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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야 메블라나박물관을 돌아보며

아바노스의 호텔을 출발(09:00)한 일행은 20분쯤 달리다 어제 점심 때 갔었던 우치하사르 터키석 판매점에 다시 들렸다. 목걸이가 흥정이 잘 돼서 1개 500$씩 4개를 샀다고 했다. 원석을 목걸이로 만들어 오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다. 일행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마음이 흡족했다. 버스는 2시간을 전후해서 항상 휴게소에 들렸다. 휴게서 안에서 팔찌를 몇 개 샀다. 오늘에 들린 휴게소 앞에는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알리에게 알아보았더니 셀주크시대에 지어진 대상들의 숙소인 술탄 한((Sultan Han)이라고 했다. 아나톨리아 셀주크의 가장 크고 튼튼한 건물로 호기심이 동했다. 밖에서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갔더니,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안에는 뜰 한복판에 작은 모스크가 있었고, 왼쪽은 낙타를 매어놓는 곳..

데린쿠유 지하도시 등을 돌아보며

일행은 식당을 출발해 “데린쿠유 지하도시”에 도착(14:00)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지하에 굴을 파고 조성한 도시로 카파도키아 중심지역에만 30여 개의 지하도시가 있었다. 지하도시는 기원전 히타이트시대부터 조성되었으며, 로마시대 등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고 한다.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다만 이민족의 침입이나 종교상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6세기경 로마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곳을 은신처로 삼았던 기독교인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했다. 지하도시 중 관광객에게 개방되는 곳은 데린쿠유와 카이마클로 두 곳으로, 깊이 85m의 지하 8층에 수용인원이 2만 명에 달했다. 내부에는 부엌, 거실, 창고, 회의실, 교회, 신학교, 회랑, 포도주양조장 등 모든 시..

카파도키아 러브벨리를 돌아보며

오늘은 일행 대부분(3명 제외)이 열기구를 타는 날이었다. 나는 새벽 3시30분에 일어났다. 열기구를 타러가는 사람은 새벽 4시에 차를 타야하기 때문이었다. 차는 우리 뿐 아니라 여러 호텔을 돌면서 여러나라 사람들을 태우고 열기구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기다리는 동안 대학생들을 만났는데 우리는 150유로를 주고 타는데 걔들은 85유로에 탄단다. 속은 좀 쓰렸지만 가이드에게 주는 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풍선에 불을 피워 열기를 집어 넣고 기구는 하늘로 둥실 떠 올랐다. 우리 팀만도 수십개는 족히 되었는데 다른 회사도 많아서 하늘에는 수백개의 풍선이 떠 올랐는데 이것 역시 장관이었다. 많다고 했더니 성수기에는 훨씬 많다고 하니 터키가 관광대국임에는 틀림 없다. 한 기..

카파도키아 파샤바계곡을 돌아보며

수많은 상점들이 기념품이나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곧바로 버스를 타고 차우쉰 마을에 도착(16:15)했다. 차우쉰 올드빌리지는 바위를 파서 산 전체를 마을로 만든 곳인데, 그곳에 가지 않고 차우쉰 세라믹도자기들을 만들어 파는 도자기 공방으로 갔다.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자 일행에게 시원한 사과주스를 한 잔씩 주었다. 설명하는 사람은 주변에 도자기를 만드는 질 좋은 흙이 나와 예전부터 이곳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왔다고 했다. 그리고 기술자가 발로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일행 중에서도 전에 배웠다는 여성이 나가 해보았다. 자리를 옮겨 도자기나 접시에 손으로 일일이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을 보여주고 나서 매점으로 갔다. 매점은 3개의 방으로 구분되었으나 문이 없어 서로 ..

괴뢰메 야외박물관 등을 돌아보며

어쨌든 아침식사를 끝내고, 호텔을 출발(08:40)했다. 버스를 탄지 1시간 40분 만에 하얀 얼음처럼 반짝이는 소금호수가 나타났다. 주차장에 도착(10:20)해보니, 벌써 여러 대의 버스와 승용차가 있었다.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소금호수로 향했다. 불과 50m도 안 되는 거리였음에도 이곳에 오는 관광객을 맞으려는 상점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었다. 상점들은 기념품을 팔기도 하고, 음식을 팔기도 했다. 소금호수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금 위를 걷고 있었다. 이 호수는 우기인 겨울에는 물이 출렁이는 짠 호수(염호)이지만, 5월에는 물과 소금이 뒤엉킨 상태이고, 지금(8월)은 비가 오지 않고 햇빛이 강하게 내려 비치기 때문에 하얀 소금 위를 마음대로 걸어 다닌다고했다. 지금과 같은 한여름에는 소금두께가 1m가 되..

