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튀르키예 서부 성지 25년

제 15일 톱카프 궁전 탐방

boriburuuu 2025. 5. 13. 17:56

메흐메트 2세 시기인 1478년에 세워져 1856년, 압뒬메지트 1세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이궁하기까지 약 400여 년간 오스만 제국의 정궁이자 디완 회의의 의사당이었으며 제국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고등교육기관이었다. 또한 궁전 제1정원에는 조폐소(Darphane)가 있어서 제국의 화폐를 찍어내기도 했으며, 재무부 건물에는 보물관이 있어 황실의 보물과 기록을 보존했다. 이후 1922년에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수립된 튀르키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4년 4월 3일에 톱카프 궁전을 박물관으로 공개해 오늘날에 이른다.
전체 부지면적은 약 70만㎡[10]로 도중에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졌지만 오스만 제국 시기에 세워진 각종 모스크, 학교, 목욕탕, 상가, 대상들의 숙소 등의 공공건축에 비하면 정말로 소박한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유럽 각국의 궁전들과 비교해 보아도 전성기 오스만 제국의 위용에 비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작고 단촐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톱카프 궁전이 이렇게 소박한 이유는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이 모두 작용했다. 종교적으로 볼때, 이슬람의 관점에서 과시적이고 지나치게 거대한 건물은 오만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파디샤가 마드라사나 모스크, 다리 등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은 존경받을 일이나 사치스런 건물을 짓는 건 쓸모없고 거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전성기 시절의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는 그 국력에 비해서 소박한 궁전에 거주했다. 그런 오스만 제국도 서구화의 물결이 몰아치던 18세기, 19세기 들어서는 유럽을 따라 유럽식으로 궁궐을 화려하게 증축하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이 시기의 오스만 제국은 이미 유럽에게 경제적으로 침탈당하고 망해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건물을 원하는만큼 거대하게 지을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현재의 톱카프 궁전은 전성기 오스만의 국력에 비해서는 매우 소박한 편으로 남게 되었다.

황제의 문은 톱카프 궁전의 제1중정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1478년에 건설됐고 19세기에 대리석으로 덮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중앙 아치는 높은 돔형 통로로 이루어져 있고 금박을 입힌 이슬람 서예로 정교하게 장식했다. 메흐메트 2세 압뒬아지즈 황제의 '투그라' 즉 이름이 여기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180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이 황제의 문 위에 목조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상속인 없이 궁전 안에서 죽은 황실 구성원들의 재산을 대신 맡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했고, 황실 재무부가 사람들에게서 보물을 받고 내주는 창고 역할도 했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하렘의 여인들이 나와서 밖을 바라보는 전망대로도 사용됐다고도 한다.

황제의 문을 지나면 바로 첫 번째 안뜰인 '제1중정'이 나온다. 이 제1중정은 궁전의 모든 안뜰들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안뜰이다. 사실상 황궁의 외부구역이나 다름없는 구역으로,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신하들이 항상 북적북적거리는 활기찬 공간이었다. 예니체리들을 이 곳에서 사열하곤 했기에 '예니체리 마당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예니체리들의 주거지와 훈련장, 성 이리니 성당 제국 조폐소, 병원, 황실이 사용할 일상용구들을 제조하는 공방 등이 들어서 있었다. 

제2의 문인 평화의 문이다. 

제2중정은 평화의 문을 통해 입장하며, 이곳부터는 평민들의 출입이 금지된다.
평화의 문은 톱카프 궁전의 상징이기도 한데, 메흐메트 2세가 문을 세우고, 쉴레이만 대제가 두 개의 탑을 세워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사신이나 외국에서 온 손님이나 국내 귀빈이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는데, 그때까지 이 탑에 마련된 응접실에서 대기했었다. 한편 이곳에는 제2중정 마당에서 처형된 죄인의 목을 걸기도 했으며, 이 문 안쪽에는 사형집행인이 칼에 묻은 피를 씻었다는 우물이 남아있다. 제2중정은 메흐메트 2세 통치기인 1465년에 만들어졌고 쉴레이만 대제 시기에 현재 모습으로 완성됐다

 

