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술관/슈테델 미술관(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슈데텔 미술관

boriburuuu 2019. 7. 19. 00:54

 슈테델 미술관은 은행가 슈테델이 소장 작품을 기증하여 1815년에 만들어졌던 세계적인 미술관이다. 당시는 700점 정도로 시작했지만 1998년 재정비를 통해 지금은 14세기부터 현대미술까지 10만 여점 정도의 소장품을 자랑하고 있다. 시간이 좀 남아 외부부터 둘러보았다.   에쁘게 손질한 가로수길이다. 

 

 

 

 

 

 

 

얀 반 아이크의 <루까 마돈나 1437-38>다. 선명한 색상, 세밀한 형체, 상징적 배치 등 명작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춘 작품으로 부르군디 지역을 다스리는 선량공 필립의 후원으로 그려졌다. 예수에게 수유하는 장면은 14세기 이탈리아 화단에서 간혹 사용하던 것을 북유럽 화단에서 적극 도입한 것이다. 이는 마리아를 만인의 어머니로 이미지화한 것이다. 빨간 옷자락과 하얀 피부 등 아름다운 그림이다.

루까 조르다노의 그림이다.

마시모 스탠지오네의 <수산나와 장로들>이다.  1630-35년.  불안한 표정을 지은 젊은 수잔나는 성폭행을 피하려 한다. 구약전서의 이 장면은 정원에서 목욕을 하는 동안 매복을 치려는 두 명의 오래된 마을 판사를 보여준다. 그녀가 그들을 불순종한다면, 그들은 그녀를 죽음으로 처벌하는 간음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가득찬 그녀는 여전히 거절하고 보상을 받고 있다: 신성한 영감 덕분에 젊은 선지자 다니엘은 그녀의 결백을 인식하고 진짜 범인을 유죄로 판결한다. 심리적 기교와 함께, 작가는 기념비적인 인물, 신체 언어, 얼굴 표정과 제스처에 내러티브를 집중. 수잔나의 깨끗한 몸은 옷을 입은 노인의 거친 특징과 거친 피부와 대조된다. 그녀의 벌거 벗은 몸은 무죄와 무방비함을 나타낸다.

귀도 레니의 <기둥의 그리스도>다. 1603년.  그리스도는 머리를 내리고 채찍질하는 포스트 옆에 서 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났고, 몸의 모든 근육을 모델링하는 빛과 그늘이 있다. 그의 운명에 사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클로즈업 뷰를 제시함으로써 작가는 관객이 처형인의 졸개 자세를 취하게 한다. 귀도 레니는  카라바지오의 예술에 대한 레니의 최근 연구를 보여준다. 젊은 화가는 인물의 직접적인 존재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의 그림에 집중하는 어떤 과감한 요소를 제거한다. 작가는 인물을 아름답게 그리는 화가임에 틀림없다.

귀도 레니의 <성모의 가정>이다.  1596-97년.  구리에 그려진 '버진의 가정'은 볼로냐와 로마에서 바로크 회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귀도 레니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이며, 현재까지도 이탈리아 바로크의 이미지를 계속 형성하고 있다. 카라치는 마리아의 극적인 승천을 일반적으로 높은 르네상스 파토스와 함께 묘사한 반면, 레니는 이 사건을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번역했으며, 구체의 음악과 시적 조화로 가득찬 부드러운 위쪽 장면을 연출했다.

니콜라스 푸생의 <피라모스와 티스베>다.  바빌로니아에서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청년은 피라모스였고 아름다운 처녀는 티스베였다. 두 사람의 양친은 이웃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두 젊은이는 자주 내왕하다가 사랑하게 되어 결혼하고 싶어했으나 부모들이 반대해서 운명을 한탄하던 끝에 마침내 한 계책을 꾸몄다. 다음날 밤 감시의 눈을 피해 집을 나와서 들판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마을의 경계선 너머에 있는 니노스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영묘가 있는 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간 사람이 나중 오는 사람을 나무 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 나무는 흰 뽕나무였고 시원한 샘 곁에 있었다. 티스베가 기다리는데 먹이를 먹어 입에 피가 묻은 사자가 나타나 도망치면서 베일을 떨어뜨렸고 그것을 본 피라모스는 그녀가 죽은줄 알고 뽕나무 밑에서  자결하고 나중에 티스베도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전판이다. 피에 물든 뽕나무는 그 뒤부터 빨간 오디 열매를 맺었다고 한다.

클로드 로랭의 <놀리메탄게레의 모습과 풍경>이다.

메오 다 시에나 및 워크샵의 <제단 재테이블의 그리스도 엔보디드, , 마돈나와 아이와 함께 양쪽에 그려진 십이사도다. 1330-1333년. 

벨라스케스의 <보르자의 카디날 가스퍼의 초상>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어린 세례요한과 함께 있는 마돈나와 그리스도>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님프로 분한 시모네타의 초상>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에게 평생 영감을 주었던 그녀는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뿐 아니라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힌다. 그녀는 제노바의 귀족으로 태어나 피렌체의 권력가인 메디치 집안의 베스푸치에게 14세에 시집와서 많은 사람들과 화가들에게 사랑 받았던 여인이다. 보티첼리의 대표작인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벨라> 등 다수의 작품의 모델이 되었다.

얀 밥티스트 페터의 <목가적인 축제>다.

