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조지아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 시그나기,보드베 수도원

boriburuuu 2025. 5. 17. 15:33

호텔로 렌트카 직원이 차를 가져다 주었는데 길이 막혀 늦었다며 10:30분까지 반납하기로 했는데 항상 차를 받고 반납하는 일이 긴장되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지아는 길이 안 좋고 운전이 험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곳이라 렌트를 망설였으나 마슈르카를 타고 무거운 짐을 옮기는게 걱정이 되어 어쩔수 없이 SUV차량을 렌트했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냥 승용차를 빌렸으면 큰일 날뻔했다. 먼저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에 가보기로 했다. 길이 안좋다는 후기를 읽었었는데 새로 포장이 되어 생각보다 좋은 길이었다. 물론 가는 길에 칼치기를 하는 운전자들을 만나서 놀라기도 했으나 외곽으로 나갈 수록 점점 나아졌다. 초원을 가로질러 달려나가는 이 풍경은 튀르키에나 아르메니아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중간에 소금 호수들을 보긴 했는데 사진을 찍을 엄두도 못내고 지나쳤다.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가는 도로는 꼭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은 트빌리시 남동쪽 70킬로 지점 광활한 지역에 넓게 펼쳐진 동굴 수도원이다. 일부는 아제르바이잔과 국경 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지역이다.

수도원 입구다. 가레자는 6세기 조지아로 들어온 13명의 선교사 중의 한명이었고 몇몇 선교사들과 함께 이 지역에 동굴을 만들어 생활했다고 한다.

대부분 13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곳들이며 13세기 말 몽골의 침략, 17세기 페르시아에 의해 훼손되었고 구소련 당시에는 폐쇄되고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사격훈련장으로 사용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수도원에서 바라본 반대편 계곡의 모습이다.

주차장 아래로는 기이한 형태의 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수도원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했다.

독특한 모양의 바위에 굴을 파고 생활하고 있는데 간혹 수도사님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도 생활하고 계신듯하다.

아랫쪽에 있는 사도 요한 교회에 가 보았다. 중앙 제단의 모습이다.

니노의 기둥의 전설을 그린 그림이다.

 
 

데이비드 가레자의 무덤이다.

교회 밖으로 나가보았다. 중앙 안뜰이다. 가운데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윗쪽에 있는 작은 교회는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은 6세기 초 조지아 선교를 위해 온 13명의 시리아 수도사 가운데 성 다비드 가레자가 이곳 동굴에 라브라 예배당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수도원이 시작되었다.

성 다비드는 트빌리시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이곳까지 와서 동굴에서 수도 생활을 했는데 그는 기도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고 죽은 후에는 이곳에 묻혔다.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은 11세기에서 13세기에 걸친 조지아의 황금시대에 800여 명의 사람들이 기거하고 19개의 수도원이 세워질 정도로 크게 번성하였다. 당시 이곳은 조지아 종교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우리는 위의 수도원을 보기 위해 산을 올라가 보았다. 가는 길에 군인을 만났는데 제지는 하지 않는다.

돌길을 올라가면 우다브노 수도원이 나온다.

그곳에서 아래 수도원의 정경을 사진에 담아본다.

수로가 있었다. 하긴 물이 있어야 생활할 수 있으니

계속 트레킹 해 보고 싶었으나 이 앞에도 군인이 지키고 있다. 아마도 아제르바이잔과의 국경지역인가보다. 동굴 수도원은 조지아보다 아제르바이잔 쪽에 더 넓고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아제르바이반은 이슬람을 믿으니 그 면적만큼 다른 땅과 교환하려 했으나 안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내려가보고 싶었으나 시간관계상 생략했다.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에서 시그나기로 가는 길에 우다브노 마을 지나게 되었다. 레스토랑, 카페들이 있었는데 전세계 여행객들이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에쁘게 꾸며 놓아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유명세를 타서인지 옆에도 또 다른 건물들이 문을 열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시그나기로 가기 전에 보드베 수도원을 먼저 만났다. 조지아 정교회 수녀원으로 시그나기에서 2.5킬로 거리에 있는 4세기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했던 성녀 니노의 유해가 묻혀 있는 조지아 주요 성지중의 하나다.