황궁의 주방(Saray Mutfakları)은 15세기 궁전이 처음 지어질 때 에디르네의 궁정부엌을 본떠서 함께 지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1574년 화재를 전설적인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리모델링한 것으로 20개의 넓은 2열의 굴뚝들이 늘어선 거대한 건물이다. 주방 건물은 제2중정과 마르마라 해 사이에 끼어있는데 황실주방, 여성 숙소, 궁전 외부서비스 구역, 제과 주방, 유제품 제조장, 음료 주방, 창고 및 요리사 숙소 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주방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는 하루에 2만 명이나 되는 궁정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음식들을 만들 수 있었으며, 크게 10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각각 셰르베트(여름에 시원하게 마시는 튀르키예의 전통 음료수), , 헬와(밀가루와 우유, 버터, 설탕으로 만드는 튀르키예의 전통과자), 고기요리, 채소요리 등등 전문적인 요리사들이 각자 담당한 요리들을 만들었다. 튀르키예 요리의 다양화에 크게 기여했는데, 이유인즉 황제에게 똑같은 밥을 먹이면 손모가지가 날아가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때문에 요리사들은 정말로 창의력을 총동원해 온갖 요리들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지금은 도자기와 식기 등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었는데 그 수준이 가히 세계적이다. 

주방 건물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도자기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은 1400년대 중반부터 중국 도자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이 500년 동안 모은 중국 도자기 컬렉션이 그대로 보관해놨는데 그 수가 무려 10,700점에 달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도자기 컬렉션들 중 하나다. 이마저도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거라서 18세기에는 16,566점의 도자기들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파디샤는 이 도자기들을 황족들이나 고관들에게 선물로 내리곤 했다.

 

정의의 탑 역시 유명하다. 2층 건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톱카프 궁전에서도 높은 건물로, 보스포루스 해협에서도 보일 정도로 높다란 랜드마크다. 메흐메트 2세가 처음 지었는데 쉴레이만 1세가 개조했고 마흐무트 2세가 오스만 제국의 기상을 알린다는 의미로 위에 횃불을 추가했다. 사형 집행 당시 황제가 올라 윤허 여부를 알렸다고도 한다. 제국 의회 건물에 바로 붙어 있으며 궁궐 내에서 집행된 모든 처형, 처벌들은 이 사진이 찍힌 제2중정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황제는 저 탑 위에 올라가서 시행유무를 전달하고 집행을 지켜보았는데, 튀르키예 드라마 위대한 세기를 보면 꽤 자주 볼 수 있다.

주방을 멀리서 본 모습이다. 

이 곳에는 오스만 제국의 대재상과 대신들이 국정회의 디완을 주관하던 제국의회 건물이 있다. 지복의 문 옆 안뜰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한 건물이다. 주 회의실은 널찍한 돔형 건물로 '돔 아래'를 의미하는 'Kubbealtı'라고 부른다. 메흐메트 2세가 처음 지었고 현재 건물은 쉴레이만 대제가 완공했는데 이후 여러 차례 복원을 거쳤다. 특히 18세기에 걸친 복원 작업으로 현재의 로코코풍이 더해졌다. 건물에는 반암과 대리석 기둥으로 만든 입구가 여럿 있고 내부에는 금으로 장식한 화려한 녹빛, 황금빛, 백색 돔형 홀 3개가 있다. 내부는 로코코풍의 황금빛 벽화가 그려져 있어 매우 호화롭다.

황실 보물고도 여기에 있다. 지금은 무기와 갑옷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원래는 나라의 보물창고였다. 파디샤가 보물을 하사할 때 여기에서 보물들을 꺼내서 썼고 예니체리들은 이 창고에서 임금을 받았다. 막대한 양의 보물이 여기에 보관되어 있었기에 황궁에서도 가장 보안이 삼엄한 공간들 중 하나였다. 튀르키예 정부는 오스만 제국이 멸망했을 당시 보물고에 남아있던 무기들을 모아 컬렉션을 만들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이슬람 무기 컬렉션들 중 하나다. 무기들의 제작 연대도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1300년에 걸친 엄청난 역사를 자랑한다.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에서 만든 것이지만 외국에서 약탈해오거나 선물받은 것들도 많다.

