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심은 신시가지의 중심이며 상업과 쇼핑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광장으로 과거에는 정치적인 모임과 시위가 벌어졌던 곳이다. 아래는 광장 중앙에 있는 12미터의 공화국 기념비인데 1928년 이탈리아 건축가 피에트로 카노니카가 만든 것으로 튀르키에의 독립 전쟁과 공화국 탄생을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광장 끝에 우리 숙소의 맞은편에 있던 모스크다.
우리는 유럽 구시가지로 가기 위해 탁심 터널에서 버스를 타고 카라쿄이에 내려 트램 T1을 타고 이동했는데 이 날 트램 안에서 한 가족을 만났는데 동포인줄 알고 내심 반가웠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북한 사람들이었다. 해외에서도 한번도 접하지 못해 신기했다.
히포드럼으로 갔다. 제일 먼저 독일정자가 보인다. 카이저 빌헬름 샘이다. 샘의 정자는 1901년 독일 황제인 빌헬름 2세가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맹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압뒬 하마드 2세에게 선물한 것이다. 수도꼭지에서는 지금도 물이 나오고 있다.
천장 내부는 황금색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야 소피아를 영상으로 구현했다고 해서 어제 줄을 섰었는데 뮤지엄 카드는 안된다며 따로 티켓을 끊으라고 해서 못갔던 곳이다. 추위에 떨면서 기다렸는데. 뮤지엄 패스 홈페이지에서는 가능하다고 했는데 왜 안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블루 모스크)에 갔다. 투르키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미로 '자미'는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란 뜻이다. 오스만 14대 술탄 아르메트 1세가 지은 것으로 1609-1616년 지어졌다. 유독 종교적 신념이 철저했던 술탄은 기공식에서 직접 따을 파고 흙을 날랐다고 한다. 아야 소피아와 쌍둥이처럼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술탄이 아야소피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모스크를 원해서란다.
내부에는 260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있고 이즈미크에서 생산된 11,000장의 푸른색 타일이 창에서 들어 오는 빛과 어우러져 신비한 느낌을 준다.
벽의 타일 위의 문구들은 코란의 구절들인데 오스만 제국 최고의 서예가인 세이드 카심 구바라의 글씨다.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설치된 미흐랍에는 메키의 카바 모스크에서 가져 온 성스러운 검은 돌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기둥의 두께를 보기 위해 함께 사진을 찍어 본다. 4 개의 기둥 만으로 돔을 지탱하는 것은 엄청 어려운 기숭이었을 것이다.
중간 쯤에 푸른 이즈니크 타일들이 있는데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아쉽게도 원본 이즈니크 타일은 대부분 박물관에 있고 이것은 복제품들이란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박물관에 갔는데 타일관은 계속 공사중으로 문을 닫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건물은 높이 43미터, 직경 27.5미터의 중앙 돔을 4개의 중간 돔과 30개의 작은 돔들이 받치고 있으며 6개의 미나레가 서 있다. 미나레는 두가지 역할을 하는데 하루 5번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소리치는 것과 자미의 위치를 쉽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우스만 제국 시절에는 미나레의 갯수가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최고의 자미를 짓고 싶었던 술탄은 당시 2-4개의 미나레가 일반적이었는데 당시 이슬람의 총 본산인 메카의 미나레와 마찬가지로 6개를 세웠던 것이다. 문제가 되자 황금(알투)으로 지으라 한 것을 건축가가 잘못 듣고 6개(알투)를 세웠다고 변명했다. 건축가 마흐메트 아아는 미마르 시난의 수제자란다. 아흐메트 1세는 메카의 모스크에 일곱번째 미나레를 세워 주고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히포드럼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기다란 광장은 지금은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비잔틴 세대 전차 경주가 벌어지던 경기장이었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나 개선 장군의 환영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치러졌고 532년 일어난 니카의 반란도 이곳에서 3만명의 의생자를 내면서 진압되었단다. 경기장은 세로 500미터, 가로 117미터의 규모였는데 지금은 세 개의 기둥만 서 있다.