성녀 니노의 보드베 수도원에 오게 되면 가장 먼저 담벼락 너머 나무숲사이로 3층 종탑이 보이는데 ​1862년에서 1885년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보드베 수도원에는 니노의 유해가 있는 게오르기 성당과 최근에 완공된 성 니노성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처음 도착해서 보게 되면 새롭게 만들어진 성당인 '성 니노성당'이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에 이곳을 17세기 수도원 건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게오르기 성당으로 먼저 들어가보았다. 내부가 아주 화려하고 작지만 온통 성서의 냐용을 담은 프레스코화로 가득하다. 3층종탑 옆에 위치한 작은 건물인 게오르기 성당이 성녀 니노가 묻힌 곳이며 카헤티 왕들이 즉위장소로 선호하기도 했던 곳이다. 성당은 1615년에는 페르시아의 아바스1세 샤의 대군에 에게 강탈당한 이후 카헤티의 왕인 테이무라조 1세에 의해 복원되었지만 소련시절인 1924년에 수도원을 폐지했고 그 곳을 병원으로 개조시켰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 복원 작업이 1990년~ 2000년 사이에 이루어 졌으며 2003년에 수도원을이 재개되었다.

 
 
 
 

아름다운 꽃과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 곳에 위치한 성 니노성당은 성녀 니노를 기념하기 위하여 새롭게 지은 성당이며 외관은 주변의 경치와 아주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해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한다.

성 니노성당 내부는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으며 내부의 벽과 천장에는 성화들로 가득하고, 제단 등의 장식은 화려했다.

 
 

아랫쪽에도 새롭게 공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홍수 때문에 공사를 하고 있다는데 여하튼 걸어서 니노의 샘에 도착했다. 보니까 차로도 접근이 가능한 곳이던데 걷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 작은 교회당이다.

내부의 모습이다.

 
 

역시 교회 옆의 작은 종탑이다.

니노의 샘은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어린아이들은 옷을 갈아입고 안에서 세례를 받는건지 치유은사를 받는지 잘 모르겠으나 의식을 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소떼를 만났다. 잘 안비켜준다.

보드베 수도원의 정원의 모습이다.

종탑과 게오르기 교회와도 한 컷

니노의 십자가 모습이다. 성녀 니노(약 296년~약 338년 또는 340년) 는 성 누네 또는 성 니니, 하기아 니나 라고도 부르며 는 현대 조지아에 해당하는 이베리아왕국의 영토에서 기독교를 전파한 여성이며 그녀의 전파로 인해 기독교를 이베리아 왕국의 국교로 삼았다. 이로 인해 조지아는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 다음으로 유라시아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두번째 국가다. <기독교 국교 선포 > 아르메니아 (301년) , 이디오피아(325년), 조지아 (337년), 로마제국(380년) 성녀 니노의 역사적인 존재와 업적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고, 니노는 무수히 많은 소설과 전설의 소재가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의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현재의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에서 태어나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이 있었고, 일생을 처녀로 살았다고 한다. 니노는 꿈속에서 성모마리아로 부터 기독교를 전파하라는 계시와 함께 포도나무 십자가를를 받고 현재의 조지아인 이베리아 왕국에 들어왔다. 포도나무 십자가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묶어 십자가를 만들어서 조지아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다. 니노는 이베리아 왕국에서 인내와 애덕,기적을 행함으로 조지아인들로 부터 존경받았는데, 일례로 324년 경 당시에 불치병을 앓고 있던 미리암 3세의 부인 나나 왕비의 병을 기도로 고치기도 하였다. 니노는 므츠헤타로 가서 주민들에게 전도하고 미리안 3세를 개종시켰고, 미리암3세는 기독교를 이베리아 왕국의 공식 국교로 선포했다. 니노는 죽을 때까지 조지아인들 사이에서 선교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조지아에 교회의 설립을 돕고 난 다음에는 여생을 기도하는데 바치기 위하여 다시 처음 머물렀던 보드베로 돌아와 은수자가 되었다. 성녀 니노가 병들어 죽자, 마리암 3세는 그를 당시 수도인 므츠헤타(Mtskheta)에 장사 지내려 했으나 관을 실은 수레는 2백 명이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말년에 그가 보낸 이곳에 묻고 작은 예배당을 세웠는데 그것이 현재의 성녀 니노의 보드베 수도원이다.