지복의 문이다. 지복의 문은 메흐메트 2세 시절에 처음 만들어져 1774년에 로코코 스타일로 재단장했다. 평화의 문에 비해서 인지도는 낮지만 그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문이었는데 즉위식, 축제 등 중요한 행사가 바로 이 문 앞에서 거행됐고 파디샤의 장례식도 여기서 치러졌다. 문 양쪽에는 하렘 수석 환관들의 처소가 있어서 제3중정으로 출입을 통제했다. 이곳은 황제 및 황제의 남자친척들만 통과할 수 있었으며, 내부에는 황제의 알현실, 튤립 시대의 파디샤 아흐메트 3세가 세운 도서관, 역대 황제들이 거주했던 공간, 황제 전용 모스크 등이 위치해 있었다. 그야말로 궁전의 심장. 제2중정까지는 외정이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지극히 비밀스러운 내정이었다.
제3중정의 가장 중요한 공간은 바로 청원실이다. 지복의 문 바로 뒤에 있는데 처마가 달린 거대한 지붕을 지탱하는 22개의 열주로 둘러싸인 정사각형의 오스만식 정자다. 건물은 15세기에 지어졌다. 천장은 군청색으로 칠했고 금빛 별들을 박아 그려넣었다. 방에는 귀중한 카펫과 베개들로 장식했다. 현재의 알현실 건물은 185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압뒬메지트 1세가 재건한 것이다.

알현실 뒤쪽에는 친위병들의 숙소가 있는데 지금은 황제가 입었던 옷들을 전시하고 있다. 파디샤들이 입었던 카프탄 등을 포함해 무려 2,500여 점의 옷들을 소장하고 있고 360여 개의 도자기도 있다. 이 숙소는 무라트 4세가 1635년에 처음 지었고 18세기 초에 아흐메트 3세가 재단장해서 14개의 기둥들이 세워진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 숙소에서 북서쪽으로 약간 걷다보면 황실 보물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는 정복자의 정자가 있다.

'정복자의 정자'는 1460년 톱카프 궁전이 처음으로 지어졌을 때 함께 지어진 건물로 궁전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제3중정 바로 옆에 지어진 2층짜리 건물로 1층은 업무용이고 2층은 4개의 방과 더블 아치가 있는 로지아가 있다. 모든 방은 제3중정 쪽으로 입구가 뚫려있어서 제3중정쪽으로 트인 회랑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원래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공물들을 보관하는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4개의 방에다가 오스만 시대의 보물들을 전시하고 보물관 1, 2, 3, 4로 쓰고 있다.
제2중정에도 무기 전시관이 있지만 진짜 보물 전시관은 여기다. 수많은 예술품, 보석, 세공품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튀르키예 내에서도 최대 규모의 소장 컬렉션들 중 하나로 꼽힌다. 무스타파 3세가 직접 있었던 갑옷과 사용했던 무기들, 그 유명한 '톱카프의 단검', 아흐메트 1세의 옥좌, 니콜라이 2세가 선물한 옥 그릇, 스푼메이커의 다이아몬드, 48kg에 달하는 거대한 순금 촛대 2개, 줄마노로 장식된 거대한 왕좌, 나디르 샤가 인도의 무굴 제국에서 약탈해 선물한 황금 옥좌 등 수없이 많은 보물들이 여기에 쌓여있다.

금제 컵세트다. 

무라트 3세의 왕좌다. 

큼직한 에메랄드 3알이 박힌 우아한 곡선형의 단검. 1746년 오스만 제국의 마흐무트 1세 페르시아 나디르 샤에게 선물하기 위해 제작한 단검이다. 원래는 나디르 샤에게 선물로 전달하기 위해 국경지대까지 운반되고 있었는데, 운반 도중 나디르 샤가 암살당해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오스만 사절단은 단검을 갖고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현재는 톱카프 궁전의 보물고에서 보관 중이다. 단검의 칼집은 수많은 작은 로즈컷 다이아몬드들과 과일로 가득 찬 바구니가 그려진 다색 에나멜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 검의 칼자루에는 3알의 거대한 콜롬비아 에메랄드가 박혀있는 것이 특징. 특히 칼자루 끝부분에 달린 에메랄드 뚜껑을 열면 안에 영국제 시계가 들어있다. 오스만 제국에서 단검은 단순한 악세사리가 아니라 군사적, 종교적 상징으로서의 의미도 겸하고 있었다. 권력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스만 궁정에서는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장식용으로 단검을 가지고 다니곤 했다. 이슬람에서 녹색은 전통적으로 선지자 무함마드의 색이자 천국의 색깔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값비싼 녹색 에메랄드는 단검에 신성함의 의미를 더해준다. 특히 이 단검에 박힌 거대한 사이즈의 에메랄드는 저 남미의 콜롬비아에서 수입해온 것인데, 먼 곳에서 건너온 보석인만큼 당시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게 높았을 것이다. 근현대에는 1964년 영화 '톱카피'에서 주인공이 탐내는 아름다운 보물로 등장하면서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