얀 안토니 와토의 <사이테라에 대한 승선>이다. 1709-10년.  프랑스 로코코의 '페테스 갈란테스'의 화가인 와토는 이 작품을 그렸다. 에칭은 '일 드 시테르'(시테라 섬)로 현대 타이틀을 기록한다. 그리스 신화의 사랑의 섬은 수많은 큐피드로 채워진 배경에서 볼 수 있다. 물 가에서 축제 복장을 한 젊은 신사와 신사들이 모여 곤돌라에 탑승하고 사랑의 섬으로 향했다. 빛나는 색상은 베네치아 회화가 와토에 미친 영향을 증언한다.

라파엘 산치오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초상>이다. 1512년에 라파엘로가 완성한 교황의 초상은 흰 수염이 가득하며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이다. 라파엘로는 교황의 권위가 무너지는 역사적인 상황에서 로마를 구하기 위한 율리우스 2세의 야심 찬 모습을 그렸다. 교황은 기독교에 대항하는 르네상스의 기운을 야만인으로 규정했다. 그러한 기독교를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불순한 세력을 제거하는 일은 하나님이 준 명령이고 의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정의를 지키는 수호자라는 단호한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율리우스 2세는 갑옷을 손수 입고 선봉에 서서 군대를 통솔했으며 역대 교황 가운데 전쟁터에서 무용으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황을 ‘무서운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쟁과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교황은 1513년에 세상을 하직한다.

로소 피오렌티노의 <어린 세레요한과 마돈나와 아기 예수>다.

피에트르 켐페너의 <숙녀의 초상>이다.

자코보 틴토레토의 <바위를 때리는 모세>다.

팔마 일 베키오의 <두 님프들>이다. 1520-30년.

조반니 벨리니의 <세레 요한과 엘리자벳과 함께 하는 성모자>다. 1500년.

티치아노의 <젊은 남자의 초상>이다. 1510년.  어린 티티안은 어린 시절의 초상화를 미니어처처럼 미묘하게 그렸을 때  조르지오네의 예술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매력은 피사체의 부드러운 우울한 표정과 절묘한 색감에 있다. 16세기 초 베니스에는 바르톨로메오 베네토의 '플로라'에서 반사된 것처럼 번성하는 예의 문화가 있었지만, 동종화적인 자연의 아이템을 수집하는 것도 유행이었다. 알토벨로 멜로니의 안드로기누스 '나르시수스'와 티티안의 초상화가 모두 그려진 것은 이 고객들을 위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폼페오 기롤라모 바토니의 <예술의 알레고리>다.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크로타 가족의 수호 성인>이다.  1750년.  그림은 크로타 가문의 베네치아 궁전에  있었고 베르가모에서 온 패트리샤 왕조의 역사에서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주권자의 딸 그라타가 순교한  세인트 알렉산더의 머리를 가져왔을 때, 달콤한 냄새가 나는 꽃이 싹트고 있어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다. 티에폴로는 화려한 건축 환경에서 극적인 제스처와 빛나는 색상으로 사건을 연극처럼 묘사했다.

 

카날레토의 <베니스의 바치노 디 산 마르코에서 본 풍경>이다. 1730년 – 1740년  카닐레토는 고향 도시 베니스의 이미지를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은 도제의 궁전 앞의 넓은 물과 대운하의 입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람객의 시선은 곤돌라와 더 큰 배를 타고 물 건너편에 있으며, 왼쪽에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트의 돔과 오른쪽에 있는 세인트 마크의 캠핑이 지배하는 중간 거리의 독특한 도시 실루엣으로 이동한다. 특이한 타원형 형식은 웅장한 연극 풍경의 창문을 통해 보는 인상을 강화한다.

알베르트 뒤러의 <머리를 길게 내려뜨린 젊은 여인의 초상>이다. 뒤러는 자화상을 정망 멋지게 그린 화가인데 사실 다른 작품들은 글쎄.

알베르트 뒤러의 <더러운 욥>이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비너스>다. 1532년. 루카스 크라나흐는 작센 선제후의 궁정 화가로서 그의 활동 기간 대부분을 독일 북부의 비텐베르크에 있는 인기 있는 공방을 운영하며 보냈다. 그는 부를 쌓았고, 비텐베르크 사교계의 귀중한 일원이었으며, 학자, 미술가, 정치가로서 존경받았다. 크라나흐의 공방에서 배출된 그림이 천여 점 이상 남아 있는데, 실제 제작된 작품의 수는 몇 배는 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라나흐는 여러 주제와 구도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특징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비너스와 큐피드, 아담과 이브의 이미지가 매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화려한 풍경화에 뛰어났다. 완만한 언덕과 유리처럼 매끄러운 호수, 바위산을 배경으로 비너스와 큐피드, 아담과 이브 등의 인물상을 전면에 배치했다

루카스 크라나크의 <십자가형>이다. 1508-1510년. 

루카스 크라나흐의 <헤롯의 축제>이다. 1533년.

 

'독일의 미술관 > 슈테델 미술관(프랑크푸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데텔 미술관 6  (0) 2020.12.23
슈데텔 미술관 5  (0) 2020.12.23
슈데텔 뮤지엄 4  (0) 2020.12.23
슈데텔 뮤지엄3  (0) 2020.12.23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뮤지엄 2  (0) 2019.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