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미술관 44

르노와르와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노와르의 다. 1904년. 이것은 20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예술계의 사랑이었던 네 고데브스카 미시아 세르트의 초상화다. 그녀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과장하기는 어렵다. 지역 신문들은 그녀를 '파리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재능있는 피아니스트인 그녀는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작가 및 음악가와 관련이 있으며 로트렉, 보나르및 빌리아드 등이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르누아르는 그녀의 초상화를 7, 8번 그렸는데, 각각 한 달 동안 일주일에 3일씩 앉아 있어야 했다. 이것은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이다. 그녀가 32살이 되어 첫 남편과 이혼한 해인 1904년이다. 르누아르는 그녀의 빛나는 화려함과 침착함뿐만 아니라 아마도 그녀의 감정적인 혼란의 무언가를 포착했다. ..

루이제 부룅, 앵그르, 조르주 쇠라

엘리자베트 루이즈 비제 르 브룅이 그린 이다. 1782년. 매우 인기있는 자기 초상화의 예술가가 서명한 사본으로 현재 남작 에드먼드 드 로스 차일드의 컬렉션에 있다. 비제 르 브룬은 우리에게 그녀가 훌륭한 예술가와 그의 시터와 자신을 명시적으로 연관시키는 고도로 계산된 이미지를 제공한다.그녀는 자신의 직업(팔레트와 붓)의 도구를 들고 있는 동안 열린 표정으로 우리를 직접 바라보며 우아한 사회 숙녀로서, 그리고 뛰어난 전문 예술가로서 자신을 내세운다. 예를 들어 스튜디오에서가 아니라 야외에서 포즈를 취함으로써 그녀는 루벤스의 초상화에서 평범한 일광과 직사광선을 결합하여 대조적인 빛 효과를 복제한다. 막 등장하기 시작한, 여성 화가의 드문 존재를 알려 주는 경쾌한 초상화이다. 그녀는 실물보다 아름답게 그리는..

클로드 로랭과 윌리엄 터너 등

클로드 로랭의 이다. 1648년. 1600년데 대표적인 풍경화가인 로랭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기법에 눈 뜨고 관습적이고 개념적인 화법에서 탈피하여 공간과 빛의 묘사에 특히 열중했다. 이 그림의 주제인 ‘이삭과 레베카의 결혼’도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레베카는 순결한 여인이라는 뜻으로 이삭의 아내이고 야곱의 어머니이다. 이 그림에서 보듯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시적 세계를 그렸다. 전설상으로 존재하는 황금시대 재현한 서정적 풍경화이다이. 그러나 그림의 진정한 주인공은 맑은 하늘을 뒤덮은 따뜻한 오후의 햇빛과 풍성한 나무들이다. 클로드 로랭의 다. 1648년. 이 그림은 구약성서의 에피소드를 묘사하고 있다: 시바 여왕이 예루살렘에서 솔로몬 왕을 보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붉은 옷을 입은 여왕..

베르메르와 카날레토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이다. 1670년. 이 작품은 아래의 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두 작품은 비슷한 공간과 소재로 이루어져 쌍을 이룬다. 1866년 베르메르에 대한 재평가가 있기까지 2세기 동안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은 잊혀져 있었다. 베르메르는 30여점의 작품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은 그의 고향 델프트에서 세심하게 그려졌다. 그는 화가인 동시에 여인숙 주인이자 예술상이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는 대체로 여인들이 서 있다. 플랑드르회화 특히 사물을 뒤덮는 빛의 사용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측면에서 들어오는 빛의 배경은 금빛 액자부터 드레스의 푸른색 비단의 주름과 왼편의 아라비아풍 커튼에 이르기까지 기하학적으로 세밀하게 묘사된 사물들을 완전하게 비추고 있다. 베르메르의 이다. 1670년. 음악적 ..

수르바란, 렘브란트, 고야 등

니콜라 푸생의 이다. 1630-1634년. 1624년 푸생은 로랭처럼 고향인 프랑스를 떠나 로마에 자리잡고 고대 조각과 라파엘로, 카라치, 티치아노 등을 연구했는데 이 그림에서 이런 요소들이 나타난다. 이 야한 파티에서 남녀는 턱수염이 난 뿔 달린 남자의 조각된 흉상인 용어를 중심으로 춤을 춘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숲과 들판의 신, 양떼와 무리의 신인 판으로 확인되지만, 동상은 꽃 화환을 입고 성기를 드러내는 정원과 다산의 신 프리아푸스일 수도 있다. 포도와 춤은 이것이 성공적인 수확을 장려하기 위해 고대 로마 시대에 개최된 것과 같은 바치 축제임을 암시한다. 예술과 문학에서, 이러한 행사에 참석한 파티 참석자들은 버려진 그릇과 노출된 피부에 의해 제안된 과도한 음주와 성적 욕망을 충족시킨다. 신 박쿠스..