스푼메이커의 다이아몬드'. 황실 보물고에 소장된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톱카프 궁전에 보관된 보물들 중 가장 귀중한 보물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세계에서 4번째로 거대한 다이아몬드다.
이 거대한 다이아몬드는 2열의 브릴리언트컷 다이아몬드 49개가 박힌 은제 틀 안에 들어있다. 가이드북에는 이런 모습이 '밤하늘 별들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닮았다고 설명해놨다. 마흐무트 2세가 이런 디자인을 의뢰했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이 다이아몬드가 정확히 언제 톱카프 궁전에 들어왔는지는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다.

나디르 샤가 오스만 제국에 선물한 황금 왕좌. 놀랍게도 원래는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의 왕좌였다. 나디르 샤는 1739년 무굴 제국의 수도 델리를 함락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재화를 뜯어갔는데 이때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아흐메트 3세 도서관'은 알현실 바로 뒤에 있다. 이 도서관은 아흐메트 3세가 왕실 관리들의 업무용으로 1719년에 지은 건물이다. 전형적인 18세기 오스만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돔형의 중앙 홀과 4개의 직사각형 방이 붙어있는 그리스 십자가 형태다. 십자가의 팔들 중의 하나는 양쪽에 계단을 만들어 들어갈 수 있는 현관으로 만들었는데 현관의 중앙 아치 아래에는 양쪽에 벽감이 있는 정교한 음수대가 있다. 도서관의 장서들은 낮은 지하에 있는데, 귀중한 장서들을 습기와 온도 변화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설계한 것이다. 내부에는 파디샤의 개인용 독서대도 있다.
이 도서관에는 신학, 샤리아 등에 관련된 책들이 주류였다. 무려 3,500여 권 이상의 책들이 아랍어, 페르시아어, 튀르키예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여서 보관되어 있었다고. 일부는 진주층과 상아로 안감을 넣어서 책이라기보다는 예술작품에 더 가까울 정도로 화려하다. 현재는 도서관 옆의 건물을 새로 단장하고 컬렉션들을 추가해서 장서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데, 황제의 개인 서적 3,000권을 포함해 무려 2만 권에 달하는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3대 칼리파 우스만 시절에 쓰인 코란 사본, 8세기 경에 쓰인 코란 사본 3천권, 일 칸국 티무르 제국의 궁정에서 쓰인 페르시아어 사본들 등이 가장 귀중한 전시품으로 손꼽힌다.

이슬람의 성유물을 모아놓은 성유물 보관소도 존재한다.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유물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위상이 대단한데, 선지자 무함마드의 망토, 칼 2개, 이빨 하나, 턱수염, 자필 편지 등이 고이 보관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초대 4명의 정통 칼리파들의 칼, 모세의 지팡이, 요셉의 터번, 무함마드의 딸이 짠 카펫 등 듣기만 해도 귀중해 보이는 성물들이 여기에 있다. 원래는 너무나도 신성한 유물들인지라 황제조차도 1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던 공간이었다. 황제조차도 라마단의 15일째 되는 날에만 딱 한번 들어갈 수 있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모두에게 개방됐다. 내부는 옅은 조명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수많은 무슬림들이 여기에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 찾아온다.

모세의 지팡이다. 

마흐메트의 발자국이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세례 요한의 오른 손 미이라다. 

다윗의 검이다. 

예루살렘의 황금 돔 사원의 모형도이다. 

카바의 자물쇠이다. 

카바의 검은 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