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미술관/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3

boriburuuu 2019. 7. 6. 23:58

얀 아셀렌의 <위협적인 백조>다. 1800년 왕립미술관에서 최초로 구입한 작품으로 미술관의 시초가 되었다. 위협하듯 펼친 날개, 갈라진 발톱, 굽은 목을 한 백조는 개의 공격으로부터 둥지를 보호하고 있는데 백조의 밑에 '위대한 퇴직자', 둥지의 알에는 '네덜란드', 개의 가까이에 '국가의 적'이라 써 있어 이 백조는 네덜란드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조한 데 비트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하튼 흰색과 회색을 섞은 스푸마토 기법으로 처리된 날개와 따뜻한 황금색이 물든 가슴 등 아셀렌의 탁월한 기법을 볼 수 있다.

 

찰스 뒤 자르댕의 <바울은  리스트라에서 불구자를 치료한다.>1663년
뒤자르댕은 이탈리아의 재능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큰 역사적 작품을 그렸다. 여기 사도 바울이 병자 무리 위에 높이 올라간다. 그가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불구가된 것을 치유할 때, 방관자들은 그를 이교도 신 수성 앞에 두었다. 뒤 자르댕은 예술을 극적인 장면으로 묘사했다.

수태고지를 하는 장면이다.

시민 민병대회관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집단 초상화들이다. 먼저 <알버트 배스 대위와 루카스 코닌 중위가 이끄는 암스테르담의 XVIII 지구의 장교와 다른 총잡이>이다.  1645년 고버트 플린크

<이삭의 축복 야곱> 고버트 플린크, c. 1638
성경은 야곱이 형인 에서인 척하면서 맹인 아버지를 속여 에서의 정당한 축복을 그에게 주었던 경위를 다시 말해준다. 동물 가죽 장갑을 끼고 에서의 상체를 흉내 내겠다는 생각은 침대 뒤에서 바라보는 어머니 레베카에게서 나왔다. 레베카는 야곱이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손과 목에 양털을 두르도록 한다. 눈이 먼 이삭은 장자인 에서로 알고 야곱에게 4가지 축복을 내린다. 나중에 돌아온 에서는 축복을 번복할 수 없어 부차적인 축복을 받았다. 플린크는 이 그림 기법과 서술 스타일을 렘브란트로부터 도출했는데, 그는 이 그림 기법을 훈련받았다.

<Roelof Bicker 선장> 반 데르 헬스트, c. 1640 - c. 1643
이 시민 경비 그림은 폭이 7.5 미터이고 Kloveniersdoelen의 큰 홀에 있는 벽 전체를 거의 채웠다. 반 데르 헬스트는 30명의 민병대를 정적인 줄로 정렬시키지 않고, 정적인 간격으로 앞쪽에 가장 가벼운 색의 옷을 배치했다. 화가는 그 무리의 맨 왼쪽에 자신을 포함시켰다.

1638년 9월 프랑스의 여왕 미망인 마리아 데 메디치의 영수증을 받을 준비가 된 코넬리스 비커 대위와 반의 프레드릭 중위가 이끄는 암스테르담의 XIX 지구의 장교들과 다른 총잡이들, 요아킴 폰 샌드라트(I), 1640

<페리와 함께 있는 강 풍경> 살로몬 반 루이즈다엘, 1649년
말 4마리, 개 5마리, 소 2마리, 그리고 11명이 탑승한 이 가느다란 여객선은 짐을 많이 실은 것으로 보인다. 멀리 있는 배들도 승객들로 붐빈다. 살로몬 반 루이즈다엘은 평평하고 물기가 많은 네덜란드 풍경의 통역사였다. 여기서 그는 시도되고 시험된 구성 공식을 사용했다 오른쪽에는 높은 나무들이 늘어선 둑이 있고, 왼쪽에는 수평선까지 뻗어 있는 강물이 있다.

<물방앗간>이다, 메인더 홉베마, c. 1664
홉베마는 제이콥 반 루이즈다엘로부터 풍경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들의 작품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지만, 홉베마의 그림은 더 친근하고 가벼운 인상을 준다. 어린 나무 꼭대기가 공중으로 높이 뻗어 있고, 잎이 햇빛에 반짝인다. 네덜란드 동부에 홉베마가 그린 물레방아가 이 그림의 주제를 제공했다.

야콥 반 루이스달의 <비지크 비즈 두르스테데 인근의 풍차>다. c. 1668 - c. 1670
풍차는 어두운 비구름을 물리치고 위크 비즈 두르스테데의 성과 교회를 무색하게 하면서 위엄 있게 솟아오른다. 렉 강이 전경에 흐른다. 이 그림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당연히 그렇다. 이 인상적인 구성에서 루이즈다엘은 저지대, 물, 넓은 하늘 등 전형적인 네덜란드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 똑같이 특징적인 네덜란드 수차에 수렴하도록 조종했다.

루벤스의 <의심하는 도마>다. 앤트워프의 시장을 지낸 귀족이자 인문학자였던 니콜라 록스(Nicolas Rockox)는 1613-5년 그의 사후, 프란체스코 성당에 마련될 자신의 무덤에 놓기 위해 세폭 제단화(triptych)를 루벤스에게 주문하였다. 중앙 패널에는 [의심하는 도마]가, 좌우 패널에는 록스와 그의 부인의 초상화가 그려졌다. 그리스도는 왼쪽 옆구리에 상처가 났지만, 제자들의 시선은 손바닥의 상처에 머문다. 그리스도를 둘러싼 세 명의 제자 중, 상처에 손을 넣는 이가 없으므로 누가 도마인지도 확실치 않지만 가장 주의 깊게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는 가운데 인물이 도마로 여겨진다. 루벤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도상의 전통을 따르기 보다는 성서원문에 충실하게 그리스도와 도마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Dirck Jacobsz Rosecrans 선장과 Pauw 중위>이다, Cornelis Ketel, 1588
여기 암스테르담 총잡이의 13명의 자의식있는 장교가 있는데 이 도시의 무장 자경단이다.1580년부터 오렌지의 윌리엄의 주도로 오래된 총잡이 길드는 군사적으로 조직된 자경단으로 변형되었다. 그 장교들은 좋은 시민권에서 모집되었다.,오른쪽에 무장한 전투견이 있는데 우스꽝스러운 대조는 상사의 다리에 튀어 오르는 듯한 중앙의 강아지의 모습이다.

<윌리엄 1세의 초상화, 오렌지 왕자> 아드리아엔 토마스. 키, c. 1579
필립 2세의 스페인 통치에 반항한 귀족들 중에서 오렌지의 윌리엄은 네덜란드 반란군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고, 더 큰 독립을 위해 노력하며 종교의 자유를 옹호했다. 1580년 필립 2세는 그의 머리에 가격을 매겼고, 4년 후 암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