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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보스포루스해협을 돌아보며

호텔 부근에는 슈퍼나 음식점이 보이지 않았으나 자미 1층은 슈퍼였고, 부근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3일간 명절의 마지막 날이고, 게다가 이른 아침이어서 모든 상점은 문을 잠그고 있었다. 그 주위에도 예외 없이 중소기업의 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큰 길 옆 삼거리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앙증맞았다. 아침 시간은 시차를 두어 팀별로 다른 것 같았다. 일행은 07시에 뷔페식 아침을 먹었는데, 각종 채소, 다양한 치즈. 삶은 달걀, 볶은 밥, 요구르트, 및 과일과 함께 옆에는 다양한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물은 물론, 사과 및 오렌지주스, 커피와 홍차까지 있었다. 일행은 자신의 식성대로 마음껏 식사를 하고, 출발시간까지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호텔을 출발(09:00..

이스탄불 돌마바흐체궁전을 돌아보며

우리는 다시 갈라타다리로 향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가다보니 자미가 나오고 다리가 보이질 않는다. 물어물어 다리에 도착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1층과 2층에는 식당들이 있어 호객행위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내일 보스포러스 해협에 올 계획이어서 우리는 둘러보고 길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에 갈라타탑을 올라갈까하고 다시 갔는데 개미취언니는 기운이 없어 아래에 있겠다고하고 우리는 올라갔다. 줄이 길어 아래 상점에서 아이쇼핑만하고 내려오니 언니가 트램을 타보자고 한다. 중간이라 티켓은 어떻게 끊는지도 잘 몰라 우리는 택시를 타고 광장으로 돌아왔다. 다리 1층은 고등어 케밥집이 있다고 했으나, 내일 들릴 예정이어서 구시가지 끝에서 되돌아 왔다. 돌아오는 길은 올 때 이미 본 곳이라서 기웃거리지 않고 곧바로 올라왔다...

이스탄불 탁심광장 등을 돌아보며

룸메이트인 한나와 나는 아침산책에 나섰다. 위쪽으로 올라가니 자미가 있어 들어가보려 했는데 직원이 제지했다. 알고보니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긴 치마를 입어야 한단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자미가 아니라 왕의 아버지와 자식의 관을 모셔 놓은 곳이었다. 푸른 도자기 관 위에 터번을 얹어 놓은 모습이 특이했다. 직원에게 기념품을 주니 우리에게 윗층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때마침 벌개미취언니와 찌니짱이 와서 같이 올라가보니 유서 깊은 이슬람 학교였다. 사진을 찍으며 내부를 둘러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우리가 조그만 친절을 베풀면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신기했다. 자미 주변에는 레스토랑, 호텔 등 언덕 위에 예쁜 건물들이 있고 정원에는 토끼가 뛰어 놀고 있었다.자미를 지나자 산으로..

부르사 예실자미 등을 돌아보며

우리가 탐방을 마치고 자미 밖으로 나오자, 오전에 먹은 시미트를 파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었다. 분수대에는 일행이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되자 모두 도착했다. 오늘 일정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해서 대장님께 예실자미를 갔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더니 다행히 흔쾌히 받아들여주셔서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예실자미로 향했다(15:00). 12분정도 달리자 큰길을 벗어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좁은 길 왼쪽에는 시립박물관이, 오른쪽에는 기념품점들이 있었다. 그 길 안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이미 여러 대의 버스가 주차하고 있었다. 일행은 걸어서 예실자미로 향했는데, 자미 오른쪽에 예쉴 튀르베가 있었다. 예쉴 튀르베(Yesil Turbe)는 오스만제국의 5대 술탄인 메흐메트 1세와 왕족들의 무덤(튀르베)이..

부르사 울루자미 등을 돌아보며

배에서 내린 버스는 30분쯤 언덕과 평원을 달려 부르사에 도착(12:20)했다. 부르사(Bursa)는 숲이 많아 '초록의 도시'라 불리는 터키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로, 오스만 제국의 첫 수도였다. 이 때문에 이곳에는 오스만 제국 초대 술탄 다섯 명의 무덤과 울루자미 등 빛나는 명소들이 있는 것이다. 점심때가 되었으나, 명절이라 환전을 할 수 없어 이곳에서 쓸 수 있는 돈이 없었다. 마침 알리가 돈을 가지고 있어, 8명에 200리라씩을 주면서 밥을 먹도록 했다. 우리는 먼저 울루자미를 보고 나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울루자미(Ulu Camii)는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1세가 완공했다. 큰 돔을 사용치 않고 20여개의 작은 돔을 12개의 사각기둥이 떠받치고 있었다. 규모가 대단하지만, 내부 기둥과..

호치민시 옆의 꾸찌터널-통일궁-전쟁박물관 등을 돌아보며

호치민시는 프랑스가 통치하던 코친차이나 시절부터 사이공으로 불리며 수도역할을 하며, “동양의 파리”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현재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지만, 경제와 교통의 중심은 호치민시다. 호치민시 중심에는 프랑스가 지은 콜로니얼 건축물이 가득해 유럽의 향기가 남..