. 또 이름이 같은 그의 아들도 화가로서 부친의 후계자가 되어 활약하였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다> 독일이라 그런지 이 화가의 그림이 많이 보인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이브>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낙원>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삼손과 데릴라>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다윗과 밧세바>다. 다윗은 멀리서 발코니에서 밧세바를 지켜보고 있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천사들 사이의 고통받는 그리스도>다. 1540년.

루카스 크라나흐의 <감람산의 그리스도>이다. 이도 역시 화가들에 의해 많이 그려진 주제인데 잠들어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간절히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성 캐서린의 제단>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성 바르바라>다. 전설에 의하면 바르바라는 이교도인 디오스코루스의 딸로, 뛰어난 미모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청혼을 받자 그녀의 아버지는 이를 물리치고 세상의 오염을 우려해 그녀를 높은 탑안에 감금시켰다고 한다. 바르바라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사실을 알자 그녀의 아버지는 격분하여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고, 그녀는 피신하여 숨어지내면서 일꾼에게 그 은신처에 삼위 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창문을 달도록 하였다. 하지만 은신처가 발각되었고, 아버지가 도착하기 전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곧 붙잡혔다. 아버지에 의해 재판관에게 넘겨져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배교하라는 요구를 거부하여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그녀의 아버지는 직접 바르바라를 참수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번개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녀는 306년경에 순교한 것으로 여겨지며, 순교 장소는 이집트, 니코메디아, 헬리오폴리스, 토스카나, 로마 등 여러 곳으로 전해지나 확실한 것은 없다. 성녀 바르바나는 중세 시대에는 14명의 수호성인 중 하나로 매우 대중적인 성인이었으며, 번개나 광산과 포탄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이었다. 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번개를 맞아 죽음을 맞은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공경은 더욱 확산되어 후에 그녀는 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의 포병대 수호자로서 공경을 받았으며, 15∼16세기에는 플랑드르 작가들과 이탈리아의 많은 건축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성 캐서린>이다. 기독교의 전설적인 순교성녀로 중세이래 널리 추앙을 받았다. 전승하는바에 따르면 키프로스왕의 딸로서 로마황제 막스텐티스(재위 306~313)의 박해시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307~315)했다. 수도은자()로부터 세례를 받은후 꿈속에서 유아 그리스도와 혼약을 맺었다. 황제의 우상예배의 명을 거부하여 투옥되었으나 이윽고 황제의 면전에서 50인의 이교철학자를 논파했다. 또한 옥중을 방문한 황비 파우스티나와 장교 포르피리오스를 개종시켜서 양인은 참수형에 의한 순교를 했다고 한다. 재판 후 고문을 당하여 채찍을 맞고 유방을 잘리고 수레에 찢기는 등 모진 고통을 당하나 상처는 아물어지고 수레 바퀴는 천사의 검, 혹은 번갯불에 파괴되었다. 최후에 참형에 의하여 순교했고 유해는 천사가 시나이 산으로 옮겨 매장했다는 성인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베들레헴의 영아 학살>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성전에서 장사꾼들의 추방>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피그미들을 깨우고 내쫒는 헤라클레스>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잠자는 헤라클레스와 피그미들>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세 쌍의 연인>이다. 1537년

루카스 크라나흐의 <엘리아스와 바알의 사제들>이다. 1545

루카스 크라나흐의 <색슨 4세, 헨리 4세와 메클렌부르크의 캐서린의 초상화 >다.

루카스 크라나크의 <쟁반 위에 잘린 세례요한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살로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