먼저 이집트 오벨리스크인데 기원전 16세기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시리아 정복을 위해 유프라테스강을 넘은 기념으로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에 세운 것 중 하나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는 세게 신화 속릐 우주나무와 동일한 역할을 하여 세계의 중심을 상징한다. 비잔틴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가져 왔고 390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현재 자리에 세웠다. 원래 높이는 60미터, 무게는 800톤의 규모였는데 셋으로 잘라 윗부분만 가져왔다. 지금 높이는 19.8미터다.
기단의 조각에서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모습과 무릎을 꿇은 이민족에게서 충성 서약을 받는 황제의 가족, 오벨리스크를 세운 경위를 적은 비문 등이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
가운데 서 있는 뱀 기둥이다.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의 델피의 아폴론 신전 앞에 잇던 것을 가져온 것인데 원래는 기원전 478년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의 승전탑이었다고 한다(페르시아 병사들의 방패 등을 녹여서 만든 것이다). 기둥의 밑부분에 31개 도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뱀 기둥은 높이가 8미터에 달했지만 머리와 상단 부분이 훼손되어 지금은 5미터다. 세 개의 뱀 머리중 하나는 이스탄불 고곡학 박물관, 하나는 대영 박물관에 있고 하나는 없어졌다.
마지막 기둥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인 4세기건립된 것을 10세기 경 콘스탄티누스 7세가 대대적으로 수리한 것이다. 32미터 높이의 오벨리스크는 벽돌을 쌓고 외벽을 청동판으로 씌운 아름다운 기둥이었으나 제4차 십자군의 침입 때 약탈로 사라졌다.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영묘에 가 보았다. 오스만의 자미는 주변에 신학교, 빈민 구호소, 하맘, 병원, 무덤 등 부속 시설이 있었고 블루 모스크 북쪽에도 자미를 지은 아흐메트 1세의 영묘가 있다.
천장과 벽의 세밀한 문양과 타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 창문 등 예술적 가치가 높다.
아흐메트 1세의 묘다. 13세에 술탄에 올라 26세에 자미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만 자미 완공 후 1년 뒤에 돌연 사망했다. 그의 묘와 함께 일가족의 묘 30기가 모셔져 있다.
영묘 바로 옆에 소 박물관을 꾸며 놓았다. 영어로 지원되지 않아 내용은 잘 모르지만 켈리그라피 서예 작품과 성자들이 사용했던 물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트램길을 지나 점점 구시가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술탄 마흐무드 2세의 무덤이 보였다. 1800년대 초에 조성된 무덤군으로 개혁 군주였던 술탄 마흐무드 2세의 무덤이 있다.당당한 돔이 인상적인 이 무덤은 아르메니아 기술자가 건설햇으며 3명의 술탄(마흐무드 2세, 압뒬 아지즈, 압뒬 하미드 2세)과 가족들의 묘가 있다.
경내에는 수많은 묘석이 있었는데 제국의 고관대작솨 작가 등 사회적 명망가의 무덤들이다. 튀르키에인들은 술탄처럼 중요한 사람의 옆에 묻히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이런 공동 묘지가 조성된 것이라 한다.
각 무덤은 머리와 발치에 2개의 묘석이 있고 비석에는 코란이나 시구절을 적어 놓았다. 이슬람의 무덤은 머리를 항상 메카 쪽으로 한다고 한다. 묘석 위에 터번이 조각되어 있으면 이맘이나 종교 지도자의 무덤이고 페즈(펠트모자)는 고위관리나 장군의 무덤이란다.
마흐무드 2세의 묘에는 페즈가 놓여져 있네.
이 독특한 무덤은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다.
건너편에 있는 이 건물들은 신학교 건물들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쳄베클리타쉬가 보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세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 기념으로 330년에 세운 것이다. 무너질까봐 철 구조물로 받친 모습이지만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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