한국공원. 앙카라성

일행은 아타튀르크 영묘를 출발(12:50)해서 “한국공원”으로 갔다. 이 공원은 6.25참전 터키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1973년 터키 공화국 건립 50주년을 맞아 우리 정부가 앙카라시의 협력을 얻어 건립하여 터키국민에게 헌납한 것이었다. 한국에 있는 터키장병들 묘에서 흙을 조금씩 가져와 석가탑을 닮은 4층 탑 안에 안치했다. 탑에는 건립목적과 건립과정을 돌에 간단히 새겨 놓았는데,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잘못된 곳이 있어 눈에 거슬렸다. 또한 탑 주위를 돌아가며 전쟁에서 사망한 773명의 이름과 사망년도 등을 기록해 놓았다. 터키는 6.25전쟁(한국전쟁) 당시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로 많은 1만5천여 명의 전투병을 파병했다고 한다. 여기는 참전 기념공원이라 숙연한 느낌이 들며, 형제의 나라라고..

앙카라 아타튀르크영묘를 돌아보며

흐드를륵 언덕은 아침햇살을 받은 붉은색 집들과 골목길이 멋있게 보인다는 말을 듣고 언덕을 올랐다(05:10). 낮에는 그렇게 덥던 날씨가 해 뜨기 전 아침은 제법 서늘했다. 나는 일행 몇 명과 어제 올랐던 언덕에 다시 올라왔는데, 몇 명은 건너편 언덕에 올라와 있었다. 이제 동쪽하늘이 붉어지며 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너나없이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카메라에만 매달려 있었다. 어느 정도 사진을 찍었는지 같이 온 사람에게도 포즈를 잡아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제는 해가 솟아올랐고 아침을 먹을 시간도 가까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케르반사라이와 시가지 풍경을 보며 숙소로 왔다. 아침은 평소보다 조금 빠른 시간(06:50)에 호텔에서 먹었다. 빵, 토마토, 주스 등으로 어느 곳보다 간단했으며 항상 아침에는 ..

사프란볼루를 돌아보며

오늘은 이스탄불을 떠나는 날이라 간단히 아침 산책을 하는데, 한 식당 앞에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가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멀리 이국 땅에 와서 우리 국화를 보는 감흥이 남달랐다. 아침식사는 7시에 했는데, 어제와 비슷했다. 오늘 일정은 6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사프란볼루에 가서 전통시장과 전통가옥을 볼 예정이다. 우리는 호텔을 출발(08:00)해서 2시간마다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두 번째 들린 가니타(Ganita)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주위에 다른 건물들이 없고 휴게소만 외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쩔 수없이 휴게소에서 점심을 사 먹었는데 닭다리 한 개가 12리라였다. 다른 음식점과 같이 빵은 무한정 리필이 가능했다. 휴게소를 출발해서 가는 길에 밀밭과 마을을 보기도 했다. 사프란볼루에..

블루모스크와 톱카프궁전

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 사이의 광장에는 아름다운 분수가 있었다. 남쪽에 있는 블루모스크(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는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미 중 하나로 손꼽혔다. 건물은 높이 43m, 직경 27.5m의 거대한 중앙 돔을 4개의 중간 돔과 30게의 작은 돔들이 받치고 있으며 6개의 미나레(첨탑)가 본당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 사원은 술탄 아흐메트 1세가 성 소피아성당에 버금가는 이슬람사원을 지을 목적이었다. 537년 완공된 건물인 성 소피아성당의 건축기술에는 못 미치지만, 1616년 완공된 것으로, 이스탄불에서는 가장 큰 사원이었다. 당시 2~4개의 미나레가 일반적인 자미 건축 전통을 어기고, 무려 6개나 만든 것이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아흐메트 1세는 메카의 모스크에 일곱 번째 미나레를 세우는 비..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을 돌아보며

우리는 선착장에서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 술탄 아흐메트지역 중심부에 도착(12:55)했다. 일행은 알리의 안내로 성 소피아성당(아야소피아성당)을 찾았다. 이 성당은 비잔틴 건축의 백미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1세 때인 537년에 완공되었다. 건물은 길이 77m, 넓이 71.7m로 정사각형의 그리스 십자형 플랜에 가깝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엄청난 규모의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기둥이 아닌 거대한 돔이라는 사실이다. 높이 55m, 폭33m에 달하는 거대한 돔은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었다. 약 900년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당으로 영광을 누려오던 성 소피아성당은 오스만제국으로 넘어가면서 한 때 헐릴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한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위기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