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키아의 숙소는 아바노스 도예촌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집을 예쁘게 장식해 놓아 아침 먹기 전 사진을 찍었다.
숙소 여주인이 조식을 차려 주었는데 홈메이드라며 시금치를 넣은 듯한 빵을 줘서 잘 먹었다. 튀르키에에서는 거의 조식이 제공되어 외식을 할 필요를 거의 못느꼈던 것 같다.
먼저 데린구유를 방문했다. 지하에 굴을 파고 조성한 도시로 카파도키아 중심지에 30여개의 지하도시가 있고 전체로는 200여 개가 있아고 한다. 지하도시는 기원전 히타이트 시대부터 조성된 것으로 로마와 비잔틴 시대를 거치며 확장되었는데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6세기경 로마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곳을 은신처로 삼았던 기독교도들이 대표적이다.
지하 20층까지 있다는데 현재 지하 8층까지 개방되며 일반인들은 지하 4층까지 볼 수 있다. 먼저 가까운 지하 1층에는 외양간, 부엌 등이 위치해 있다.
그을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부엌이다.
유사시에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돌 문이 여러군데 있었다. 돌을 굴려 입구를 막는다.
지하 20층까지 연결되어 있는 환기 시설이다.
역시 또 하나의 문이다.
이 곳은 죄인들을 매달아 놓던 곳이라고 한다. 엄격한 규율이 없이는 좁은 곳에서 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는 것이다.
이 곳은 교회다. 종교 때문에 이곳을 은신처로 삼은 기독교인들은 무엇보다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인데 굴려 보려해도 꿈쩍을 안한다.
이런 공간이 한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을 것이다.
올리브나 포도주를 짜기 위한 것이었을 것 같다.
처음엔 식당인줄 알았는데 학교라고 한다.
몇 세기 동안 빛도 없는 이 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박해를 받지 않게 되었을 때도 눈, 팔 등이 기형이 되어 일반인들과 어울려 살 수 없었다고 한다. 수도원 등을 만들어 수도 생활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보니 상가 등이 상당히 정비된 모습이다.
앞에 교회 건물이 보여 찾아가 보았다.
정문인데 안을 개방하지는 않고 있다.
교회 건물과 종탑 등을 보고 돌아섰다.
우치히사르 성채다. 우치히사르 마을에 우뚝 솟아 있는 성채로 카파도키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한다. 성채라기보다 바위산이 더 정확한데 로마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으로 예전에는 성채와 마을을 연결히는 지하 터널도 있었다고 한다.
성채를 돌아가며 파 놓은 구멍은 비둘기를 키우던 둥지였는데 비둘기의 배설물을 모아 포도밭의 비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비둘기 알의 희자는 프레스코화를 그리는 주재료이기도 했으니 꼭 필요한 것이었다.
여기서도 버섯 바위를 볼 수 있다.
우치히사르에서 괴뢰메를 보러가는 길에 만난 괴뢰메 파노라마다. 잠깐 내려 사진을 찍으려는데 바람과 돌풍이 불어 모래가 머리 속에 박힐 정도였다.
얼른 풍경 사진만 찍고 차로 돌아왔다.
괴뢰메에 갔다. 10년전에는 입구까지 차가 들어갔던 것 같은데 멀리 차를 세우고 걸어 내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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