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술관/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크루베, 로트렉

boriburuuu 2019. 6. 28. 19:17

쿠르베는 1819년 프랑스 프랑슈콩테 주 오르낭시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중등학교를 나온 후, 1837년 브장송의 왕립 고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근교에 있는 사립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배우다. 리세 졸업 후 1840년 쿠르베는 대학에서 법학 공부할 계획으로 파리로 간다. 그러나 곧 법학 수업을 포기하고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여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1847년 네덜란드를 여행한 후, 렘브란트의 화풍, 베네치아화파 그리고 에스파냐 화풍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 분석한다. 1850년을 전후로 하여 쿠르베는 자신의 고유한 화풍인 사실주의 색채를 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철저한 사실주의는 천사를 그리라는 주문에 "천사를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릴 수 없다"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는 일화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예술활동에 숨기보다는 파리코뮌에 참여할 정도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귀스타프 쿠르베의 <삐에르 조셉 푸로우돈의 초상>이다.

 가장 파격적인 그림인 쿠루베의 <세계의 기원>이다. 이 작품은 음란한 작품으로 비난받았고 드러내길 꺼리다가 최근에 대중에게 공개었단다. 의뢰자는 포르노 수집가였다는데 쿠르베는 대상을 낭만적으로 이상화할 수 있는 기법을 모두 배제하고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일관했다. 해부학적으로 묘사된 여인의 토르소가 있고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특별한 작품 속에는 상징과 진실, 유물론과 우의가 뒤섞여 있어 보인다.

역시 쿠르베의 작품<누드>다.

쿠루베의 <예술가의 초상>이다.

크루베의 <러시안 느와르>다.

크루베의 <파도>다.

크루베가 그린 에트르타의 코끼리 절벽이다.

크루베의 <화가의 아틀리에>다. 엄청 큰 대작이었고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그림이었다. 작품의 부제는 '7년의 예술 인생을 요약하는 사실적 우화'인데 그의 자화상과 같은 작품이다. 가운데 그림을 그리는 것은 풍경화를 즐겨 그렸던 쿠르베 자신이고 옆의 이상화 되지 않은 사실 그대로의 나체의 여인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다. 그는 왼쪽에 '죽은 것을 먹고 사는 사람들' 즉 물질적으로 궁핍한 자들 중에서도 무산계급을 그리고 있다. (여인, 밀렵꾼, 랍비 등) 오른쪽에는 '생명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칭하며 사상적 혁명을 지적인 활동을 통해 지지한 사람들이다. 프루동, 보들레르, 샹플뢰리와 같은 사람들인데 화면 맨 아래 독서를 하는 인물이 시인 보들레르다.

화가는 크루베 자신으로 '안녕하세요 쿠루베씨'에 나온 모습이다. 수염 모습이 독특하다.

크루베의 <오르낭의  장례식>이다. 크루베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변화에 대한 갈망, 이데올로기, 정치적인 참여 의식을 담아내었다. 이 작품은 토마 쿠튀르의 작품 <쇠퇴기의 로마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이었다. 작품 속에서 고대 로마는 오르낭 시민들의 일상적인 정경으로, 이상화된 나체는 평범한 소부르주와 즉 마을의 시장, 교구 사제, 경찰 국장, 공증인 등 모습으로 대체되었다. 이 작품의 근대성을 이해 못하는 대중에게 의미를 설명하는 한 방법이었다. 크루베는 영웅을 만들고 열광하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눈에 비치는 현실을 화면에 반영하고자 했다. 많은 사람들은 오르낭이라는 시골의 보통 사람의 장례식을 대작으로 그린 그를 조롱했지만 본적도 없는 천사나 영웅을 미화, 각색하는 것보다 직접 본 고향 마을 장례식이 더 그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로트렉의 그림들이다. 로트렉은 1,000년 이상을 내려오는 프랑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인 알퐁스 백작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몸이 허약하여 학교를 그만두고 파리로 올라와 열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대단한 재능을 보였다. 불행하게도 로트렉은 열세 살과 열네 살 때 두 번에 걸친 사고로 하반신 발육이 정지되어 성인이 된 후에도 다리가 짧고 키가 152cm밖에 안 되는 기형적인 외모를 갖게 되었다. 로트렉은 자신의 혐오스러운 신체에 대한 열등감과 귀족 신분으로서의 자존심이 묘하게 뒤섞여 사회에 반항적이고 관습에 따르지 않는 외곬의 성격이 되었다. 아마도 스스로 말했듯이 다리의 장애가 없었다면 위대한 화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로트렉은 모네, 고흐, 드가 등과 함께 후기인상파 시기에 활동을 하였으나 그의 화풍은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많은 인상파 화가와 교류가 있었으나 공부를 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들의 이론에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었다. 반항적이고 비관적인 성격으로 주위의 염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와 술에 빠져 지냈다. 로트렉은 평생 인물만을 연구하였으며 특히 사회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과 내면의 슬픔을 그만의 독특한 필치로 그려냈다. 무대는 대개 카바레, 술집, 빈민가 등이었다. 

로트렉의 <춤추는 잔느 아부뢸>이다.

로트렉의 <물랑 루즈에서>이다.

로트렉의 <사창가의 여인>이다.

로트렉의 <검은 모피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여인>이다.

로트렉의 <여자의 옆 모습, 뤼시부인>이다.

로트렉의 <혼자 있는 여인>이다.

로트렉의 <스타킹을 올리는 여인(집안의 여인)>이다.

로트렉의 <침대에서>다. 일상적인 삶의 내밀한 모습들을 어떤 불온한 의도나 관음적인 시선 없이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는 로트렉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로트렉의 <몸단장>이다.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로트렉은 모델과 발레리나, 매춘부, 부르주와 여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인들을 사랑하고 악의 없이 그들의 일상 모습을 표현했다. 작품 속 여인은 누가 자기를 보든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을 위해 여인과 화가가 공모하고 있는듯하다. 여인들이 로트렉을 신뢰하는 이유는 신체적 장애와 더불어 그의 따뜻한 감성 때문이었다.

로트렉의 <쥐스틴 디윌>이다. 정면을 보고 똑바로 앉은 자세가 독특하다.

로트렉의 <물랭 루즈의 연기자 여자 어릿광대 차-우-코>이다.

로트렉의 <코미디 프랑세즈의 앙리 사마리 >다.

로트렉의 <화가의 친구 폴 르크레크트>다.

로트렉의 <장갑을 낀 여인>이다.

로트렉의 <머리 빗는 여인>이다.

로트렉의 

로트랙의 <춤추는 라 굴뤼>이다. 1895년.

로트렉의 <발랑탱과 춤추는 라 굴뤼>이다. 18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