시그나기에 왔다. 조지아의 최대 와인 생산지 카헤티 지역의 동쪽 해발 800미터 절벽 위에 위차한 조지아의 작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다.

1762년에 조지아의 왕인 헤라클리우스 2세(King Heraclius II)의 지원으로 시그나기에 마을이 세워졌으며 1770년대에는 이 지역을 공격하고 약탈을 일삼는 다게스탄인들로부터 마을을 보호할 수있도록 성벽을 쌓아 올리고 5km 길이의 요새를 건축하였다. 헤라클리우스 2세(1720년 11월 7일 ~ 1798년 1월 11일)는 바그라티오니 왕조의 조지아 군주이며 1744년부터 1762년까지 카헤티의 왕으로 1762년부터 1798년까지 카르틀리와 카헤티의 왕으로 군림했다.

숙소 앞에 차를 세우고 바로 작은 광장이 있었는데 이 동상이 서 있다. 백만 송이의 장미라는 노래로 유명해진 화가 피로스마니의 그림 '당나귀 타고 왕진가는 의사'를 동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중앙 광장의 분수대의 모습이다.

우리는 차로 가다가 세우고 걸어서 동네를 돌아보기로 했다. 여기서 보는 전망이 가장 좋았던 듯하다.

작은 찻집인데 포토 스팟을 여러 개 만들어 놓은 정성이 보인다.

시그나기 성벽투어를 하면서 시그나기 뷰 포인트와 시그나기 성벽에서 주변의 경관을 조망하는 도중에 조지아 정교회 교회가 눈에 확 들어왔는데 시그나기 세인트 조지 교회 라고 한다. 18세기에 지어졌으며 1958년 강풍으로 십자가를 포함해 일부 건물이 무너지기도 했으나 1988년에 복원했다. 세인트 조지는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이자 기독교 14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써 축일은 4월 23일이며 국가별 언어에 따라 성 게오르기우스, 성 제오르지오, 성 게오르그라고도 불리고 있다. 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으로 드래곤을 찌르는 백마를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며 사수,기사,군인,보이스카우트,검술가 및 잉글랜드,조지아,모스크바의 수호성인인데 특히 조지아는 나라 이름이 그의 이름과 같으니 어디서나 니노와 함께 볼 수 있었다. 교회는 문을 닫고 개방하지는 않고 있었다.

성벽에 총 23개의 망루를 설치하면서 지금의 도시 형태가 갖춰졌고 시그나기는 무역과 상업의 거점도시 역할을 해왔다. 현재 시그나기 요새의 일부 구간은 성벽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는데 성벽위에서 바라보는 그림같은 풍경이 일품이다. 시그나기 시티 게이트까지 걸어 가면서 탁 트인 푸른평원, 멀리 코카서스 산맥의 높은 산들의 웅장한 모습 등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했다.

성벽 위에서도 정교회의 모습이 아름다워 자꾸 사진을 찍게 된다.

니코 피로스마니의 그림 스타일이 많이 보인다.

시청사의 모습이다. 시그나기 분수부터 시그나기 국립박물관 사이의 광장 및 거리를 거닐며 관공서, 극장, 상점, 레스토랑,호텔, 공원,기념비 등을 둘러 보았다. 이곳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당연히 시그나기 시청사로써 북쪽 방향에는 시그나기 국립박물관이 있고 남쪽에는 시그나기 극장이 있다. 시그나기가 사랑의 도시라는 명칭답게 시청사는 웨딩하우스라고 불리며 24시간 결혼과 혼인신고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가옥 형태가 이 지역 전통가옥인가보다. 주차를 하다보니 집 맞은편에도 있네.

숙소에 올라가보니 코르비랍에서 만났던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아르메니아에서 만났던 분들을 시간이 지나 또 만나니 반가워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여행을 많이 하는 분들이어서 북유럽에 대한 여행 정보도 얻게 되었다. 시그나기에서 3박을 하며 쉬다가 그리스와 발칸으로 가신다고 한다. 언젠가는 좀 더 나이가 들면 나도 그런 여유로운 여행을 하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