피터 폴 루벤스와 디에고 벨라스케스

피터 파울 루벤스의 다. 1622-1625년. 여자는 실제로는 펠트와 타조 깃털장식의 모자를 썼다. 모델은 1630년 루벤스의 두번재 부인, 헬렌의 큰언니였던 수잔나 푸르망일 가능성이 크다. 1622년 수잔나가 아놀드 룬덴과 재혼할 당시 결혼 초상화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른손의 반지가 뒷받침한다. 여인의 영혼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분위가를 자랑하는데 모자 차양의 어두운 색조와 배경의 푸른색, 소매 부분의 붉은 색이 대조를 이룬다. 구성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주의 깊은 탐구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모자의 차양과 목둘레의 노출한 부분에 두른 벨벳 천, 가슴에 포개 모은 팔의 모양에서 대각선의 치밀한 효과를 노렸다. 주로 많이 그려지는 주제로 페터 파울 루벤스가 그린 이다. 1632-1635년..

카라바조와 안토니 반 다이크, 엘 그레코

카라바조의 다. 1601년. 이 작품은 카라바조가 총년기에서 장년기로 넘어가는 시절에 그려졌고 1500년대 베네치아 화가들의 그리스도를 그린 연작물의 시초가 되었다. 1606년의 또다른 는 브레라 미술관에 있다. 연극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있는데 젊고 수염 없는 예수가 빵에 축성하는 것을 본 제자들이 그가 예수라는 것을 알고 놀라 과장된 몸짓으로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심오하게 구성된 구도와 그림 속 각각의 층은 여러 주인공들과 일치를 이룬다. 배경 속 벽의 그늘은 주인공들의 점차적인 단계를 강조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카라바조는 어두운 배경에 아 장면을 끼워 넣었는데 신성을 나타낼만한 품위있는 물건은 없지만 일상의 삶과 현적인 장면을 연출해 변혁을 일으켰다. 카라바조의 다.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

내셔널 갤러리 크라나흐, 홀바인, 베로네제, 뒤러, 조르조네

루카스 크라나흐의 다. 1530년. 어린 큐피트가 꿀벌 집을 훔치려다가 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어머니인 비너스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큐피트 몸의 옅은 색채는 주변 풀들의 짙은 녹색과 배조를 이룬다. 비너스는 사랑의 화살로 꿀벌들을 성나게 한 큐피트를 나무라고 있다. 오른쪽 상단부 하늘에 라틴어로 된 시구가 적혀 있는데 테오크리토스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며 헛된 현실의 쾌락 추구에 대한 도덕적인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1500년대 유럽에서 성병이 집단적으로 발생했다. 화며의 3/4을 지틍ㄴ 색의 수풀이 차지하고 있는데 창백한 주인공들의 몸과 대조적이며 수풀안에는 은신처로 몸을 피한 사슴 한 쌍이 보인다. 우아하고 귀족적이지만 자극적인 비너스는 마체로 모자와 목걸이만 치장하고 있다. 이 모습은 ..

내셔널 갤러리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

미켈란젤로의 이다. 1501-1506년. 운동선수처럼 보이는 예수의 몸은 부측을 받아 무덤 쪽으로 운반되고 있다. 왼쪽의 인물은 사도 요한과 아리마대 요셉으로 부분적으로 미완성이다. 두사람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 끈으로 매어 지탱하고 있다. 왼쪽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막달라마리아가 예수의 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오른쪽 아래 공간은 울고 있는 성모가 있었을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을 이루고 있고 배경을 축소했음에도 파도의 역동적인 움직임 등 곤찰에 의해 선명한 윤곽을 강조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 1494년. 이것은 아마도 미켈란젤로의 생존 그림 중 가장 이른 것일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검은 색으로 모델링한 것은 아직 마지막 파란색 코트가 없었고, 왼쪽의 천사들은 거의 시작..

내셔널 갤러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다. 성모 마리아의 수태 중 두번째 작품으로 1508년경 밀라노의 산 프란체스코 그란데 예배당을 위해 제작되었다. 20년 앞서 그린 같은 작품이 루부르에 있다. 이 작품에서 다빈치는 상아빛 유약을 바른 둣 매끈한 피부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전작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명암 처리와 더 위대한 조형적 생명력을 불어 넣었고 수많은 명작들이 이를 모방하게 된다. 또한 매혹적인 풍광 처리가 루부르의 작품과 차별성이 있다.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다. 1500-1505년. 이 갤러리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귀중한 작품 중 하나로 덧붙인 여덟 장의 종이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의 판, 또는 벽에 작업한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다. 이 그림은 어떤 목적을 갖고 그려진 것이 아니라고 추정되며 인물의 윤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